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로 달려간 갤로퍼여행 73,00킬로 (2)

홈 > 소모임 > 자유인
자유인

육로로 달려간 갤로퍼여행 73,00킬로 (2)

부하라 2 1023


 


나는 해를 따라간다.

답사단원은 모두 5명으로 확정됐다. 단원들은 각기 연구 분담과 사무분담을 배정 받았다. 단장님은 연구 분담으로 지리 및 자연을, 그리고 사무 분담은 기획 및 통솔이다. 나는 연구 분담으로 민속과 예술, 그리고 사무 분담으로는 교섭과 자료를 맡는다. .

마지막 조항으로 행동 규정이 있다.

우리는

1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위를 유지한다.

2 우방국 방문 중에는 자동차 전면에 태극기와 방문국의 국기를 걸어 우의를 나타낸다.

3 복장에는 태극기의 기장을 단다.

4 우방국 방문 중에는 그 정부의 지시에 따른다.

5 학구적인 입장에서 각자의 의무를 다한다.

6 우방국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아구답사 기획서는 1, 취지 2, 목적 3,목적지 4,기간 5,명단 6, 연구분담 7,사무분담 8, 경비 및 그 내용 9, 행동규범

그리고 중국 9개성과 중앙아시아; 동서유럽 36개국 의 경로와 볼거리 및 지도를 포함한 전10장으로 됐으며 한글 중문 ,영문으로 기재됐다. 이것은 세계 여러 나라의 주제 한국대사관과 중요 관공서에 배부됐다.

3월 28일 2시에 가족과 헤어져 배에 올랐다. 남편의 쓸쓸한 뒷모습이 나를 끝내 울리고 만다. 세 딸이 울며 엄마를 전송한다. 일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매정하게 떠나는 마음이 괴롭기 그지없다. 미안하다. 딸들아 그리고 당신.. 안스럽고 죄스런 마음으로 가슴이 멘다.

그러나 나는 가야한다. 한국여인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성공하여 돌아갈 것이다. 버러지처럼 무시당하는 한국의 여성들을 위하여 나는 이것을 해 내야 한다.  이것은 내 가정을 위하여 한국 여성의 앞날을 위하여. 어쩌면 나의 딸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손이 귀한 종가집의 며느리다. 3대 독자인 남편을 만나 딸 셋을 낳았다. 시어머님은 24세에 홀로되신 소년 과부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에서일까 아들을 생산하지 못한 며느리에 대한 구박이 살을 저미는 것처럼 매섭다.
나는 늘 가시방석에 앉았으며 지렁이처럼 땅바닥을 긴다. 밟히며 차인다. .

나는 일어서야한다. 박차고 일어서야한다. 한국여성에게 물고를 터 주어야한다.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희생이 따르지 않는 성공은 있을 수 없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누구보다도 절실한 사명감을 갖고 답사에 임한다.

나는 파도에 출렁이는 페리호 선상에서 인생의 기로에 마지막 주사위를 던지려한다. 아버지 어머니 부디 저를 지켜주세요. ..

우리가 배에 오르니 김찬삼 단장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이 단장님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 혼잡을 이룬다. 사람들은 스스로 질서 있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는다. 첫날부터 단장님의 인기는 대원들을 우쭐하게 했다. 더불어 어깨에 힘이 가는 우리들이다.

이 페리의 선장은 마침 대원 신 재동님의 고교 동문인분이라 우리는 선장의 배려로 부리치에 들어가 볼 수가 있었다. 이 골든 부리치 호는 승객 480명 그리고 97개의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는데 보통 330명의 여객과 150톤의 화물을 싣는다고 한다.

승객의 대부분은 조선족으로 모국에 와서 노동을 하거나 페리를 이용해서 보따리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주로 고추 깨 대추 마른 해삼 홍합 녹용들인데 통관 기준이 넘는 것은 반입이 안된다한다.
 
잘 살게 된 모국에 와서 일을 하면 인정도 오가고 돈도 벌줄 알았는데 무시하고 천대하며 노임도 박했다고 호소한다. 손가락이 잘리고 발톱이 으스러지도록 일을 했다는 42세의 구 배연 님은 몸까지 상한 이 꼴로 돌아가서 식구들이나 동네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까 걱정이 된다며. 토막 담배를 꺼내 문다. 무어라 위로할 말이 없이 자리를 떴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29일 아침 8시 30분, 배는 위해에 닿았다. 밤새 털어 버리지 못한 무거운 마음을 바닷바람이 실어가 황해에 던졌을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입항을 알리며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가 오늘 유난히 자랑스럽게 보인다. 단장님이 말씀하신다. 우리 대원은 지금 이 시각부터 우리 자신이 태극기가 되는 겁니다. 내 자신이 한국을 대표하는 태극기 같은 존재가 되 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행인은 자기의 조국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것을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하는 행동 하나로 조국을 자랑스럽게도 아니면 욕되게도 하는 것입니다. .... 단장님의 첫 훈시다. .

10시 30분에 드디어 대륙을 밟게 됐다. 장문식 선장과 부리치호의 간부들의 환송를 받으며 하선 했다. 단장님은 부두의 주위를 사진 찍고 대원들은 내일서부터 본격적으로 이동 할 답사를 위해서 자동차를 교섭하러 나갔다.

나는 가로 수 밑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마차가 지나간다. 조랑말이다. 옹이 그릇을 가득 실었다. 항아리도 있고 자배기도 있고 동이도 있다.. 옛 우리네 조상들이 쓰던 그런 그릇들이다. 유액을 바르지 않은 것들인데 그게 완성품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옥수수를 추수해서 낮은 흙 담에 널었다.. 옥수수 겁 질을 벗기고 알갱이를 말리는 것 같았다. 노랗게 잘 영근 것이 맛있게 생겼다. 간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신, 엄 두 대원이 돌아왔다. 마이클로 버스와 차주를 데리고 왔다.

우리는 산동 성에서 10일간을 있을 생각으로 마이클로 버스를 빌렸다. 가격을 거리로 환산해서 1킬로미터에 1원, 우리나라 돈으로 다시 환산하면 150원 정도다. 중국에서 첫 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지니 대원들은 모두 활기에 찼다.

이것은 제 발로 찾아온 복덩이 할아버지 안점조 선생의 덕이라고 생각한다. 넉넉한 체구에서 나오는 유창한 중국말로 요금을 깎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곳의 실정을 모르기도 하지만 물가가 서울보다 싸기 때문에 깎는 흥정을 하지 않을 수 도 있다. 하지만 안 원장은 시세도 알고 상인들의 수단도 짐작 하고 또 답사단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한다.    계속  
                                                                                 쪽지 질문 받습니다.

2 Comments
제로섬 2011.05.30 22:21  
흥미진진 합니다.감사 드리구요
나나우 2011.05.31 10:45  
웹 써핑중 우연히 김찬삼님과 같이 여행한 사진이 올라와 있기에
스크랩하여 올려봅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