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뻔 하다가 살아난 이야기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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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뻔 하다가 살아난 이야기 1부

필리핀 7 944


동서고금에서 가장 유명한 갱단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일 것이다.

그에 버금가는 전라바바와 20인의 산적에게 반 강제 포섭되어

남녘 땅 작은 도시에서 유배생활을 한 지 어느새 6개월이 지났다.

나의 이 엽기적인 유괴사건, 혹은 납치사건은

지붕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고장의

어깨 낮은 담장 너머로 소리 없는 발이 되어 슬금슬금 퍼져나갔다.

 

별다른 뉴스거리가 없는 지방 언론에게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한동안 신문 및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언론은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이라고 떠들어댔다.

우리 고장의 자랑이므로 널리 알리고 길이 보전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사건에 깊은 흥미를 느낀 모 대학교에서는

나의 체험담을 매주 학생들에게 소개해달라고 제의했다.

급기야 대한민국 최대 TV방송국의 대담프로 출연 제의도 받았다.

여기서 잠깐, 좌담은 여러 명이서 각자 떠들어대는 것이지만

대담은 사회자와 1:1로 얘기를 주고받는 것이다.

좌담보다는 대담이 훨씬 더 무게감 있고 비중도 높은 것이다. ^^

 

아무튼, 졸지에 지방 소도시의 유명인사가 되어

송중기 못지않게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던 어느 날...

매주 한 번씩 학생들 앞에서 구라를 풀기로 되어 있던 날,

아침부터 아랫배 오른쪽 부위가 살살 아프더니

학생들 앞에서 열심히 구라를 푸는 내내 통증이 심해졌다.

날카로운 바늘 100여 개를 한데 묶어서

상처는 나지 않고 피만 나오게 할 정도의 손목 힘으로

자동 미싱처럼 마구 두들겨대는 듯한 통증이었다.

내 몸의 한구석이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구라 시간이 끝나자마자 1차 진료 의료기관으로 갔다.

장갑 낀 손으로 서너 차례 나의 아랫배를 눌러본 의사는,

그때마다 내가 깊은 통증을 호소하자 이렇게 말했다.

충수돌기에 염증이 생긴 것 같습니다.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충수돌기는 맹장 끝에 달린 6~9cm 길이의 기관으로

막창자꼬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충수돌기에 염증이 생기면 흔히 맹장염이라고 한다.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충수돌기염이라고 해야 맞다.

나를 진단한 의사의 말을 알기 쉽게 번역하면, 이렇다.

맹장염에 걸린 것 같음. 당장 수술하는 게 좋음.”

 

왓 마이 갓! 충수돌기염이라고라고라?

이 무슨 쉣다꽁 팟따야 쓰레빠 같은 소리인가.

충수돌기염을 수술하면 1주일 정도 입원해야 한다.

매니저도 없이 송중기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내게

마른하늘에서 날벼락 떨어지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아랫배의 통증을 해소하는 게 급했다.

여차하면 즉시 수술이 가능한 큰 병원으로 이동했다.

역시 장갑 낀 손으로 내 아랫배를 몇 차례 눌러본 큰 병원 의사는

좀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 내 몸을 스캔해보자고 했다.

인체 스캔 비용은 비싸고 의료보험도 안 된다.

때문에 매출 확대가 목표인 의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진료방식이다.

그러나 인간은, 고통 앞에서는 나약한 존재가 된다.

 

인체 스캔실은 느무느무느무 추웠다.

스캔기사는 값비싼 장비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 무슨 쉣다꽁 팟따야 쓰레빠 업그레이드 하는 소리인가.

인간보다 기계를 우대하는 집단에 나의 건강과 생명을 위탁해야 한다니... ㅠㅠ

다행입니다. 충수돌기염은 아니네요.”

스캔 파일을 살펴본 의사의 첫마디는 나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다음 말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소장과 대장이 상당히 부어 있습니다.

당분간 물 말고는 어떤 음식물도 섭취해서는 안 됩니다.

며칠 입원해서 링겔 맞으며 몸조리하세요.”

의사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깡통인 게 분명했다.

이 지역에서 새로운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는 나에게

당분간 아무 것도 먹지 말고, 게다가 며칠씩이나 입원을 하라니!

 

하지만... 아랫배 통증 해결이 중요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생살을 뜯어내는 그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느무느무 추웠던 스캔실이 떠올랐다.

환자보다 기계를 더 걱정하던 병원 직원이 떠올랐다.

이런 곳에 나의 몸을 맡기는 싫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의사는 집요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장이 터질지도 모른다,

그럼 아주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다, 고 했다.

그 순간, 가수 신해철이 생각났다.

일단, 입원은 미루고 통원 치료를 하되

상태가 조금이라도 악화되면 바로 입원하기로 의사와 타협을 했다.

오늘은 몇 가지 링겔을 맞고 귀가하기로 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세 가지 링켈을 네 시간 동안 맞으면서

곰곰 머리를 굴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입원은 무리였다. 통원치료도 내키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얼치기 민간요업 전문가들에게 연락을 했다.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라. 그게 편하다.’

이렇게 지극히 현실적인 처방부터,

고대 사회부터 전해 내려오는 비법이라면서

두엄 더미에 들어가서 며칠 동안 땀을 빼면 싹 낳는다는,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방법까지,

나의 상태를 알려주자 다양한 해법이 쏟아졌다.

그중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든 건 보이차를 마셔보라는 것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보이차 전문점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가면 자신의 몸 상태에 맞는 차를 준다,

그 차를 마시면 웬만한 병은 낫는다, 는 거였다.

웬만한 병, 이라는 게 어느 수준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다보이차 전문점에 가보자.

 

다음날 아침, 아랫배의 통증은 여전했다.

더 심해지지 않았지만나아지지도 않았다.

어제 점심부터 굶었지만, 아직은 견딜 만 했다.

나는 보이차 전문점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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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시고 있는 보이차는 1993년 산 소숙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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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봉지에 이런 게 20알 들었다. 크기는 500원짜리 동전만 하다.

이거 1알이면 2리터 정도의 차를 만들 수 있다.​

이 차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2부에서~ ^^​

7 Comments
참새하루 2016.05.29 17:35  
알리바바로 시작해서
보이차로 빠지는 필리핀님의
화려한 롤러코스트식 표현력에
정신없다가도
그래도 뒷 이야기는 궁금하게 만드는
필력이란...
짝퉁 보이차가 판을 치는 세상에
과연 어떤 효과를 보일지요
필리핀 2016.05.29 21:37  
보이차의 세계는 와인의 세계 만큼이나 깊고 다양하더군요...

어쨌든 내게는 생명의 은인입니다요~ ㅎ
아프로벨 2016.05.29 18:20  
저도 동서고금을 말머리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차 중의 차 하면 보이차 라던데요.
보이차 좋은건 무척 비싸서 살까 말까 망설이며,
대나무 채반처럼 커다란 둥치를 들었다 놨다 했던게 대체 몇번이었나...기억도 가물가물 합니다.
그런데....보이차로 정말 통증완화 및 치료가 될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거 드시고 얼렁 나으셔야죠~

필리핀님 글을 보니 대만 마오콩 정상 찻집에서 보이차 한덩어리 못사온걸 또 후회 합니다.
필리핀 2016.05.29 21:38  
대만도 차 산지로 유명하더군요...

나는 메쌀롱 겟하우스에서 주인이 직접 재배했다면서 강매하던 차를 못 사온 게 후회되어요... ㅠㅠ
분당리모부 2016.05.30 01:31  
보이차 자주 마시면 뱃살 빠진다는데 사실인가요?
필리핀 2016.05.30 06:18  
제 경험상, 음식물, 차도 음식물이죠, 즉 식이요법으로 뺀 살은

반드시 요요현상이 옵니다. 꾸준한 운동만이 다이어트의 왕도입니다. ^^
타이거지 2016.05.31 05:15  
아프셨다는 내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이 우찌나 맛깔스러운지 흥미진진해요..지송합니다ㅡ.ㅡ;;
요즘은..장기가 붓는게 대세인가??
전 심장이 좀 부었다던데..
간이 붓지 않은게 다행이예요..아..막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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