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의의 사고 또하나의 안타까운 사연 ***
<앵커>
희생자 중에는 현지 가이드로 활동했던 35살 박진완 씨도 있었습니다. 선교사 자격으로 캄보디아 땅을 밟았던 고 박지완 씨. 생전에 그는, 한국에서 온 천사로 불렸습니다.
이한석 기자입니다.
<기자>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한 35살 박진완 씨의 홈페이지에는 오늘(27일) 하루 박 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친구들과 네티즌들의 글로 가득 찼습니다.
박 씨는 지난 2004년 다일공동체 선교사 자격으로 캄보디아 땅을 처음 밟았습니다.
노숙자, 고아 등 끼니 거르는 게 일쑤인 캄보디아의 극빈자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년 전 신학공부를 마치러 잠시 귀국했다가 돌아간 뒤 시작한 가이드 일도 봉사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안선웅/박진완 씨 교회 후배 : 거기에 보면 굶주린 아이들이 많잖아요. 그 아이들한테 밥 퍼주는 게 이렇게 큰 일일줄은 몰랐다고 그러면서 굉장히 그 일을 뜻깊어 했고...]
대학 시절 총학생회장으로 일할 때는 사비까지 털어서 컴퓨터실을 마련할 만큼 학생활동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박진국/박진완 씨 대학 후배 : 같이 생활하는 학생들도 불편하니까 컴퓨터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자기 돈을 투자해서 컴퓨터를 다 사셨어요. 12대 정도를.]
방세가 모자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는 자기 용돈을 선뜻 건네주던 속 깊은 형이었습니다.
[박진국/박진완 씨 대학 후배 : 방세 날이 되었는데 먼저 말을 안하고, 얘가 돈이 없어서 못 주는구나, 생각이 들면 먼저 내고, 형이 먼저 냈으니까 다음에 돈 생기면 형한테 줘라, 이렇게 챙겨주시기도 하고...]
목회자가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을 돕겠다며 온몸으로 봉사활동을 실천해오던 박진완 씨.
불의의 사고로 평생 봉사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한석 lucaside@sbs.co.kr
희생자 중에는 현지 가이드로 활동했던 35살 박진완 씨도 있었습니다. 선교사 자격으로 캄보디아 땅을 밟았던 고 박지완 씨. 생전에 그는, 한국에서 온 천사로 불렸습니다.
이한석 기자입니다.
<기자>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한 35살 박진완 씨의 홈페이지에는 오늘(27일) 하루 박 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친구들과 네티즌들의 글로 가득 찼습니다.
박 씨는 지난 2004년 다일공동체 선교사 자격으로 캄보디아 땅을 처음 밟았습니다.
노숙자, 고아 등 끼니 거르는 게 일쑤인 캄보디아의 극빈자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년 전 신학공부를 마치러 잠시 귀국했다가 돌아간 뒤 시작한 가이드 일도 봉사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안선웅/박진완 씨 교회 후배 : 거기에 보면 굶주린 아이들이 많잖아요. 그 아이들한테 밥 퍼주는 게 이렇게 큰 일일줄은 몰랐다고 그러면서 굉장히 그 일을 뜻깊어 했고...]
대학 시절 총학생회장으로 일할 때는 사비까지 털어서 컴퓨터실을 마련할 만큼 학생활동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박진국/박진완 씨 대학 후배 : 같이 생활하는 학생들도 불편하니까 컴퓨터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자기 돈을 투자해서 컴퓨터를 다 사셨어요. 12대 정도를.]
방세가 모자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는 자기 용돈을 선뜻 건네주던 속 깊은 형이었습니다.
[박진국/박진완 씨 대학 후배 : 방세 날이 되었는데 먼저 말을 안하고, 얘가 돈이 없어서 못 주는구나, 생각이 들면 먼저 내고, 형이 먼저 냈으니까 다음에 돈 생기면 형한테 줘라, 이렇게 챙겨주시기도 하고...]
목회자가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을 돕겠다며 온몸으로 봉사활동을 실천해오던 박진완 씨.
불의의 사고로 평생 봉사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한석 lucaside@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