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의 일몰
지난 10월 8일, 닷새간 걸어 도착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엔 첫 눈이 내렸습니다.
여름부터 쏟아져 들어 온 중국 관광객들 대부분과,
휴가 막바지에 들어가던 인도 관광객들 모두는
생전 처음 보는 눈을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맞으며
그야말로 눈 밟는 강아지들이 되었었습니다.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고 한시간 쯤 지난 세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베이스 캠프 안에선 고작 10월초의 미지근한 바닥에 닿아 바로 녹아 버렸지만,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에서 접근해 올라오는 진입로의 초지 위로는 제법 수북이 눈을 쌓아주고선
여섯시 경 그쳤습니다.
눈이 그친 뒤
안나푸르나 남봉 너머로 저물어 가는 태양의 마지막 빛이
아직 채 걷히지 않은 구름을 뚫고
베이스 캠프의 동쪽에 위치한 마차푸차레 정상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안나푸르나 연봉군의 꼬마대장인 마차푸차레 허리께에 구름이 걸려 있네요.
살면서 눈높이보다 낮은 구름의 위 아래로 하나의 봉우리를 볼 기회가 몇번이나 있을까요?
저걸 내려다 보며 저는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 연기를 공연하는 수평으로 바싹 들려진 치마 입은 발레리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기울었지만 아직도 태양이 그나마 몇조각 빛을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겁도 없이 달이 뽀오얀 얼굴을 드러내며
지금부턴 자기 시간이라고 우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