남도유람
도시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과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가 토해놓는 검은 연기...
그 아수라장 속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
그들의 품에 꼭꼭 감추어진 갖가지 고달픈 사연들...
거친 짐승 같은 도시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점점 도시를 닮아간다...
이대로라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얼마나...
고갈 나기 직전의 영혼과 육신에 휴식을 주기 위해
물 맑고 공기 좋은 심산유곡을 찾아 떠나기로 한다...
마침 아시는 분이 숲속 별장을 통째로 내어주셔서
한 달 동안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을 체험해보기로 한다...
이른 아침, 도시를 탈출하여 남으로 남으로 수백킬로미터를 달려간다...
차도에서 벗어나 숲속 길로 1킬로미터를 더 들어가자
유럽풍으로 지어진 2층 건물 두 채가 나타난다...
이런 골짜기에 이렇게 멋진 집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은밀한 장소에 오롯이 자리 잡은 그곳은
어릴 적 꿈꾸었던 나만의 비밀왕국처럼 아늑했다...
두 건물 사이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그 개울가에 주인 허락도 없이 날아와 터를 잡은
들꽃과 야생초와 나무 몇 그루가 호위병처럼 서 있다...
거실 창밖으로 대숲을 헹구며 종종걸음 치는 바람이 시원하고
오소리 부부가 염탐하는 작은 산길이 그 너머에 있다...
야외 식탁에 앉아 이 평화로운 풍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 틈에 풀벌레 몇 마리가 슬그머니 다가와 옆자리에 앉는다...
이 작고 하찮은 생명과 함께 맞이하는
침묵과 고요와 평화의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가!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부근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식사 때가 한참 지났지만 식당 안은 여전히 분주하다...
이곳의 시스템은 여느 식당과는 조금 다르다...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마장동 한우골목처럼
재료 구입과 인원수별 상차림 비용을 따로 지불하는 곳이다...
식당 뒤쪽 수족관에서 살아있는 재료를 고르면 즉석에서 손질해주고
그걸 가지고 자리로 이동해서 숯불에 구워먹는 것이다...
재료를 올리고 소금을 뿌리고 어느 정도 익으면 뒤집고
다 익으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는 것까지, 종업원이 다 해준다...
그런데... 우리 테이블 담당은 어여쁜 아가씨였는데...
이 아가씨가 재료를 구워주다가 잠깐 사라졌는데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연기가 많이 배어서 옷을 갈아입었나???
그런데... 잠시 후에 다시 사라졌다가 나타났는데
아까 그 옷으로 다시 갈아입고 나타난 것이다!!!
이건 대체 뭐지???
그 유명한 "손님 당황하셨세요~" 쇼라도 하는건가???
식사를 마친 뒤, 진실을 알아보니...
그 어여쁜 아가씨는 식당 사장님의 딸로
쌍둥이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