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때의 우연이 나중에는 루틴(routine)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현지인 아저씨의 손짓으로 우연히 찾게 된 운하버스,
우연히 비행기 안에서 듣게 된 시암파라곤의 이름,
방콕의 시청 앞 몬놈쏫에서, [다음에는 어디에 가려고 하느냐]라고
이유도 없이 제게 질문해 주신 할머니 덕에 팁사마이로 가는 길을 저절로 알게 된 일,
너무 돌아다녀서 지쳤을 때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식당 등등,
아, 생각해 보면 태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된 것 자체가 우연이네요!
처음부터 태국이라는 나라를 가려던 것이 아니라
제가 가려던 곳의 중간 기착지가 방콕이었었던 것뿐이었으니까요.
까우만까이의 경우도, 그냥 아무거나 우연히 잡아 탄 버스와
게시판에서 우연히 보았던 정보가 결합되어 알게 된 음식입니다.
닭고기 덮밥이라고 해서 까우팟 까이(닭고기 볶음밥)라든지, 까우 팟까이(닭고기볶음 덮밥)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오, 태국어로도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놀이가 가능한?)
[까우만까이가 어떤 맛이냐?]라고 우리나라 사람에게서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아마도
[태국식 영계백숙(어쩐지 후렴구 ‘오오오오~’를 덧붙여야 할 것 같은)]이라고 말할 것 같네요.
(사진: 치앙마이 삼왕상 앞 까우만까이 집에서)
영계백숙이 그렇듯이, 처음 먹었을 때에는 꽤나 밋밋한 맛의 음식이라고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음식의 포인트란
‘영양가도 많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 아닐까요?
하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저도 처음에는 [그런 음식이 맛있을까?]라고 생각했긴 합니다.
초기의 태국 여행 때에는, 종종 어떤 음식점에 닭털만 빠진 상태의 닭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는
저 곳이 무엇을 파는 곳인지를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의 2006년 9월 2일의 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태국의 닭들이 걸려 있는 모습은 참 적나라합니다.
우리 어렸을 때에도, 닭들은 머리, 발, 내장이 모두 함께 팔렸는데
요즘은 닭들의 머리가 다 잘려서 나와
[닭들의 아이덴티티 상실의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 일기에서 나중에 이 구절을 보았는지, 2년 후의 저는 그 구절 밑에 이런 글을 써 놓았더군요.
(당신은 2년 후, 그 집에 가서 닭고기밥을 먹고 감탄하게 됩니다.
어찌나 맛있었는지, 잘 못 하는 태국말까지 동원해서 닭국물을 더 달라고 하게 될 겁니다)
제가 태국의 추천요리 #1이라고 생각하는 이 까우만까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2007년 12월 4일의 제 일기에서 발췌합니다.
[이 버스가 나를 판팁 플라자까지 데려다 줄 거야]라는 믿음만을 가지고 있던 저는
창밖을 내다보던 중 한 특이한 가게에 시선을 집중했습니다.
대로변의 한 가게는 유난히 사람들이 북적거려 빈 자리가 하나도 없었고
제가 약식으로라도 태국식 닭고기밥을 가장 처음 먹어 본 때는
지난 번 여행(2007년 8월) 때에 그랜드 다이아몬드에서의 아침식사에서였습니다.
[닭에다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너무 맛있쟎아!]였습니다.
이렇게도 간단해 보이는 음식이 너무나도 입에 짝짝 붙는 것이었습니다.
‘빠뚜남에 [까이톤 빠뚜남]이라는 닭고기밥으로 유명한 집이 있는데
그 집의 유니폼은 핑크색이며......’라는 글을 보았을 때에
사실 저 자신도 빠뚜남에서 여기를 찾아보려는 노력을 조금 했었으나, 그 때까지는 찾지 못했었거든요.
이렇게 버스에서 창 밖을 구경하다가 이 곳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은 생각도 못 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당장 버스에서 내려서, 음식을 사 가려는 사람들의 줄에 섰습니다.
닭고기와 간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포장해 주시면 얼마인가요?]라고
테이크 아웃을 담당하시는(주인 어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께 여쭈었더니
그 분은 저의 모든 말을 다 씹으신 채 [40바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냥 그 분께 40바트를 내어 드렸더니,
닭고기와 간, 그리고 닭 선지와 밥 한 공기, 닭국물을 싸 주십니다.
뿌듯했지만, 속으로는 [이걸 오늘 안에 다 먹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당장 수영장으로 내려가서 한참 동안 수영을 했습니다.
방에 돌아와서 까이톤 빠뚜남에서 사 온 닭고기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웠습니다.
수영을 하고 나자 이제는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번 태국 여행 때에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 있다면
밤의 수영을 끝내고 와서 먹은 이 닭고기밥이었습니다.
그 맛과 그 날의 분위기 등등이 너무도 인상깊고 좋았기에
이 맛을 어떻게 우리나라에서도 흉내낼 수 있을까 지금도 생각중입니다.
[반드시 밤에 수영하고 난 다음에 먹어라]가 맛의 비밀이면 그것을 어쩌죠?
지금까지 여러 까우만까이집을 가 보면서, 분명히
[종잇장 같은 이 닭은 뭐지, 이 뻣뻣한 밥은 뭐고?]
라고 생각하면서 부르르 떤 곳도 있기는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모든 경험을 걸러내어서 제가 다음에 추천하는 곳을 가시면
까우만까이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가지시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1) 까이톤 빠뚜남
마치 술을 어른 앞에서 제대로 배워야 하듯
까이톤 빠뚜남같이 제대로 된 닭고기밥집에서 처음으로 까우만까이를 먹어 보게 된 것은
저와 닭고기밥 사이의 좋은 인연의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곳의 장점은 맛과, 또한 싼 가격입니다.
(까우만까이 주문의 나쁜 예: 무려 70밧. 게다가 도무지 끝나지를 않습니다.
저도 어디에서 왜 이런 주문이 들어갔는지 모르겠네요.
내장이나 선지 없는 보통의 닭고기밥은 그냥 30밧입니다)
이 집은 낮이나 밤이나 한 번도 붐비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집이네요.
그런데, 다른 까우만까이 집보다 약간 간이 강한 경향이 있습니다.
빠뚜남 선착장 바로 근처, 타논 펫차부리에 빠뚜남 센터와 마주보고 있는 집입니다.
포인트는 [점원들의 분홍색 유니폼]입니다.
이번 3월은 유난히 날씨가 시원했기에 매장 안에서 식사를 하는 데에 전혀 불편이 없었지만
매장에서 식사를 하기 좋은 때는 아무래도 낮보다는 밤 시간입니다.
(2) 시암 파라곤의 푸드코트(두 집 다 모두 추천)
시암 파라곤의 지하 푸드코트에는 두 곳의 까우만까이 집이 있습니다.
두 곳 다 모두 맛있고, 성황리에 운영하고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런 것입니다.
-한 쪽은 남자분들이 운영, 한 쪽은 여자분들이 운영
-남자분들의 가게 쪽은 국물에 팍치가 들어가지만,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음
(하지만 팍치 싫어하는 분은 반드시 유념하셔요)
-여자분들 쪽은 삶은 닭이 맛있음
-남자분들 쪽은 튀긴 닭이 맛있음
두 곳에서는 모두 [두 가지 닭고기(60밧)]으로 주문하셔요.
삶은 닭과 튀긴 닭을 함께 줍니다.
이 두 곳의 장점은, 곧 파라곤 푸드코트의 장점이기도 합니다만
일단 시원하고, 찾기 편하며, 일정한 음식의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자들이 까우만까이의 경험을 해 보시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3) 치앙마이에서의 두 곳-삼왕상 옆/님만해민 소이 7 바로 앞
가격대비 맛으로 따진다면
치앙마이는 까우만까이를 즐기기에 정말 좋은 도시입니다.
현지인들도 좋아하는 훌륭한 까우만까이집 중 하나는 삼왕상의 바로 옆에 있습니다.
(아침 5시부터 한다고 합니다.
제가 가 보았을 때에, 새벽 6시에는 분명히 열고 있었습니다)
삼왕상 왼쪽 옆의 그 붐비는 식당가 중에서도 이 집은 언제나 손님이 많으니
금방 알아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님만해민 거리에서 소이 7로 쭉 걸어나오신 다음 시리망클라잠 로드를 바라보셨을 때에
바로 오른쪽 정면에 보이는 까우만까이 집도 아주 추천할 만합니다.
두 곳 다 25바트였다고 기억합니다.
3. 싱가포르식 닭고기밥과의 차이점은?
싱가포르식 닭고기밥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일부러 월텟 5층의 [오차드]라는 데에서 먹어 본 적이 있습니다.
120바트 정도 했었던 것 같네요.
이것도 맛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뭐지, 이 터무니없는 가격은?]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제가 계속해서 느끼고 있는 것은
제 개인적 입맛은 간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만두나 부침개를 먹을 때에도 간장을 잘 찍지 않을 정도이니까요.
제가 뽑은 태국의 베스트 요리 중에 까우까무가 간신히 10위를 차지하는 것도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간장맛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싱가포르식이 더 마음에 드실 수도 있습니다.
4. 까우만까이에 얽힌 추억들
(1) 치앙마이에서
U Chiang Mai에서 묵고 있을 당시에는 이상하게도 밤에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 3시부터 깨어서 어슬렁거리는 일이 허다했죠.
그러던 어느 하루는 아침부터 단단히 사고를 치기도 했기 때문에
([타논 라차담넌에서의 도로교통법 위반 사건]이라는 제목의 글을 작성해야 할지도)
다음날은 그냥 조용히 라차담넌 거리 반대편으로 주변 산책을 나갔습니다.
태국의 아침은 일찍 시작되고 있더군요.
끼리끼리 놀고 있던 개들도 만났습니다.
(사진 제목: 널 위해 구덩이를 팠는데, 구덩이 안은 좀 어떤가?)
삼왕상 근처의 음식점들도 정말 일찍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이 중에는 바로 위에 적어 놓은 그 까우만까이 집도 있었습니다.
제가 산책으로 이 주변을 왔다갔다하면서 한 번 기웃, 두 번 기웃하면서 자기네들 가게 앞을 지나가니
세 번째로 제가 기웃거렸을 때에는 아예 손짓을 해서 저를 부르더군요.
그리고 가게 안쪽에서부터, 영어를 잘 하는 점원을 불러 왔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천밧짜리를 펼쳐 보여주면서
[천밧밖에 없는데 괜찮나요?]라고 물었더니
[우리 가게가 고작 그런 것을 커버하지 못 하겠느냐]라는 느낌의 제스처와 함께
[걱정하지 마셔요. 거스름돈 있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이 식당은, 들러볼 때마다 점원들이 늘 웃고 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은 곳입니다.
(2) 방콕에서
강력한 스콜로, 바로 눈 앞에서 나무가 부러지는 것도 본 적이 있긴 합니다만
정말로 때아닌 스콜로 애를 먹었던 때는
수상버스를 타고 있던 중간에 소나기가 내렸을 때였습니다.
이런 빗속이라면 도저히 밖에 나갈 수 없는 기세로 비가 내리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배를 그대로 타고 람캄행, 방까삐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해서
저를 불쌍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을 뒤로 하고
할 수 없이 배에서 뛰어내려 빠뚜남 선착장의 거센 소나기 속에 내렸습니다.
한참 동안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
그냥 이세탄까지 뛰어가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운 생각이 들었거든요.
냉방시설이 잘 된 월텟을 통과하여, 스카이워크를 통해 시암파라곤에 갔을 때에는
그야말로 비에 젖어 이가 부딪칠 만큼 추웠습니다.
밥을 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추워서 따뜻한 것이 먹고 싶더군요.
그 때에 까우만까이를 한 그릇 먹으니 겨우 떨림이 진정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비 맞는 것을 무지하게 싫어합니다.
하지만 방콕에서 이렇게 억수로 비가 내렸을 때에는
왠지 늘 즐거웠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네요.
까우만까이 등,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