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로 달려간 갤로퍼여행 73,00킬로 (8)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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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로로 달려간 갤로퍼여행 73,00킬로 (8)황하

부하라 1 1116
개봉은 예로부터 남쪽은 양자강의 풍요한 곡창지방에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황하를 통해 화북의 곡창지대에 이어지며 또 동으로는 산동 반도 를 바라보는 중원의 요지로서 서쪽의 서안, 낙양 정저우와 함께 중요 도시로 역사상 큰 역할을 한 곳이다. .

전국시대에는 위나라의 수도로 대량으로 불리었고 오대 시대에는 후양이라 했으며 후진 후한 후주 도 이곳을 수도로 삼아 동경이라고 했다 한다. 개봉이 번성한 것은 송나라 때다. 이렇게 역대의 수도였던 곳 이여서 개봉을 7조고도라고 한다.

이 지역은 여러 차례 황하가 범람하여 토사가 퇴적한 곳이 많다. 때문에 11세기와 그 이전의 역대의 개봉은 이제는 지하 깊숙이 매장돼있다. 그리고 그 위에 명나라의 개봉이 있고 다시 지금의 개봉이 그 위에 있다는 것이다.

정주에서 소림사로
(1) 황사와 황토층의 혈거인
중국은 누런 황토(黃土) 빛깔의 나라다. 강물(黃河)이 누렇고, 땅(黃土)이 누렇고 황사먼지로 뒤덮인 산과 들 모두가 누렇다.

몽고의 북쪽에서부터 불어오는 회오리바람은 건조지 인 황토의 미세한 흙먼지를 날려 보낸다. 황사는 3, 4월에 가장 심하게 부는데 그 위용이 대단하다. 멀리 사막 지평선에서 이는 황사 돌개바람은 마치 소방호수에서 뿜어 올리는 물줄기처럼 하늘까지 솟는다.

달리던 마차들은 앞을 볼 수 없어서 가던 길을 멈춰 선다. 나귀를 몰던 마부는 머리 위에까지 옷을 뒤집어 쓰고 마차에 납작 엎드려 나귀에게 갈 곳을 맡기고 만다. 아스팔트 위로 고운 흙먼지가 냇물처럼 쓸려간다.

노변 상점의 휘장이 날아가고 집기들이 굴러 간다 . 미루나무에 매어놓은 나귀가 놀라 고삐를 끊고 달아난다. 황사는 성난 맹수처럼 윙윙거리며 수 천리를 날아간다. 이렇게 날아온 황사가 유구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여 황토 산이 되었다.

그 중심지는 산서성(山西省)을 비롯하여 하남성(河南省), 협서성(峽西省), 감숙성(甘肅省), 그리고 황하와 양자강(楊子江) 유역까지 광범위하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황토층에 뚫려있는 굴에 사람이 살고 있다. 주인의 양해를 받아 안을 들여다보니 의외로 오밀조밀하게 갖출 것을 다 갖춘 아담한 거처다 뜰은 넓고 방은 시원하다. 헛간은 통풍이 잘 돼서 옥수수와 고추가 때깔도 곱게 말려져 있었다.

마당을 앞에 놓고 ㄷ 자로 토방이 있는데, 노부모의 방과 아들 내외의 방이 부엌을 사이에 두고 있고, 멍석을 깐 넓은 공간이 아이들 방이라 한다.

사막의 단조로움 때문일까? 이부자리와 세간들이 울긋불긋 알록달록하다. 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하다.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지만 낯선 손님에게 대접할 것을 준비하려고 말없이 분주하다.

쭉쟁이 땅콩 한 바가지를 내 놓으며 부끄러워한다. 나는 가족 일동의 사진과 노부인의 독사진을 찍어 우송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가지고 있던 스카프를 선물로 주었다.

(2) 황하
적황색의 흙을 품고 내려오는 황하(4,845 km)는 중국의 북부를 휘돌아 서쪽에서 동쪽으로 중국대륙을 관통하여 산동성을 지나 발해로 떨어진다.

황하는 화북평원을 만들고 기름진 옥토를 이루었으나 한번 범람하면 걷잡을 수 없이 막대한 재산과 인명 피해를 동반 한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1940 년)에도 황하가 범람하여 무려 3백만이나 되는 양민이 순식간에 몰살됐다 한다.

황하 박물관에서도 그때의 참상을 영상으로 보여주며 그 후 황하개발을 위하여 중국 정부가 이룩한 황하 수리성과를 설명해 준다.

예로부터 중국의 우환은 황하에 있었고, 그래서 역대의 제왕들이 치수(治水)에 힘썼으며 성군(聖君), 명군(名君)의 칭호도 황하 수리의 공로로 가늠했다 한다.

이제 황하는 최신식 공법으로 댐을 건설하고 빗살모양으로 쌓은 제방이 멀건 죽처럼 걸쭉한 강물의 흐름을 고른다. 황토를 몰고 내려오는 강물은 물살이라기보다 지진의 용암처럼 붉고 두렵다

황색 구능지대에 침식으로 생긴 골짜기가 있고 거기엔 혈거 인들의 집들이 보인다. 어지러이 뚫려있는 황토층을 돌아 내려가니 소림사가 있는 태보산(太 山)과 소보산(少 山)이 나타난다. 중악은 태보산과 소보산을 함께 하며 숭산(嵩山)이라고 일컬어진다.

태보산과 소보산의 산봉은 각각 36봉씩 72봉이며 이 중악산 안에 산재해 있는 절도 역시 72처나 된다. 이곳은 산동성의 태산처럼 산악신앙의 중심점이 되는 곳인데, 이는 한(漢)나라의 무제(武帝- B.C. 110)가 중악묘에서 숭산의 산신께 제를 올린 후부터라고 하니 태산과 더불어 산신숭배의 역사도 어지간한 모양이다

(3) 소림사
소림사가 가까워지는지 마을 어귀에서부터 청소년들의 무술 연마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어 걸음을 서두르게 한다. 나는 무협소설의 애독자로, 생각 같아서는 아쉬운 대로 축지법이나 익혀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소림사 정문까지는 영화(소림사)에서 본 그대로 왁자지껄한 장터다. 찐빵과 국수, 도토리 묵, 산찔광이(빨간 산과 열매를 끊는 꿀물에 튀긴 것을 대꼬창이에 20알씩 꿰었다. 소화에 도움이 된다)와 해바라기 씨를 판다. 나도 굵게 썰은 묵을 양념장에 찍어서 한 사발 해치웠다.

오랫만에 느끼는 고향의 맛이었다. 횟가루로 만든 불상도 있고 탱자 씨 염주와 박달나무 목탁도 판다.
멀건 죽 사발을 단숨에 들이키고 어깨에 비껴 맨 봇짐을 추스려 보는 하얀 눈썹의 할아버지, 아기처럼 작은 전족의 할머니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부산하게 도장 근처를 서성인다

변장한 쿵후의 고수들이 염탐하러 하산한 것은 아닌가? 두 다리를 뻗고 운공조식 하는 듯 한 저 노파는? 조금만 건드리기만 해도 공연히 시비를 걸며 무서운 장풍을 휘날릴 것 같아 조심스럽다.

그러나 이 소림사에는 이러한 내력도 있다. 천측향지국왕의 세째 아들인 보리다라(B.C. 428)는 반야다라에게서 사사받은 고승(高僧)이다 40년간 수도생활을 하다 뜻한 바(달마가 동쪽으로 간 뜻?) 있어 60세 때에 중국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양(梁)의 무제(武帝)와 문답을 하던 중 기연(機緣)에 미숙한 것을 깨닫고 이곳 소림사에 들어와 면벽(面璧)수련으로 득도했다 하여 선(禪)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라 한다 선은 생각하는 것, 명상하는 것이라 하니, 치고 받는 무술과는 무관하다고 여겨지나,

축적된 내공의 힘으로 맨손으로 하는 호신술(護身術) 쿵후(氣功)는 역시 달마선사가 시조가 아닐까? 기(氣)에다 공(功)을 드리는 것은 침묵으로 좌선하는 것과 어쩐지 일맥상통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지금 그 분은 알고 계실까? 성룡,(成龍) 이소룡(李小龍) 등의 후배가 쿵후계를 주름잡고 있다는 것을...그리고 우리나라의 태권도 역시 세계 제일이라는 것을..역대 선사들의 무덤과 석탑들이 빽빽이 들어선 탑림(塔林)과 소림권법(小林拳法)의 연습으로 움푹 패인 석상(石床),

그리고 장풍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흑의 의 고수를 비웃으며 나비처럼 가볍게 몸을 날려 외 솔 나무 가지 위에 내려앉은 신선 같은 미 장부의 벽화와 태극(太極) 十八권법의 설명도도 그려져 있다 소림사 앞뜰에는 각국의 무술단체가 소림사를 방문한 기념비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데 우리 나라 무술협회에서도 꽤 큰 비석을 정문 앞에 세워 놓았다 단장님이 일주일만 여유을 주신다면 축지법 하나는 익혀 가지고 갈 수 있을 텐데...


정주에서 소림사로 (4) 소림사 여행 정보


중악 소림사 방면의 장거리 버스가 있지만 관광버스의 이용이 단연
편리하다.
아침 7시부터 10시 사이에 출발하는데 정원이 되면 출발한다.
정주역전의 정주반점이나 중원대하에서 소림사 1일 관광이 있다.
소림사까지는 2시간이 소요되며 관광버스 요금에는 입장료가 포함되
어 있지 않다.
소림사 입장료는 5 각, 관람시간은 08:00-17:00
1 Comments
우사랑 2011.06.13 08:11  
글  잘보구  갑니다..
글을  읽으며  잠시  현실을  잊고
여행하는  맘으로  잼있게  버구
갑니다....
(멀리  애틀란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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