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삷의 재 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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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삷의 재 충전

부하라 3 1040

나에게 여행은 어떠한 형태의 것이라도 좋다. 남편과 단둘이 한적한 곳을 찾아 쉴 수 있는 여행은 그것대로 좋고 또 멀리 떨어져서 격조했던 친지를 찾아 이야기로 긴 밤을 지는 방문여행도 나름대로 즐겁다. 
 
그러나, 간단하게 꾸린 봇짐을 메고 떠나는 배낭여행, 단출한 차림으로 낯선 이국땅의 이 구석 저 구석을 둘러보는 자유여행이야말로 여행꾼으로의 나를 확인시켜준다. 여행은 경로와 일정표를 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며칠씩 밤을 세워가며 일정표에 매달린다. 각종 교통수단과 노선을 알아보고 현지 기후를 체크한다. 언어와 인종과 사람 사는 풍습 등을 염두에 두고 가 보려는 곳을 우선 나열한다. 그리고 열차나 버스 등 탈 것을 배차해 본다.

틈틈이 문명의 발달과 유적의 배경이 되는 역사를 공부하고 일정표를 다시 매만진다. 몰래 꿍쳐 둔 돈에 맞춰서 다시 한 번 조정한다.
 
오랫동안 연습을 거듭한 연후에야 비로소 무대에 오르는  명작처럼 여행일정표도 수없이 다듬어진다. 비행기로 가려던 곳을 배로, 기차로 지나려던 곳을 버스로 바꿔본다. 캘커타로 해서 델리를 거쳐 카라치 까지 갈까? 아니면 스리나가르에서 봄베이로? 아니 엘로라와 아잔타를 보고 마드레이로 내려가자. 어쩌면 몰디브를 볼 수 있겠다 등등.

 딸들의 부추김에 나도 모르게 일정이 길어지다 깜짝 놀라 다시 수정한다. 여기 저기 얼룩진 지도 위에 결정된 곳은 빨간 볼펜으로 고정시킨다.
이런 과정에서 탈락되는 곳은 참으로 애석하기 그지없다. 그때의 안타까움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여행 도중에도 탈락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을 지날 때면 아쉬움이 맴돈다. 모른척하고 그쪽으로 가볼까? 하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이렇듯 힘들게 다듬은 여행 일정표는 마치 수많은 작은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춰 완성시킨 퍼즐처럼 자랑스럽고 아름답다. 이것이야말로 여행기간 그 자체보다도 더 긴 날들을 즐길 수 있는 지상여행(紙上旅行)이 아닐까?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난다. 곤두서듯 구름위로 치솟는 여객기 안에서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쉰다. 생활로부터의 극적인 탈출이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은 보고 싶은 것을 볼 뿐더러 다양한 모습의 현지인과도 만난다. 그리고 그들만의 독특한 풍습과 삶의 의식까지 접해볼 수 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그들만의 솜씨인 민속품을 보는 것도 즐겁다.
 
풍토에 맞게 만들어진 가옥과 살림살이의 지혜도 엿보니 재미있다. 게스트하우스나 모텔, 유스호스텔 등에서 우연히 사귄 여행자들과 정보를 주고받는 저녁 한때가 즐겁다. 그러다가 행선지가 같은 사람을 만나면 잠간 동안 이나마 동행이 되기도 한다.

어깨동무를 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우리나라에 오게 되면 꼭 들여 달라”고 주소를 교환한다. 배짱이 맞는 친구를 만나면 아예 집에서 작성해 온 일정표가 한동안 말짱 헛것이 되기도 하는 여행. 이렇게 자유롭고 알찬 여행은 모든 일정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된다.

여행 동안 찍었던 사진을 현상해서 앨범을 장식한다. 여행지에서 만났던 친구에게 사진과 우정의 편지를 보낸다. 민박집 아주머니에게도 감사의 엽서를 띄운다.
 
쓰다 남은 동전과 함께 화폐, 우표, 엽서도 여행의 전리품이다. 그런가하면 스탬프가 찍혀있는 여권과 외유(外遊)내내 함께 했던 배낭은 신주처럼 모셔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의 맛이 어디 그것뿐이랴?!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딸들의 여행일정표를 주워 들고 런던으로, 스위스로, 또 로마로 숨 가쁘게 쫓아 가보는 상상여행, 이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재미거리다.

여행 당시 묵었던 자스퍼의 외진 호텔을 우연히도 TV에서 봤을 때, 또는 열차 안에서 갈겨썼다며 짤막한 사연이 들어있는 낯익은 그림엽서를 받았을 때의 감격과 흥분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배낭여행은 돈을 아끼는 여행이다. 그러나 결코 무전여행은 아니다. 여행은 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고 배우며 즐기는 것이지 심신단련이나 극기 훈련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 중 극도의 영양실조로 또는 피로로 건강을 해친다면 그것은 실패한 여행이다. 세계적인 미술품과 고궁들을 눈앞에 두고서도 경비의 부족으로 관람할 수 없다면 이 또한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그러나 여행에서 돈을 쪼개 쓰는 묘미와 공짜의 맛도 결코 적다 할 수 없다. 36장짜리 필름에서 운 좋게도 37장 째가 찍혔을 때, 덤으로 나온 그 한 장이야말로 너무도 귀하고 사랑스럽다.

동전을 넣어야 물이 나오는 세면장에서 남이 쓰다 남긴 물로 세수를 하니 코인 한 개의 ‘공짜’는 어깨의 봇짐마저도 가볍게 한다.

이 정도면 완벽하겠다 싶은 각본을 들고 떠났던 여행이건만 출발점부터 발생하는 시행착오들, 쓴웃음과 당혹감을 번갈아 자아내는 해프닝 연속의 여행이 오히려 지치지 않는 활력이 되어 또다시 배낭을 꾸리게 한다.
 
금년에 계획한 여행은 중국의 서남부와 배트남, 캄보디아, 방콕, 그리고 인도네시아까지다. 신비에 쌓인 앙코르와트가 벌써부터 나를 설레게 한다.

 

3 Comments
나나우 2011.04.24 11:23  
자유로은 영혼의 진정한 베낭 여행자님의 글 잘읽었습니다.
젊은 열정으로 도전하시는 님의 생각에 멀리서 찬사를 보냅니다.
올 한해 계획한 여행의 꿈 꼭이루시길 기원드리며...건강하세요^^
우사랑 2011.04.24 14:39  
배낭여행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네요...
일행들과  함께  때로는  혼자서
동남아를  떠돌던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년이나  지났는지.....

공감되고  좋은글  올만에  들어  왔는데
잘보고 갑니다...


언젠가  다시  떠날날을  꿈꾸며  매일
연탄  브러더스(?)  동네를  열심히  돌아
다닙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도시에서~~~~)
깜따이 2011.04.27 18:06  
여행자의 마음에 공감되고 설레이는  글 잘 오래만에 참 잘 읽어서 기쁘네요!

미지의 세계로 갈때 저는 가슴이 아직도 떨리고 정말 기대 되는게 여행의 묘미인것 같읍니다. 다시 젊어지고 다시 사춘기 소년이 되는것 같은 느낌... 그러다 돌아 오면 현실에서 잠시 벗어난것 뿐... 진정한 여행을 하려고 저는 젊어서 5년이란 세월을 쉬지않고 미지의 세계를 돌면서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고생도 한 생각이 나네요. 물론 너무 오래된것 같은 10~15 년 전 일이지만...그 중 만난 벗은 15년이 되었지만 잊어지지 않고 아직도 연락하고 있지만 또 세월이 지나 20년이 넘은 친구도 행방불명이 되거나 저세상으로 간 친구들도 있고...하지만 좁은 한국이 아닌 지구촌을 누비고 사는 장기 여행자가 다시 되는게 제 꿈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그런 여행다운 멋진 여행을 하고 싶지만 재테크관리 직업등 노후대책이 우선이라 1주일에서 최대 1달의 여행으로도 만족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사람욕심은 끝이 없지만 죽기전 200개국은 불가능할것 같고 100 정도만 해 볼까 합니다. 숫자가 중요하지 않죠 한나라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한국의 1000개가 넘는 산 그리고 50개 이상의 섬도 모두 가볼려고 하는 중입니다.  더 이상 청춘이란 단어가 내사전에 없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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