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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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 ‘사원과 물의 나라’라는 멘트로 기내 방송이 시작될 만큼 태국인에게 불교는 삶을 지탱하는 근본이다. 매일 아침 방콕 중심 도심지를 빼놓고는 동틀 무렵 밖을 나가면 일군의 사람들이 손에 무엇인가 들고 길가에 쭉 서 있는 풍경을 접한다. 멀리서는 아침 첫 햇살에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법복을 입고 맨발에 삭발을 한 스님들 행렬이 다가온다. 그러면 사람들은 차례차례 준비한 공양물을 스님들의 그릇에 넣는다.

이렇게 아침 탁발이 끝나면 스님들은 각자 거처하는 사찰로 돌아가 공양 받은 것으로 아침과 점심, 하루 두 끼 식사를 해결한다. 그리고 정오 이후에는 물 종류 외는 일체 음식물을 입에 대지 않는다. 이렇게 그날의 음식물은 그 내용이 무엇이건 간 인육이나 뱀, 말고기 등 특별히 금한 것이 아니면 공양하는 대로 받기에 육식과 채식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운하나 강가 지역은 조각배에 몸을 실은 스님이 노를 저으며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와 공양물을 받아간다.

‘상좌부불교’(‘소승불교’란 단어는 ‘대승불교’ 측에서 비하하는 뜻이 있기에 사용치 않음)의 가르침에 따라, 이런 탁발수행은 음식을 비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이 공덕을 쌓도록 보시 기회를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렇듯 태국에서 스님의 지위는 매우 높다. 스님 몸에 일반인의 손이 닿는 것은 삼가 할 사항이며 특히 여성은 절대 금기이다. 또 관혼상제와 같은 개인적 행사 뿐 아니라 국왕이 참석하는 행사부터 일체의 공공행사에는 거의 예외 없이 스님을 모신다.

버스, 배, 철도, 지하철 등 공공 교통시설은 스님 전용석이 있고 많은 경우 차비도 받지 않는다. 또한 다른 종교를 믿는 이가 아니라면 모든 태국인 남자는 일생에 한 번 이상은 단 며칠이라도 삭발하고 사찰로 들어 스님이 된다. 이를 ‘부억 낫’이라고 하는데, 이때면 다니던 회사에서는 ‘부억 낫’에 불편이 없도록 휴가처리를 해주고, 가까운 동료 친지들은 조금씩 돈을 모아 그 기간동안 필요한 경비를 지원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스님들이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전국에 있는 수만 개 사찰은 해당 지역사회의 공동체 센터다. 교육시설이 없는 곳에는 유치원과 학교 역할을 하고, 화장시설을 갖춘 장례식장이며 기초 의료기관이기도 하다. 재난이 나면 무료급식과 같은 구휼기능을 하기도 하고, 갑자기 오갈 데 없는 이나 여러 이유로 급한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잠시 몸을 의탁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시로 연극, 영화, 노래 공연 같은 문화행사가 진행되고, 주변에 변변한 시장이 없는 곳은 ‘야시장’도 열리는 교류장소 역할도 한다. 이렇게 성속간 구별이 엄격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주민들과 가까운 곳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 (Nobless Oblige)’를 실천하는 데 게으름이 없는 탓에 태국 불교가 여전히 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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