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맨부커상, 강남졸부, 브리태니커백과사전
나는 어떤 이의 집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 책꽂이가 있는지를 둘러본다.
책꽂이를 발견하면 어떤 책이 꽂혀 있는지를 살펴본다.
책꽂이에 꽂힌 책으로 그 집 주인의 성향을 짐작하기도 하고
내 집 책꽂이의 책과 어떤 책이 겹치는지를 비교하면서
그 집 주인과 나와의 정서적 교감의 농도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것은 새로운 집을 방문했을 때만 맛볼 수 있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즐거움이자 일종의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런 즐거움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책꽂이가 있는 집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독서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책 대신 인터넷이나 SNS에 빠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웅진그룹 창업주인 윤석금 씨는 1970~80년대의 신화적 세일즈맨이다.
당시 그가 팔았던 물건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다.
1768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처음 나온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현재까지 영어로 출판되고 있는 백과사전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
세 권짜리로 시작해서 열 권, 열여덟 권, 스무 권, 스물한 권으로 늘어났다.
대영제국의 영향력과 함께 전 세계로 펴져나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현대사회의 지식 기반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 하다.
윤석금 씨는 한때 전 세계 판매량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웠다.
그때 모은 돈으로 웅진그룹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윤석금 씨의 이러한 활약은 영국 본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직 개발도상국가에 지나지 않는 아시아의 소국에서
세계적 수준의 백과사전을 이렇게나 많이 사들이다니!
게다가 한국어판도 아니고 영어판을!
그랬다. 윤석금 씨가 판 것은 한국어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아니라
영어판, 즉 원어로 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 한국에서 영어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미친 듯이 팔렸을까?
이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으로 이어지는 시기는
대한민국에서 강남신화가 불이 붙던 시절이다.
허허벌판이던 강남땅에 아파트와 고층건물이 마구 들어섰다.
논밭 팔아서 돈벼락 맞은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들은 막 지어진 아파트에 앞 다투어 입주했다.
새집으로 이사를 하고보니 거실이 썰렁했다.
TV와 오디오와 냉장고를 사도 허전함은 메꿔지지 않았다.
그때 혜성같이 나타난 이가 바로 윤석금 씨였다.
그는 졸부들의 아파트 거실에 책꽂이를 들여놓고
그 책꽂이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으로 채우라고 꼬드겼다.
세계 최고의 백과사전으로 거실을 장식하라는 전략은
졸부들의 콤플렉스를 자극하여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얼마 전 한강 씨가 쓴 장편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채식주의자>는 상당히 잘 쓴 소설이고 매우 수준 높은 소설이다.
세상의 그 어떤 상을 받아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 수상을 둘러싸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행태가 가관이다.
일개 출판유통업체가 만든 상을 세계 3대 문학상이라고 떠벌이는 언론의 호들갑...
10년 동안 6만부 팔린 책을 불과 하루만에 2만부나 사들인 독자들의 기민함...
이 장면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강남 졸부가 겹쳐지는 건 왜일까?
<채식주의자>는 분명 훌륭한 소설이다. 그러나 무척 어려운 소설이다.
평소 소설책을 안 읽던 독자는 소화하기 힘든 소설일 수도 있다.
출판계는 한강 씨의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침체기에 빠져 있는 한국문학이 살아나기를 기대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정반대의 생각을 한다.
한강의 소설을 읽고 너무 어렵다고 생각한 독자들은
영영 한국문학을 떠날지도 모른다.
출판계 종사자들은 솔직해야 한다.
무턱대고 졸부를 꼬드기던 윤석금 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십여 명의 사람들은
대부분 2년 전에 내가 쓴 소설책을 직접 사인해서 보내준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들 중 내게 소설에 대한 독후감은 고사하고
“책 잘 받았다.”라는 의례적인 말이라도 한 사람은 단 1명뿐이다.
그 사람들이 순무식쟁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 직원도 서너 명이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이도 두어 명이나 된다.
우리 사회에서 지적으로 중산층 이상은 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책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도 아닌,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람의 책조차도.
책은 지식이 쌓이게 해준다.
인터넷이나 SNS는 정보가 쌓이게 해준다.
지식은 논리적 사고의 바탕이 된다.
정보는 감각적 판단의 바탕이 된다.
얼마 전의 모임에서도 느꼈지만,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뛰어나지만,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상당히 미숙하다.
때문에 대화가 서너 마디 이상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서너 마디 대화라는 것도 연예인 뒷담화가 대부분이다.
돌아서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에 남지도 않는...
지금처럼 독서율이 갈수록 떨어진다면,
책을 단순히 폼 잡는 도구로만 여기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의 지적 수준은 점점 낙후될 것이다.
오늘도 방구석에 처박혀서 치질이 도지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열심히 자판을 두들기며 팔리지도 않는 책을 쓰고 있을
이 땅의 이름 모를 작가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