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앙코르 사원의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앙코르 유적의 사원 이름은 언제부터 현재 이름으로 불리우고 그것이 표준이 된것일까요?
(앙코르왓,반데이스라이. 등등) 이 이름이 진짜 앙코르 유적의 이름일까? 한번 생각해 보셨는지요? 원래 앙코르유적의 진짜 이름은 위 링크된 곳에서 확인 할수 있습니다
그럼 왜? 현재의 이름이 되었을까? 궁굼하지 않으신지요?
이유는 1873년에 메콩강 탐사대 일원으로 프랑스인 "루이 들라포르트"라는 사람이 캄보디아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는 통킹탐사대 책임자가 되었을때 캄보디아 탐사를 하겠다고 프랑스에 허가를 받습니다.
참 웃기는 일입니다
남의 나라 탐사를 자기네 나라에 허가를 받는다는것이.. 식민지였기 때문에 가능 하겠지만 씁씁합니다
이 탐사대가 앙코르 유적지를 탐사 하면서 많은 조각상과 조각품들을 프랑스로 가져오게 됩니다.
그 물품을 프랑스로 가져와 최초로 공식 크메르 예술품 컬렉션을 만듭니다.
(프레아칸에 있는 우유바다젖기의 조각상의 일부, 다섯개의머리와 열개의 팔을 가진 거상, 프레아코의 거상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크메르 유적지 거의 모두를 방문하면서 사원의 도면을 그리고 실물을 측정해서 축소 모형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들은 약70점의 조각품과 건축물을 프랑스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은 캄보디아의 그 당시 왕인 노로돔왕에게 프랑스의 석상,판화,등 프랑스예술품 여러점을 선사하면서 프랑스 정부는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몇가지 예술품을 폐하의 나라에서 반출하고자 합니다 그 대신 프랑스에서 가져온 예술품을 받치오니 부디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라고 하고 노로놈왕에게 허락을 받습니다
"루이 들라 포르트"는 프랑스에서 이 유물들을 기반으로 대중들에게 크메르 예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 합니다
그리고 파리의 인도학 학자들이 산스크리트어를 판독하기 위해 캄보디에서 만들어 온 산스크리트어 탁본을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는 유적,유물 리스트가 작성되고 모든 유물은 문서로 기록 됩니다.
이 작업은 프랑스 해군이며 서지학자:(서지학자(書誌學者): 고서 고문서를 읽고 해석 해독하는 학자를말합니다)인 "에티엔 에모니"라는 사람이 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현재 불리우는 사원의 이름을 만든것 입니다.
이 조사팀은 현지인에게 사원의 이름을 물어 봤지만 알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유물의 리스트를 작성 하는데 어려움이 있자 현지인들에게 물어 봅니다
이 것은 캄보디아어로 무었이라고 하느냐? 이런식으로 현지인들에게 물어 보면서 현재 사원의 이름을 만든것입니다
예를 들어 망고나무옆에 사원이 있다면"프라삿 스와이" 프라삿=사원 스와이=망고라는 뜻 입니다
마을근처 숲에 사원이 있으면 "프라삿 프레이" 프레이는 숲입니다.
사원안에 예쁜 여자 조각이 있으면 "프라삿 스라이" 스라이=여자 입니다
이렇게 프랑스인들이 유물 리스트를 만들기 위해 마무렇게나 만든 이름이 바로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사원의 이름 입니다
유물은 이름을 알수 없는 유물도 있기에 번호로 만들어지는데 910번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이름도 모르고 알수도 없는 사원은 유물 486호 라고 알려진 사원도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앙코르 유적,사원의 이름은 1870년대 프랑스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현지어를 아무 생각없이 자기들 이용가치에 따라 편한데로 접목 시킨 이름인 것 입니다.
알고보니 참 허무하죠!! 전 이 사실을 알았을때 참 허무하고 노로놈이란 왕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유물을 해외반출 할수있게 허가했을까? 라는 생각도하게 되고 참 무지의 극치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때의 상황이 프랑스와 불편한 관계가 성립되면 안되는 상황 이기도 했을거라 생각하지만...
우리도 일제에 의해 많이 도난 당했죠. 쩝.......
그리고 역시 국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