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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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처녀!

라오스 처녀!


이때 처녀란 '낭쏟'의 번역어로 쓴 것이다.  

처녀(낭쏟)란 한국에서는 숫처녀, 영어로는 virgin을 의미한다. 

한국 남자들 사이에 쓰이는 일본어에서 온 '아다라시(이)'다. 


한국에서 처녀란 뜻은 결혼을 안한 여자들 모두를 가르키는 말이었는데,

숫처녀 상태로 시집을 가는 것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숫처녀와 like a virgin을 구별하기 위하여 '숫'이라는 쓸모없는 접두사를 붙이게 되었다. 


한국 남자들의 저녁식사에서 '숫처녀로 시집 오는 여자는 박물관용'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like a virgin이 미혼여성이 주류가 된 사회와 여전히 virgin이 주류인 사회. 

흐름이 주류(main stream)란 것이지 숫자적으로 압도하는지는 별문제고

세어볼 능력도 셀 수도 없다. 

숫처녀가 아니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도덕적으로 발언권이 약화되거나, 

실제 결혼 협상(라오에선 카덩)에서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잠재의식에서 처녀막을 잃으면 '순결'을 잃었다고 인식할 지도 모르겠다. 

한국인에게 처녀의 상징물인 그것이 '막'으로 인식된다면, 

라오사람들에게는 종이인 '찌야'로 인식된다는 차이만 있다. 

(라오어에서 처녀막은 찌야 버리쑫이다)


한국인에게 처녀성이 '순결'로 인식된다면, 

라오어의 처녀성도 같고 거기에 상응하는 단어는  쿠왐 버리쑫(처녀성)이다. 

도덕적 의미는 같은데 근대문명이 아닌 사회에서는 혼인이 교환적 성격이 있어서

교환 가치에서는 '중고(second handed or the used'라는 비유를 들 수도 있겠다. 

라오어에서는 쏭므(두번째 손)이다. 


남자의 여성에 대한 태도가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를 가르는 선은 

숫처녀를 선호하느냐, 

개방적이냐

처녀막이 남녀간의 사랑의 행위로 파괴되었을 때 

그것을 '순결'을 잃은 불순하거나 불결한 상태로 보느냐, 

정상으로 보느냐가 척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쿨한 척 하고 싶어하는 나는 물론 후자의 편에 서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성에 대해 보수적인 관점을 가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머리 속에 든 사고가 나와 시대를 좀 달리할 뿐이니까. 


어쨌거나

라오는 한국 보수적인 남성들에게는 보물섬과 같은 노다지의 땅이다. 

숫처녀 장가를 들려면 라오만큼 좋은 곳이 드물다.  


한국 남자가 무슬림 여성에게 장가가는 사람은 예외이다. 

그쪽 세계의 일부에서는 아예 신방을 차린 뒷날 

딸이 순결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시집보낸 딸의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피묻은 이부자리를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딸의 순결과 그것을 지켜낸 아버지로서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별난 곳도 있으니까. 


라오 여성은 처녀가 자랑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근대적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이 아니라면 처녀인지 물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진지하게 처녀 장가를 들려는 남자가 물었다면 이거 전혀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아니다. 

아니 물어봐야만 한다. 

카덩(지참금)을 내고 장가를 가야하는 것이니까. 

그 금액을 확정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묻게 되어있다. 

이때는 교환가치의 문제이므로 새차냐 중고차냐를 묻는 행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럼 

처녀 장가를 들려는 한국 남자와 라오 처녀가 사랑을 하게 된다면 

한국식으로는 연애라는 과정을 겪게 될 텐데 그때 주의 사항이 뭘까?

처녀막을 다치지 않는 연애의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 

전형적인 신파극의 

'사랑하니까 지켜줄께'라는 대사로 번역될 수도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영화 한편을 권한다. 

1993년에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개봉된 영화 <피아노>를 보세요. 

영화를 보실 수 없는 분들은 아래의 포스트를 보시면서 

<에이다>와 <베인즈>의 연애에서 베인즈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많은 시사를 받게 될 겁니다. 


http://edenblossom.blog.me/70166849646


영화를 못보실 분을 위해 위의 포스트를 따왔고, 

비교적 줄거리와 주요 장면이 잘 소개되어있다고 생각해서 소개합니다. 

이 포스트를 쓰신 분은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여성분으로 추측됩니다. 


여기서 <에이다>와 <베인즈> 두 주인공은 피아노를 두고 거래를 하면서 연애를 한다. 

구체적으로는 피아노 건반.  

이 영화에서 서구인들과 문명을 달리하는 뉴질랜드 원주민(마우리족으로 기억한다)도 나오니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태도도 볼 수 있고. 

영상도 아주 아름답다.

이 영화의 감독도 여성이어서 심리묘사와 표정연기가 매우 치밀하다. 


<문명>에 대해 이해가 있는 사람, 

문명화 과정 이전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 이해가 있는 사람이 보면 매우 재미있게 보일 것이고, 

그냥 보면 특이한 사랑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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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를 위한 변명입니다. 

이 영화를 포스팅한 여성분은 이것을 <추천여성영화>로 분류를 했으니,

라오 여성을 비하한다고 제게 강하게 거부감을 가졌을 분들에 대한 변명이다.  


내가 모든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성'에 촛점을 맞춘 페미니즘의 강력한 지지자이다. 

아마도 머지 않아 한국에서도 유행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한국의 지식 및 이념 시장은 결국 서구 이념의 수입상들이 주류니까. 

나는 그 영향으로 '남성성'이 뭔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고 있다. 

'여성성'도 '남성성'도 내게는 수수께끼와 같다. 

딸애의 아버지니까 이해관계도 있어서 더욱 더 진지하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곧 오게 될 것이고 주류가 될 Feminism의 예비 지지자인 셈이다. 

한국의 Feminist들이 바보만 아니라면 말이다. 


한국 여성이 대 남성에 대한 전투성을 가지면 가질 수록 

남자들은 결혼을 회피하려고 할 것이고

여성들이 권리를 주장하면 할 수록 

남자들은 계약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서구와 똑 같이. 

그 반성으로 일어난 것이 아이러니 하게도 래디칼한 여성운동가들이 발견한 

 '여성성'에 대한 재인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참금(카덩)이 불편한 거래라면 연애를 먼저 하면 되고. 

연애를 먼저 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한국의 혼수문제와 비슷한 관점에 서게 될것이다.  


한국에서도 예비 신랑과 예비 신부는 사랑의 문제이지만 

양가 부모들은 혼수로 거래를 하고 있다. 

'키(key)가 몇 개'니...

이게 거래와 교환이 아니라면 도대체 뭔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혼수를 두고 다툴 사람들은  

사랑해서 결혼했다거나, 

결혼시켰다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지 의문이다.  

열쇄라는 증거가 있는데!


라오 처녀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다소 신파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인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건드렸어? 그럼 책임져!!"


이럴 결심이 서있지 않은 사람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는 '카또'있는 여자와 연애하면 된다. 

이들과는 좀더 근대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순결'을 잃었다는 편견만 없다면 말이다. 

지금의 보편적인 젊은 세대가 그렇듯이. 


카또란 처녀성을 잃은 여성들이 청구하는 지참금의 변형이라고 말한바 있는데  

이해가 안가시면 제가 썼던 글을 찾아서 읽어보시면 되고. 

이때의 주의 사항도 말해두고 싶다. 


커이-짜오, 하오-또, 꾸-믕..

커이, 하오, 꾸는 전부 <나>나 <저>를 가르키고

짜오, 또, 믕은 나와 대화 상대방을 가르키는 말로 <당신>이나 <너>이다. 

셋 쌍 다  존칭어는 아니고, 

순서에 따라 친함의 강도가 더해진다. 


라오 사람과 '야자'를 하거나 너나들이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다시 말해 자신을 커이라고 말하고 

대화 상대를 짜오라고 부르는 사람이 

카또를 부르는 순간 

그것은 성폭력이 될 수도 있다. 


라오 여성은 강인하고 자존심이 세지만 

반면에 배타성이 약하고 포용성도 커서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대체로 용서를 받을 것으로는 예상한다.  


<밤문화>가 아닌 연애는 이해와 학습을 필요로 한다. 


언젠가는 자원봉사 차원이건  영리 목적이건 

한국인과 라오인이 

연애, 사랑,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부딛칠 문제들에 

교육, 상담, 카운셀링, 치유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한국과 라오의 선남선녀들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다는데 도와주는 것은 기꺼운 일이 될 테니까. 

상처받았으면 힐링을 해야 하고.  


한국도 라오도 시민 개념이 아닌 국민 개념을 가진 국가이다. 

내가 한국인임을 포기하지 않는한 라오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라오 명예 국민이 최대이다. 

난 그 명예를 위해서 기꺼이 전방위적으로 헌신할 각오가 되어있다. 

라오라는 국가와 라오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 


라오어가 현재의 종교라면 나의 목표최대치는 라오의 <명예국민>이 되는 것이다. 

네덜란드 시민인 히딩크를 우리가 한국민을 만들겠다고 애교를 떨었던 것처럼. 

이름까지 지어서. 

희동규라고. 


내 글이 라오어로 번역된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말하시는 분이 있다. 

당연히 환영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나는 모든 도덕적, 이론적, 법적 자기 방어와 변명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조국의 치부가 있으면 그것에 분노하는 것이지 

덮어놓고 모르쇠나 외면하는 것이 애국심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건드리는 것이 치부라고 느낄 사람은 우리와 근대적인 사고를 공유한 라오인 일부이다)


보기에 따라 다를 것이지만 

내가 라오 사람을 매도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최소한 라오 사람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고 싶고, 

그들의 문명과 문화 속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 

내 가치관 속에서 찾는게 아니고!


내가 책임져야할 것이 있다면 

나의 무지와 곡해, 지적 나태이다. 

그래서 라오 전문가들인 오래 사신 분들의 비평을 늘 기대한다. 


라오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면 할 수록 

내 어머니나 그 세대가 감당해 온 그 사연 많은 아픔들에 대하여 

인간적인 연민이 밀려온다.   

라오 어머니들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내가 카페지기(내가 생각할 때 난 마담인데, 호스트라 해도 되고)로서 

내가 개설한 카페에 대하여 아무런 거리낌도 두려움도 없다. 


남성의 입장이고, 

적나라 하지만 

내 기본적인 태도는 

라오 여성에 대한 이해와 배려에 있고, 

독자들에 대해서는 선행적인 지식을 전달하는데 있으니까.  


내가 사람들에 대하여 선입견을 가지듯이

다른 사람들이 내게 선입견을 가진다 하여

해명할 이유도 없고 화낼 생각도 없다. 

지금 적고있는 

P.S. 정도로 내 변명은 충분하다. 


미련해 보일지라도 

많은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나는 믿고 있다. 


Time tal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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