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을 성탄절이 되어버린 어제.....
태국의 남동부면의 어느 해안도시..
동그란 만에 자리잡고 있는 연식이 좀 된 숙소의 4층에 둥지를 틀고보니, 우리방은 바다를 향해서 베란다가 시원하게 나있어서 여기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꽤나 맘에 듭니다.
사실 물빛 자체는 좀 구려서 막 맑고 영롱하고 그렇진 않지만, 어차피 저야 뭐 해변에서 몸굽기를 할것도 아니고 물에 들어갈것도 아니어서 , 파도가 철썩이고 선착장이 길게 나있고 수평선이 한눈에 와라락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대략 만족이 되네요.
어제는 럭키문 이라고 하던데....전 이런날이 존재한다는걸 어제 처음 알았어요.
요즘 달이 엄청 크고 밝더라니 이런 의미가 있는 날인줄은 몰랐지요. ^^
하여튼 불교국가이면서 이 한적한 곳에서도 나름 성탄절이라고 , 숙소에서 별 일없이 지내던 서양인들이 모두 길에 나와가지고는 식당에 모여서는 흥겹게 식사를 합니다. 분위기가 훨씬 들떠있네요.
우리도 때마침 열린 주말 야시장도 보고 해산물로 배도 불리고 달 아래서 술도 마시고, 날이 덥지않아 파도소리의 운율에 따라 잠도 솔솔 잘오고...모든것이 잘만 굴러가는 성탄절 밤이었는데....
심야에 곤하게 잠든 의식을 깨우는 날카롭고 높은 쿵쾅거리는 소리가 번개처럼 울립니다.
거칠게 고함치는 남자의 목소리, 여자의 새된 목소리 , 그리고 계속되는 콰쾅쾅~~
태국의 오래된 숙소는 방음이란게 거의 안되기도 할뿐더러, 이 집은 문위쪽을 얇은 유리창과 망으로 덧대어놔서 복도에서 나는 소리가 바로 귀에 꽃히네요.
몽롱했던 의식이 점점 깨어나면서 결국은 잠이 완전히 깨버렸어요.
상황을 듣자하니 남자와 여자가 이 좋은날 마구 싸우다가, 결국엔 남자가 완력으로 여자를 문밖으로 내쫓고 문을 걸어버린거에요.
복도에 선 태국 여성은....초반에는 영어로
"문열어 ! 경찰 불렀어. 문 열라고!!! 경찰이 올거야!!" 하면서 화를 내다가,
그 다음에는 "이야기를 하자. 왜 아무 말이 없어. 문 열어. talk to me" 하면서 달래보다가
결국에는 "허니...허니..." 하면서 흑흑 울더군요. 남자는 문 안쪽에서 완전히 묵묵부답입니다.
그녀의 샤우팅 그녀의 분노의 문 두들김에 잠은 완전히 깨버려서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이렇게 어중간하게 깨버리면 다시 잠들기도 쉽지않은데....
아~ 그러는 상황이 계속되는 와중에 저는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는
살짝 문을 열어서는 복도 상황을 체크해보려고 사부작사부작 문가로 다가가서는 철컥철컥 이중 걸쇠를 풀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
역시나 이미 잠이 깨어서 뒤척이던 요왕이
- 거기서 뭐하는거야!! 왜 문을 열려고 그래?
= 아니...뭐 내가 무슨말을 할려고 그러는게 아니고, 그냥 빼꼼히 내다보기만 할라고...도대체 어느 방에서 이러나 해서....
- 저사람들 지금 상태가 정상이 아닌거 같은데, 혹시나 너 문열고 나갔다가 저 아줌마가 뭔가 착각을 해가지고는, "악~ 왜 내 허니방에서 너가 나와?" 그러면서 핸드백에서 뭐 꺼내서 해꼬지라도 하면 어떻하냐
= 에헤....? 뭘 그렇게까지 ...?
요왕은 막장드라마도 안보는데 이야기전개가 너무 급막장스럽네요. 개콘보다가 웃다가 죽는것도 아니고....
뭐 이렇게 뜬금없는 전개를.....ㅜㅜ
도대체 그칠거 같지가 않던 그 광분은, 어떤 남자의 "그만 좀 하라고!!! 그만!!" 에 의해 마감이 되었는데요.
그 남자의 목소리가 방안에 있던 그녀의 매정한 허니인지, 아니면 다른 객실의 손님인지는 잘 감지가 안됩니다.모든 소리가 다 섞여서는 한통으로 들리는 바람에요...
참... 매정했어요. 사정은 알수없지만 그 시간에 방 밖으로 쫒아내다니....
그밤에 그녀는 울면서 사라졌는데 다시 아침에 나타났습니다. 다시 어제밤 상황의 데쟈뷰....
날도 밝았으니 용기를 내서 문을 열었는데... 이런~ 그들은 바로 우리 옆방이었잖아.
그런데 아이고... 문앞에 서있는 그녀를 보니 신발조차도 신고있지 않네요.
어제밤에 느꼈던 짜증이 연민으로 바뀌기도 하고, 신발도 안신긴채로 쫒아내버린 그 매정하고 못된 서양 영감도 참 나쁘단 생각이 들고... 잠을 잘 못자서 안그래도 짙은 다크서클이 더 짙어진 내 얼굴도 한층 더 비루하고....
하여튼 우리로서는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서
- 그때 그 크리스마스날 생각나욤?
하고 이야기하자면, 분명히 기억이 선명하게 날 그런 성탄절이 되버렸습니다요.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