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조는 뭘 이야기 하지?
이 사진은 자야 바르만 7세가 만든 앙코르 톰의 바이욘에 있는 부조다.
바이욘의 동문으로 들어가서 왼편으로 벽을 천천히 보다 보면 내부로 가는 문이 있고 남쪽 벽으로 가기 직전에 있는 부조다
대부분의 가이드북에도 설명이 참 많이 되어 있다
잘 모르는 분을 위해 다시 설명하면...
이곳을 서당이라고 한다. 그래서 해석해 보면
1. 보호자다(뒤로 사람들이 더 있다)
2. 훈장이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3. 서당 안에 있는 등 이다
4. 서당에 낼 학비로 가금류(닭?오리?)를 가지고 왔다.
6. 제일 뒤에 학생들이 졸고 있다
5. 졸고 있다고 선생님에게 일러주고 있다.
이 설명으로 들으면 고개가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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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떤 학자는 이곳을 한의원이라고도 한다.
1. 환자의 보호자들이다
2. 한의사다
3. 한약을 매달아 놨다
4. 약값으로 가금류를 가지고 왔다
6. 제일 뒤에 환자가 쓰러졌다
5. 쓰러진걸 알려주고 있다.
또 다른 학자는 이곳을 경매장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1. 경매에 물건을 낸 사람이다
2. 경매사다
3. 경매장의 등이다
4. 물건과 교환할 가금류를 가지고 왔다
5,7 경매사와 물건의 가격을 손가락으로 흥정하고 있다
6. 가격 등을 기록하고 있다.
왜 이럴까?
하나의 그림을 보고 왜 이런 다양한 해석이 나올까??
그건 기록이 정확하지 않아서다
그럼 지금 이야기 하는 역사는 무언가?
책이나 글로 남겨진 기록이 거의 없고 1989년 하노이에 만든 프랑스 극동학원(EFEO)과 1907년 시엠립에 만든 앙코르 유적 보존사무소를 통해 많은 학자들이 앙코르 유적과 역사를 복원했다
무엇을 근거로 복원할 수 있었나??
첫번째 유적의 벽면이나 유적입구에 세운 비문에 새겨진 산스트리트어나 팔리어 혹은 고대 크메르어를 해독하였다
둘째 인도, 중국 등 이웃나라와 사신의 교환이나 무역을 한 기록을 보고 해독한 비문과 더불어 유추 하였다
셋째 그런 기록마저도 아무것도 없을 때는 건축양식, 조각기법 등을 보고 예측 하였다.
대표적으로 기록이 없는 사원이 앙코르 왓이다
아무런 비문도 남기지 않았다
단지 내부에 수리야바르만2세를 찬양하는 글을 남겻다
정확하게는 1층 회랑 중 왕의 행진에 브라 빠다 깜라딴 안 빠라마 비슈누로카 (비슈누와 함께 지내기 위해 신성한 걸음을 하신 군주) 라는 이름으로 수리야 바르만 2세를 조각해 놓은 것을 보고 우리는 앙코르왓이 수리야 바르만 2세의 유적인 것을 알고 있다
그가 1113년에 왕위에 오르고 1118년에 즉위식을 한 것은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언제까지 왕위에 있었는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앙코르 톰의 피미엔아까 앞에서 발견된 비문에 의하면 위대한 군주가 참파와의 전쟁을 위해 떠났다 라는 기록만 발견되었다. 돌아 왔는지??아님 돌아오지 않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 뒤 기록이 없으니까.
그래서 가이드북의 대부분에 그의 제위기간을 1113-1150(?)혹은 1113-1150으로 표시한다
이곳을 오가는 수 많은 자료들이 제각각이며 해석하는 설명자도 제각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이 다 틀린것도 아니고 다 맞는것도 아니다
지금도 새로운 비문이 발견되고 다시 그걸 해독하면 또 다른 주장이 나올 것이다.
보면 볼수록 신비한 앙코르 유적들.....
이런 이야기도 저런 이야기도 귀 기울이면 좋겟다.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더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