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지뢰박물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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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지뢰박물관 기사

배한성 0 2218
지뢰여, 캄보디아의 업보여
 
[한겨레21 2005-01-14 18:12] 
 
 
[한겨레] [김남희의 길 위에서 주운 한 마디]
“사랑을 나누려는 사람은 여기로 오세요”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타이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들어서면 풍경은 살벌하게 변한다. 온갖 호객꾼들이 몰려들고, 누더기를 걸친 아이들이 적선을 요구하며 거칠게 달라붙는데, 짓다 만 건지, 짓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흉한 건물들 사이로 입성 사나운 사람들과 수레, 트럭과 자동차가 뒤엉켜 소란하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30년 내전이 남긴 가난이 지우지 못한 생채기처럼 뚜렷이 박혀 있는 곳, 캄보디아. 이 가난한 나라의 옛 영화를 말해주는 앙코르와트. 인류의 위대함에 고개 숙이게 하는 동시에 그 앞에 선 현대인을 무기력하고 초라하게 만드는 거대한 유적이다.


자원봉사하는 배낭여행객들

이곳에서 우리가 대면하는 건 그 거대한 유적뿐 아니라 내전 뒤에 남겨진 또 다른 유산, 지독한 가난이기도 하다. 사원 주변에서 기념품을 파는 아이들은 누구나 몇개 국어를 서너 마디씩은 익혔다. “시원한 콜라 드시고 가세요.” “엽서 사세요.” 그리고 더 영악한 아이들은 자진해서 사원 안내를 해주고 돈을 요구하거나 “학교에 가고 싶은데 연필을 살 돈이 없다”며 불쌍한 표정으로 관광객을 바라본다. 어린아이가 내미는 풀꽃반지를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면 바로 “원 달러!”라는 외침이 날아든다. “이걸 사주지 않으면 울 거예요”라고까지 말하는 아이의 손을 내치는 일은 모진 마음을 요구한다. 위대한 선조를 둔 후손의 가난하고 남루한 삶이 서글프다.

이 가난한 도시의 한구석에 ‘지뢰 박물관’이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아직도 논일을 하다가 매설한 지뢰가 터지는 바람에 다리를 잃는 어른, 전쟁 유물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장애인이 되고 마는 어린이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지역 주민들에게 지뢰의 위험성을 알리며 지속적인 지뢰 제거 작업을 하고, 지뢰로 불구가 된 어린이들을 국제 사회의 도움으로 수술을 시킨 뒤 학교에 보내 재활을 꿈꾸게 하는 곳이 바로 ‘지뢰 박물관’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서른살 청년 아키라.

그는 한때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의 소년병이었다. 크메르 루주 군에게 잔혹하게 살해되는 부모를 어린 나이에 지켜봐야 했던 그는 자신마저 소년병으로 끌려갔다. 군에서 그는 캄보디아 곳곳에 지뢰를 매설하는 일에 복무하며 소년기를 보냈다. 지금 그의 삶은 지뢰로 장애를 입은 어린이들을 모아 자립을 인도하고, 캄보디아 땅에 아직 남아 있는 600만개의 지뢰를 제거하는 일에 온전히 바쳐지고 있다. 아키라에게 지금의 삶은 자신이 과거에 쌓은 업을 소멸해가는 일이라고 한다. 박물관이라기보다는 허름한 시골집을 연상시키는 그곳에는 그가 직접 그린 그림과 그곳에서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인 어린이들의 사진, 그가 제거한 지뢰들을 모아놓았다.

시엠 리엡의 고아원에서 일어를 가르치며 몇달째 자원봉사 중인 일본인 미호를 만난 곳도 그곳에서였다. 일어 안내문이 곳곳에 붙은 박물관에는 서너명의 일본인 자원봉사자들이 일본인 방문객들을 상대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간혹 서양인 자원봉사자들도 눈에 띄었다. 많은 배낭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여행이 끝날 무렵 남아 있는 의약품이나 옷가지, 문구용품 등을 이곳에 기증하고는 한다. 아키라는 그 물건들을 모아 시골 동네를 다니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그 작고 허름한 지뢰박물관은 아키라의 꿈과 그 꿈을 돕는 각국의 자원봉사자들로 인해 웃음과 희망이 넘치고 있었다.

지뢰박물관뿐 아니라 앙코르 유적지의 복원 작업 또한 국제사회의 원조로 이루어지고 있다. 도시 곳곳에는 일본, 중국, 독일, 벨기에, 프랑스 등 원조 국가들의 국기가 그려진 입간판들이 서있다. 거리에 걸린 현수막을 보고 헌혈을 하기 위해 찾아간 어린이 병원 역시 프랑스의 원조로 운영되는 무료 병원이었다. 이곳에는 수많은 나라의 구호단체가 들어와 학교나 고아원, 병원을 짓고 도로나 다리를 놓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구걸하는 아이들도, 조잡한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도 한두 마디의 한국말을 구사하고, 거리의 악단이 아리랑을 연주할 정도로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이 찾는 이곳에서 ‘대한민국의 원조로 이 건물을 세웠다’는 입간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한국 원조로 세운 건물, 볼 수 있을까

자리를 찾지 못한 돌들이 천년 세월의 이끼를 덮어쓰고 뒹구는 곳. 영화 <화양연화>에서 주인공 양조위가 사랑을 묻기 위해 찾아온 앙코르와트. 이제 우리는 이곳에 사랑을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누기 위해 찾아와야 하는 게 아닐까. 남과 나누며 사는 삶은 내 삶에 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지난 세월의 상처에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삶에는 연대의 손길이 깃든다는 것을 캄보디아는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연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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