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혼자 사는 이유
나는 혼자 산다.
간단하게 말해서 '돌싱'이다.
혼자가 된 후 나는 한동안 형제들에게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거기에 무슨 뻐꾸기 우는 사연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여동생은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냐는 식으로 펄쩍 뛰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반면에 형의 반응은 무덤덤 그 자체였다.
'너 인생이니까 네가 알아서 하는 거지'하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의 인생을 책임져줄 수 있다면 왈시왈비 하겠지만
그럴 자신이 없다면 국으로 잠자코 있어야 한다는 게 형의 인생철학이니까.
몇 년 전, 인터넷에 떠도는 법륜스님의 글을 읽고
책으로 만들어볼까 하다가 여건이 맞지 않아 포기한 적이 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주례사”였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면서 이것저것 따져보는 근본 심보는 덕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지위는, 성질은, 건강은…
이렇게 따지면서 이리저리 고르는 이유는 덕 좀 볼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손해 볼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아내는 30% 주고 70% 덕 보자고 하고 남편도 30%만 주고 70% 덕 보자고 합니다.
이 마음이 살다가 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서로가 70%를 받으려고 하는데 실제로는 30%밖에 받지 못하니까
십중팔구는 결혼을 괜히 했어, 속았어,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재혼을 못하는 이유는 가진 것 없고, 모자라는 인간인 탓도 있지만
덕 보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은 대승보살의 길을 가고 싶은데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는 거다.
예를 들어 재혼한 아내가 춤바람이 나서 허구한 날 밖으로 나다닌다고 치자.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먼저 헤아려야 하는데 내 더러운 성질머리에 그럴 수 있으려나 몰라.
머리채를 휘어잡고 육두문자를 퍼붓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물론 이건 극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부부끼리 충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 형수의 경우 잔소리가 심한 편이다.
이것 하지 마라, 저것 하지 마라, 하지 말라는 것투성이다.
그럴 때마다 형이 형수에게 날리는 멘트가 있다.
“다른 사람들까지 당신 생각에 맞추려고 하지 마. 가족을 위해서라고 당신은 말하는데, 사실은 그 꼴이 보기 싫은 거잖아.”
나는 맞고 상대는 틀리다, 라는 생각은 참으로 위험하다.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다.
남편이, 아내가, 혹은 자녀가 조금 부족할 수는 있다.
그 부족함이 못마땅하다고 상대를 힐난하는 것은
내 페이스대로 끌고 가겠다는 이기심이다.
가족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가족구성원 전부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 나에겐 그것이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언제 덕 보겠다는 마음을 버릴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나도 재혼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