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캄보디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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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캄보디아 역사

씨엠립난민 0 3056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한 캄보디아의 정식 명칭은 캄보디아 왕국(Kingdom of Cambodia)입니다. 전체 면적은 약 18로 남북한을 합친 면적보다 3정도 적고 인구는 약 1,400만 정도입니다. 북서쪽으로 태국, 북동쪽으로 라오스, 동쪽으로는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국왕은 안동왕, 노로돔왕 그리고 시소왓왕의 혈통만이 왕위를 이을 수 있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현재 시하모니 국왕이 결혼을 하지 않아 후사가 없더라도 왕위 계승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캄보디아의 국왕은 다음 국왕을 지명하는 권리가 없습니다. 왕이 서거하게 되면 누가 다음 왕이 될지 왕권왕립위원회에서 정합니다. 왕권왕립위원회의 구성은 국회의장이 위원장이 되고 수상, 모하니카이 불교종단과 타마유트 불교 종단의 양 종정, 국회의 제1, 2 부의장으로 구성됩니다.
서기 802년부터 약 600여 년간 동남아시아 전역을 지배했던 크메르제국의 수도는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혁명 이전의 역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의 최대 인구가 15~20만으로 추정되고 당나라의 수도 낙양이 50~60만의 인구였고 앙코르 제국의 수도였던 시엡립에는 100만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규모인 셈이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톤레삽의 엄청난 수자원 때문이라고 하네요.
캄보디아가 1863년부터 1953년까지 약 90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잠시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캄보디아는 1953119일 캄보디아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1970년 국왕이었던 노로돔 시아누크가 베이징을 방문하는 사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론 놀 장군(당시 총리)과 마탁 왕자가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캄보디아는 이때부터 1993년에 열린 1차 총선 전까지 내전에 휩싸이게 됩니다.
중국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리라는 지시를 내린 시아누크를 중심으로 하는 국왕파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론 놀 그리고 폴포트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크메르루즈군의 치열한 내전. 마침내 1975년 크메르루즈가 정권을 잡게 됩니다. 같은 민족을 대상으로 인류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동물농장(조지오웰 작. 독재자와 사회주의를 풍자한 내용의 소설) 실험을 한 폴포트는 1979년 베트남군의 침공으로 정권을 잃고 북쪽 국경 밀림지대로 달아나 게릴라전을 수행하다가 1998년 가택 연금 상태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크메르루즈가 세운 민주 캄푸치아 공화국 시절 그들은 자국민을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의사, 변호사, 교사와 같은 전문직과 지식층을 집중적으로 살해했으며 후에는 안경을 썼거나 손바닥에 굳은살이 없으면 지식인으로 몰려 처형당했고 그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12세기 농경 사회를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 생각했으며 이를 재현하고자 도시를 파괴하고 국민을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그들이 가장 이상적이 사회라 생각한 12세기는 크메르 제국이 가장 번성했고 수르야바르만 2세가 앙코르와트를 건축하고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와 동일합니다.
캄보디아는 내전을 겪으면서 국민들이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에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 벌목을 통해 숯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때부터 캄보디아의 국토가 황폐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드넓은 평지의 숲은 사라졌고 그 결과 해마다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낙뢰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2012년 한해 낙뢰로 인한 사망자는 185명이었습니다.
캄보디아는 내전 당시에 지급된 총기의 회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아직도 총기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죠. 이에 여행객 여러분께서도 늦은 시간에 다닐 때에는 항상 조심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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