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보고 싶다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사람입니다.
매 순간 몌별을 준비해야 하는 길 위에서의 만남,
떠나와 돌아보니 아찔하게 그리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여정의 끄트머리에서 우연히 조우했던 뚜이 형제 역시
제 기억의 한 부분을 선명하게 물들이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그들을 만난 건 베트남 남서부에 위치한 쩌우독에서였습니다.
쩌우독은 메콩 델타의 여느 지역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지닌 도시로,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캄보디아와 마주하고 있어 국경 특유의 다양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사귄 친구가 뚜이입니다.
그는 시장 어귀에서 반미를 파는 젊은이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친구의 노점을 찾는 것으로 제 하루 일과는 시작되었습니다.
카페의 조그만 나무의자에 앉아 반미와 함께 카페 농을 마시면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 주변에는 뚜이 말고도 반미를 파는 행상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그곳만 줄기차게 애용했던 이유는
맛이 특별하다거나 값이 저렴해서가 아니라
그 친구가 서툴게나마 한국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오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했다더군요.
하루는 프놈펜으로 가는 배를 예약하고 여행사를 나서는데
길 건너편에서 뚜이가 제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점심 안 먹었으면 자기 집으로 가자며 뚜이가 제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차마 그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어 마지못해 따라 나섰습니다.
그의 집은 메콩 강변에 줄지어 늘어선 수상가옥 중간쯤에 있었습니다.
허름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 안쪽에 위치한 탓에 대낮인데도 빛이 들지 않아 실내가 어두운 편이었습니다.
살림살이라곤 구닥다리 TV와 이불, 바닥 한쪽에 잡동사니처럼 쌓여 있는 그릇들, 그리고 벽에 걸린 옷가지 몇 벌이 전부였습니다.
다섯 평 남짓한 그 집에서 아내와 다섯 살짜리 딸, 그리고 동생이 함께 생활한다고 했습니다.
뚜이의 아내는 자기 집에 외국인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습니다.
신문지도 깔지 않은 맨바닥에 차려진 밥과 나물 한 접시….
그것은 밥상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그 무엇이었습니다.
뚜이는 접시 가득 밥을 푸더니 제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비록 초라한 밥상이었지만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접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져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그릇을 비웠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뚜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자기 동생이 가이드가 꿈인데, 실습 겸 해서 같이 다녀줄 수 없냐고.
쩌우독에서 며칠 더 체류할 예정인데 본인만 좋다면 나야 상관없다고 했더니
제 손을 붙잡고 고맙다면서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그렇게 뚜이의 동생과 함께 오토바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속짱, 박리에우를 거쳐 남부의 끝자락인 까마우까지 3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쩌우독으로 귀환하는 날,
그와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이드 자격증을 따려면 학원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500불이 없어서 미루고 있다고 하더군요.
뚜이의 수입으로는 네 식구 생활하기도 빠듯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형이 자신을 위해 250불이나 저축해놓았다며 그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미 한 개의 가격이 만동입니다.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500원 정도죠.
하루에 100개 팔아봐야 재료비 빼고 나면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는 수준이겠지요.
천만동, 50만원에 불과한 그 돈이 그들에겐 몇 년을 모아야 겨우 손에 쥘 수 있는 거금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제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줄담배를 피우며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던 저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습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빠져나와 지갑에서 100불짜리 세 장을 꺼내 봉투에 넣었습니다.
그것은 제 일주일치 여행비에 해당하는 피 같은 돈이었습니다.
3일 동안 가이드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내 작은 성의니까 부담 갖지 말고 가족들끼리 식사나 하라면서
그 봉투를 그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뚜이의 동생이 호텔로 찾아왔습니다.
프놈펜으로 떠나기 위해 배낭을 챙기다가 프런트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로비로 내려갔습니다.
호텔 입구에서 서성이던 그가 저를 발견하고는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어제 받은 봉투를 되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봉투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상상하지 못한 큰 액수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 돈은 절대 받을 수 없습니다. 형도 같이 오고 싶어 했는데 장사 때문에…. 형이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달래요.”
된다 안 된다, 실랑이를 하는 중에 저를 픽업해줄 미니밴이 도착했습니다.
차에 올라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는 창밖에서 손을 흔들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미니밴이 막 출발하려는 순간 저는 창문을 열고 그를 향해 봉투를 던졌습니다.
그것이 제가 뚜이 형제에게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