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로 달려간 갤로퍼 여행 73,000킬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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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로로 달려간 갤로퍼 여행 73,000킬로 (6)

부하라 1 1166

독자님들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나는 중국의 지명을 중국식 발음으로 알지 못합니다. 안내책자에는 한자로 쓰여 있어요.
그러나 요즘 내 컴퓨터가 어쩐 일인지 한자 변형이 안 먹힙니다. 하는 수 없이 우리가 알고 있는 지명 그대로를 쓰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태산을 내려온 우리는 산의 끝자락이며 태산등정의 입구인 대방전을 보고 태안 에 있는 대묘를
찾아갔다. 동악 태산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본존인 천황전은 북경의 자금성 그리고 곡부의 대성전과 더불어 중국의 3대 건축물로 꼽힌다. 천황 전 내부 벽에는 태산의 신 인 동악제가 행차하는 모습의 벽화가 있는데 동악 제 주위를 사자, 낙타, 기린, 코끼리 등 동물들과 문무관 의장대 기마대가 딸아 간다.
 
대묘를 본 후 태안에서 점심을 하고 60킬로 떨어진 공자의 고향 곡부로 향했다. 곡부가 가까이 있음인가? 어쩐지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야 할 것 같은 경건한 분위기가 엄습한다.

세월의 무게에 뒤틀린 거목의 가로수에는 파릇파릇 어린잎이 매달렸다. 산동 성의 여러 도시에서 자주 눈에 뜨이는 것은 큰 글씨로 쓴 표어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아들 딸 구별 없이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라는 산아 제한에 관한 표어, 또 세금은 국민의 의무이며 책임이라는 납세에 대한 표어, 또 불조심의 표어 등등이다.

그런데 이곳 곡부의 표어에는 존사애제라는 표어가 많다. 스승을 존중하고 제자를 사랑한다는 곡부다운 표어다.

우리는 모처럼 고급 호텔인 궐리빈사에 들었다. 호텔 입구 현판에는 논어의 첫 머리 글 유봉자원방래 불역낙호라는 글귀가 쓰여있다. 

공자는 인간의 덕목 가운데 우정을 높이 샀기 때문에 이런 글귀를 논어에 첫머리에 넣은 것이라고 단장님이 일러주신다. 공자 그 분은 아실 란가? 동쪽의 작은 나라 아침이 아름다운 나라 한국에서 중국을 벗으로 삼으려고 우리가 온 것을....

곡부 어귀를 돌아서니 10미터의 대리석 원주가 지구 위를 받들고 있고 다시 그 위에 수레에탄 공자님이 우리를 반기신다. 선생님 아구답사단 (아세아,구라파 답사단)왔습니다. 나는 당대의 대석학이며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님에게 머리 숙여 절했다.

그 분은 어떤 분이었을까? 곡부에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것만으로 공자님을 피력해본다. 

공자는 (BC522·~479) 2500여년 전 춘추시대 말엽 노나라에서 태어났다. 유교사상으로 집약된 공자의 가르침은 중국 인 뿐만 아라 동 아시아의 여러 나라 국민들의 생활 속에 뿌리내려져 오늘날 까지 이어진다. 공자의 가르침은 역대의 황제들에는 물론 세계의 사표로서 숭앙받고 있었다.

곡부에는 공자의 삶이 어떻게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어떤 깊이 있는 가르침을 황제 및 제후들에게 베풀었는지 그리고 황제, 제후 및 온 성현, 석학, 무지몽매한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공자님에 대한 절대적이며 아낌없는 대우를 어떻게 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삼공이란 유적 속에 녹아내려있었다.

삼공이란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공묘, 공자의 후손들이 살았던 공부, 그리고 공자와 후손들이 묻혀있는 공묘를 읽 컷 는다.

노나라 애 공이 공자의 제사 지내기를 시작한 후 역대의 황제들은 공자를 추앙하는데 앞 다투기 시작했다. 한의 무제가 직접 이곳을 방문해 제사를 지낸 후 역대 황제들이 공묘에 제사지내는 것은 전통처럼 되었다.

황제도 아니면서 역대의 황제들에게 제사를 받는 것이 예사 일 인가?

처음 공자의 제자들이 제사를 지낼 때는 불과 3칸이었던 것이 이제는 2헥타르 460여 간의 웅장한 모습으로 변했다.

공자의 상이 안치돼 있는 대성전까지에는 10개의 문을 거쳐야 한다. 문 마다 모두 화려하고 중후한 건축물이다. 

공묘의 입구에 해당하는 문은 금성옥진방이다. 방이란 공덕 있는 사람을 널리 표창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의 홍살문 비슷하다. 일주문 기둥위에는 조천후라는 동물이 조각돼 있는데 이 조각은 황제로부터 지방의제후로 임명된 자에게만 설치할 수 있는 것이다.

영성문의 영성이란 고대 중국의 천문학에서 학문의 별을 일 컷 는 말이다. 공자는 학문의 신으로 대접받고 있다. 명나라 때 만들어졌다.

이어서 태화원기방 지성묘방 성시문 홍도문 대중문 동문문으로 이어진다. 10개의 문을 통과하면 중국 건축의 3대 건축의 하나라는 대성전이 나타난다. 그 위용은 가히 대단하다.

이중으로 올려 진 황금색 유리기와 이것은 황궁에만 사용되는 것이라고 한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28개의 대리석 석주에는 여의주를 문 황용 백룡이 구름을 헤치며 힘차게 겨룬다. 정교한 조각술은 석제에 생명을 불어 넣었는가?! 생동감에 호흡마저 벅차오른다.   

  만약 하늘에서 공자가  용들을 부른다면 서로 겨루던 황용 백용 들은 지체 없이 석주에서 빠져 승천할 것만 같다. 석주의 높이 32미터, 길이 54미터 폭 34미터 내부면적 5백5십 평

이것은 명나라 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황제의 칙명을 받아 만들어졌지만 황궁의 것 보다 더 화려하고 정교해서 황제가 방문할 때는 황제의 기분이 상할 가 봐 전전긍긍했다는 예기도 있다.

공부는 역대의 황제들이 공자를 숭상한 나머지 후손들에게 땅과 토지를 경작하여 조세를 납부할 영민을 하사했으며 송 대 부터는 연성공이라는 작위를 내려 제후와 같이 대접했다.

공자는 대성지성 문선왕이라는 칭호를 마지막으로 그 지위가 임금에 버금가기에 이른 것이다.

공림은 공부에서 약 2킬로 떨어진 곳에 고목이 울창한 숲이 나온다. 지성방림이라 쓰인 간판이 있고 그곳을 지나면 공자와 그 후손의 전용 묘지가 나타난다.

묘지로 곧장 뻗은 길을 가노라면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향단이 설치되 있고 그 앞에 공자의 묘인 대성 묘가 있다. 대성지성 문선왕묘라고 새긴 석비에는 여의주를 문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된 이수를 얹었다.

한 일주일은 봐야 할 것 같은 곳을 하루 하고 반나절로 끝내고 내일은 하남 성으로 옮긴다.

4월7일

새로운 렌터카가 여의치 않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곳에서 차를 대절해 계봉까지 가려했는데 값이 비싸서 도저히 차를 대절 할 수가 없다 한다. 하는 수 없이 버스로 연주 까지 가서 강소 성의 서주로 가야한다. 그리고 서주에서 우리의 목적했던 곳 개봉으로 들어간다.

열주에서 서주 까지는 1백 61킬로미터 이제 우리는 기차를 타고 화북평야를 남쪽으로 달린다. 우리가 탄 열차는 청도에서 서주 간을 운행하는 것으로 등급은 직 쾌 우리식으로 따지면 무궁화호쯤에 해당한다.

중국의 열차는 특 쾌, 즉 쾌, 쾌 객, 객 등의 등급이 있다. 특 쾌는 대도시 간을 운행하는 장거리 급행열차이고 쾌 객은 단거리 완행열차이다. 그리고 객은 거의 모든 역에서 정차하는 완행열차다.

대 만원으로 혼잡하기 그지없는 열차에 앉아 단장님은 싱글벙글 이시다. 어릴 적 자주 기차역에 나
가서 들어오는 기차의 기적 소리를 듣고 언젠가는 나도 기차를 타고 멀리 가봤으면 하는 공상을 했었다고 하신다.

한때는 기관사가 되고 싶었고 또 한때는 항해사가 되어 망망한 대해를 끝없이 운항하고 싶었다고 도 하신다. 만일에 다시 태여 나신다면 어디에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으세요? 하고 여쭈어보니 몽골이나 미 서부에서 목동으로 태어나고 싶어, 나는 광활한데서 고적하게 사는 것이 좋아. 하신다.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나는 어쩌면 20세기의 마지막일지 모른 증기 기관차를 타고 1백6십1킬로미터를 2시간 50분에 달려 서주에 도착했다. 산동 성에서 강소 성으로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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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우사랑 2011.06.11 10:31  
글  잘보구 갑니다...
몇년전  태산을  갔다가
공자의  묘가  있는는  곡부에  가서
횡단선몽이라는  엔터테이먼트  공연도
보구,  많이  돌아 다녔었는데.....
다  그립네요.....
중국을  떠돌던  시간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도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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