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로 달려간 갤로퍼 여행 73,000킬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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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로로 달려간 갤로퍼 여행 73,000킬로 (5)

부하라 0 989
제남에서 하루를 보내고 태산으로
4월 4일 제남에서 하루를 묵은 후 아침 6시 30분 우리는 호텔을 떠났다. 남쪽의 태산을 향해서 길을 재촉한다. 기복이 거의 없는 평지라서 그런지 자전거로 출근 또는 통학 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외에서는 경운기와 달구지가 운행의 방법으로 등장한다.

태산으로 가는 도중에 영암 산을 만났다. 영암 산에는 영암사라는 고찰이 있는데 중국의 불교 사원 중 사절로 꼽힌다는 대 사찰이다. 진 나라의 고승 측량이 이곳에서 설법을 하자 사람들은 물론이고 산과 바위 그리고 나무들까지 고개를 끄떡이며 감복했다는 말이 전해온다. 지금도 천불전 대웅보전 어서각등 과 북위 시대의 불탑 불상 전각 등이 옛 모습대로 남아있다. 다시 덜컹거리는 우리의 차는 태산을 향해 오른다.


멀리 산자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봉들을 섭렵하고 1,545미터의 태산이 중국인들을 신비의 힘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태산은 우리나라의 한라산 1,950미터보다 낮은 산이다. 그러나 한라산을 오를 때는 해발 1,200미터부터 시작한다. 그러니 실상 사람이 걸어서 올라가는 높이는 고작 7,800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태산은 산들 속에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평지에 우뚝 솟아있다. 낮은 평지에서 시작하여 1,500미터를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
중국에는 오악(五嶽)이라고 하는 다섯의 명산이 있다. 태산은 동악(東岳) 이라고 불리며 높이는 1,545미터이다. 산동 성(山東省) 에 있다. 협서성에는 화산 1,997미터 , 하남 성에는 숭산 1 ,440 미터 호남 성의 형산 1,290 미터 , 하북 성의 항산 2 017 미터이다. 각각 위치에 따라 동악 서악 남악 , 북악 , 중악이라고 불리는데 이 가운데서도 태산은 우두머리로 꼽힌다. 이것은 동쪽이라는 방향이 갖는 특별한 의미 때문이다. 동쪽은 봄이 태어나는 곳이며 만물을 생성하는 기운이 있다. 라고 하기 때문이다. 태산은 또 역대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거행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중국 사람들은 평생에 한번은 태산에 오르기를 소원한다. 태산을 등정한 사람은 수명이 십 년이나 연장되며 죽은 후에는 혼백이 태산에 와서 머문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숙원의 대상인 태산인지라 이 산을 오르는 인파는 끊이지 않는다. 특히 사후의 대책을 마련하려는 것인지 노인들의 등정이 눈에 띈다. 1,545m의 정상인 옥황전(玉皇殿) 까지 오르기는 참으로 어렵다. 올려다보면 벌건 산덩이가 하늘과 맞닿았고 로프에 매달려 있는 케이블카는 두 개의 점처럼 작게 보인다.

일천문(一天門) 에서 산정의 벽하원군(璧霞元君)의 신정까지는 7,412개의 돌계단이 있다. 이 돌계단을 사이에 두고 양편 암벽에는 당대의 명필 명 문장가들의 시들이 새겨있다. 계곡 물로 닳아진 바위에 예서체(隸書體)의 큰 문자로 1,043개가 새겨진 것은 금강경(金剛經)이다. 북제(北齊)때의 것이라 한다.

벽하사 동북쪽 대관봉(對觀峰)에 있는 비문은 당(唐) 현종(玄宗)의 기태산명(紀泰山銘)인데 규모도 규모려니와 힘찬 필체가 그림보다 아름답다. 벽하원군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춤이 높고 가파르며 발바닥에 닿는 면이 솔아서 오르기 쉽지 않다. 더구나 수백 년 동안 수천만인 의 발 밑에서 닳고 닳아 움푹 폐이고 미끄럽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는 전 족이다. 발이 아기 발처럼 작다. 이 전족(纏足)으로 지팡이에 의지해서 혹은 딸이나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7,412개의 계단을 오른다. 등에는 작은 제물 보퉁이를 졌다. 산신에게 바칠 공양물이다. 다섯 계단 올라와서 쉬고 열 계단을 올라와선 아예 주저앉는다. 그리고 피멍이 들었을 발부리를 주물러 본다.

로프웨이로 오르는 관광객도 있지만 서민들은 대개가 계단으로 오른다. 어렵게 오름으로써 정성이 하늘에 닿는다고 믿는 것 같다.

돌계단을 다 오르면 벽화 여신이 모셔진 사당이 있다. 사람들은 보퉁이에서 제물을 꺼내어 펼쳐놓고 정성을 다하여 일천 배를 올린다. 제물은 밀떡 한 조각 사탕 두 알, 아니면 옥수수 한 자루가 고작이다. 향을 사르고 맨바닥에 머리를 조이며 절을 한다.

사람들은 신에게 바치는 지전(紙錢)을 사른다. 화덕은 종이돈을 태우는 불길로 마치 용광로처럼 벌겋게 닳아 꺼질 새가 없다. 수많은 참배인 들이 줄을 이어 향과 지전을 사르고 천 배를 올린다. 재가 바람을 타고 혼처럼 날아다닌다. 모진 바람에 가지가 뒤틀린 몽땅한 나무에는 울긋불긋한 부적을 메 달았다.

정상에는 극정(極頂)이라는 석 비가 있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북평야(河北平野)가 시야에 들어온다. 나는 일출을 보려고 일관봉초대소(日觀峰招待所)에서 묵었다. 초대서는 투숙객이 들어오는 순서대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간이침대에 모포 한 장씩을 나누어주고 곧바로 잠들기를 재촉한다.

한방에는 40개의 침대가 겨우 몸이 빠져 나갈 정도의 사이를 두고 빽빽하게 정열 돼있다. 나는 솜 누비 외투를 입은 채 신발 까지 신고 자리에 들었다. 신발을 벗으면 혹시 누가 가져갈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초대소에서 묵을 수 없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몸을 붙여 체온을 유지하며 추운 밤을 새운다. 나는 온 밤을 뜬눈으로 세고 말았다. 산 뿌리가 뽑히고 집이 날려 갈 듯 한 무서운 바람이 한 순간도 잦지 않고 불어 대는 것이다. 긴 밤을 하얗게 밝혔는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난다.

새벽 5시 조금 지났다. 사람들이 해맞이를 하러 밖으로 나가는 모양이다. 등성이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쪽을 향해 서있다. 이윽고 갈라진 구름사이로 해가 나오려한다. 그러자 어디에서일까 스산한 찬바람이 구름과 안개를 다급히 몰고 온다. 발아래 계곡은 운무에 묻혔는데 다시 한차례 불러오는 바람이 구름을 밀어 나오려는 해를 가로막는다.

잠시 다시 어두워진다. 바람은 구름과 안개를 몰고 다니며 미친 듯이 설쳐 덴다. 산봉과 계곡과 태양까지 심술궂게 희롱한다. 숨 가쁘게 변하는 대자연은 빠른 속도로 작동하는 슬라이드의 영상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태양은 역시 너그러운 미소를 띠고 껑충 솟는다. 사람들은 황급히 엎드린다. 소원을 빈다. 황홀해 한다.

7,412개의 계단을 걸어서 내려오니 무릎이 풀려 혼이 났다. 지금도 가슴 설레는 일관 봉의 새벽 그 스산한 찬바람! 그곳은 분명 신 선계(神仙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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