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많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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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많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씨엠립난민 2 2348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이국땅서 별세.
 

한 많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일본군 군대위안부로 캄보디아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었던 훈 할머니( 한국명 李南伊: 당시 77)2001215일 생을 마감하면서 남긴 말이다.
1942년 말 18세 때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캄보디아로 끌려가 '성 노예'가 됐던 훈 할머니는 50여 년 동안 자신의 이름도, 고향도, 가족도 모르는 채 단지 자신이 '조선사람'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알면서 세상과 인연을 끊은 채 살았다. 고향 경남 진동에서 일본군에 끌려 부산에서 배를 타고 두 달 가까이 항해를 하다 훈 할머니가 도착한 곳은 캄보디아 프놈펜 교외에 설치된 위안소였다.
1945년 일본의 패망하자 훈 할머니는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일본인 장교와의 관계를 뿌리치지 못하고 함께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이 일본군 장교는 딸(1994년 사망)과 할머니를 놔둔 채 사라져 버렸다. 훈 할머니는 한때 캄보디아인과 결혼해 살기도 했으나 헤어지고 딸과 4명의 외손녀와 함께 프놈펜에서 79떨어진 스쿤이라는 조그만 정글 마을에서 지냈다. 이 마을을 우연히 찾았던 한 한국인 사업가가 훈 할머니의 사연을 현지 언론에 알리면서 한국에서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훈 할머니는 19978월 꿈에도 그리던 고국을 찾았으나 고향도 가족도 찾을 길이 막막했다. 할머니의 기억에는 '바다가 보이는 진동 마을'이라는 사실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진동이라는 지명이 있는 곳을 모두 찾아 다녔지만 모두 허사였다. 어렵사리 친척을 찾기는 했으나 할머니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검찰의 유전자 감식까지 동원해 결국 동생임이 밝혀졌다. 훈 할머니는 동생 이순이(李順伊)씨를 극적으로 상봉했다.
19985월 캄보디아 국적을 포기하고 영구 귀국한 훈 할머니는 그러나 조국에서 오래 생활하지 못했다. 과거의 충격과 아픈 추억으로 언어 능력을 상실, 생활에 불편을 느껴 할 수 없이 캄보디아로 돌아가야 했다. 꽃다운 나이에 이역만리에 성 노예로 끌려가 산전수전을 겪었던 할머니는 외국 땅에서 불귀의 객이 됐다. 할머니의 유해는 유언대로 조국에 봉안되기는 했으나, 이 땅에서 일제에 의해 끌려간 수많은 군대 위안부들 중 살아 돌아온 사람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어디에서 숨졌는지 조차 알 수도 없다.
 

2 Comments
넥서스 2013.07.25 19:00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달건아자 2013.08.11 22:30  
진짜 가슴아픈 일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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