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아리산-대만인들이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추천하는 명산~
올해 8월에 대만에서 열흘 남짓 머물렀는데, 날씨 운이 지독히도 없는 기간에 걸려서 그 짧은 체류기간 동안 태풍이 3번 오고 , 지진이 한번 났었습니다. 지진의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아, 그냥 잊고 지나가기에 충분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흩뿌리는 비와 바람 때문에, 일월담日月潭(르웨이탄)근처까지 갔지만 결국 일월담과 구족문화촌을 못보고 돌아오기 까지 했어요.
우리는 “다음에 다시 대만에 올 이유를 남겨두었다!!”라고 스스로 위로 했지만,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 여정이긴 했습니다.
대만이 섬이라서 그런지 여름에는 각종 기후의 영향을 좀 심하게 받는 편인데다가 여름철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어 8월과 9월의 강수량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보통 에바항공으로 태국을 오가는 여행자 분들 중에서는 스탑오버하여 대만의 정취도 같이 즐기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되도록 여름이외의 계절이 여행하기에는 좋을 거 같아요. 물론 겨울에는 기온이 적잖이 내려간다는 단점이 있겠지만 비 맞고 태풍 맞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쨌든... 이와 같은 이유로 이곳 아리산에서의 일정도 계속 내리는 비 때문에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대만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곳에 다녀온 후기 잠깐 써 봅니다.
까오슝에서 출발하든 타이뻬이에서 출발하든 아리산에 접근하려면 일단 자이(嘉義)라는 도시에 다다르는 걸로 그 첫발자국을 뗍니다. 우리는 까오슝-자이 구간의 호신(和欣;HoHsin)객운 버스를 이용하였는데, 이 버스의 내부는 그야말로 아시아 최고(일본은 안 가봤으니 제외 ^^;;) 수준이더라구요. 대만도 우리나라처럼 많은 고속버스 회사들이 영업을 하고 있는데, 제일 오래된 전통을 자랑한다는 국광객운國光客運의 버스들이 좀 노후한 편이었구요, 그 외 버스회사들의 버스들은 상태가 정말정말 좋았습니다. 살짝 놀랍기까지 했는데요,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 중 제가 타본 것 중에는 전체 좌석이 모두 개인 좌석(좌우 한 줄씩)이고 모니터에는 다양한 영화를 골라 볼 수 있고 각종 게임까지 할 수 있더라고요.
하여튼 자이의 기차역 옆에 있는 호신 정류장에서 하차한 우리는 잽싸게 아리산행 산악열차 표를 구입합니다.
1인당 399元의 산악열차 표 값을 지불하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플랫폼으로 가니 우리 같은 여행객들이 많이 보이는데,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태풍 때문인지 이 명산의 이름값에 비해 그다지 여행자들로 북적이지는 않았어요.
자이역 들어가서 맨 오른쪽으로 가면 산림열차 타는 곳이 나온다
아리산행 열차는 세계에서 3대 산악열차 중의 하나이며, 열차로 가는 동안 보이는 숲의 전경들이 무척 아름답다고 각종 매체들에서 가열 차게 홍보하고 있는데, 사실 열차 내부시설 부터 좀 아기자기 예쁘게 꾸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낡긴 했습니다. 과도한 기대 때문에 열차 운행하는 동안 거대한 감흥은 일지 않았지만 한번쯤 경험해 보기에는 손색이 없었어요.
거의 다왔을 무렵, 기차는 십자로十字路역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모든 사람들이 다 내리더군요. 중국어로 방송이 나왔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와 몇몇 일본인들은 그냥 기차 안에서 서성대고 있는데 한 대만 가이드가 와서 알려주더라고요. 여기서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한다고... 그래서 다 내린 후 조금 걸어가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습니다. 태풍 때문에 철로에 문제가 생겨 그때만 임시적으로 그런 건지, 아니면 요즘 공사(나중에 보니까 아리산 역을 공사하고 있더군요...) 때문에 그런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종점에 다다르면 아리산 입장료 150元을 냅니다. 이때도 대만 사람들은 다들 알아서 차에서 내려 다 사가지고 오는데, 맨 뒷자리에 앉은 우리를 포함한 외국인 여행자들만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멀뚱히 있다가 표 검사를 하러 온 공원 관리 직원의 안내에 따라 후다닥~ 뛰어 내려가 비를 맞으며 표를 구입했어요.
그리고 드디어 아리산 여관촌에 도착. 아아~~ 이때가 거의 저녁 5시를 넘긴 시간... 다른 여행자들은 이미 숙소를 예약했는지 그 상황 속에서 어디론가 휘리릭~ 다 사라져 버리고, 잠시 망연자실하던 우리는 어디 호객꾼들 없나 싶어서(다른 때는 호객꾼들을 피하지 이때는 호객꾼들이 우리를 좀 낚아채가길 기대했습니다) 어정거리다가 마침내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1,200元짜리 숙소에 안착하게 됩니다. 쬐끔 비싸긴 했지만 그나마 이게 비수기 요금이고 방 도 깨끗하고 시설도 괜찮아서 짐을 풀었습니다.
사실 고픈 배와 추워서 닭살이 돋아난 피부, 그리고 지친 여정 때문에 퀭한 눈을 하고는 다시 쏟아지는 빗속에서 숙소를 찾아 헤멘다는건 무리였지요.
숙소에 짐만 풀어놓은 채 우리는 식당을 찾기 위해 샤사삭~ 마을 중심부로 다시 올라왔습니다. 이곳 식당들은 <四菜一湯> 즉 4가지 요리 와 탕 한가지에 500元~~ 이라는 간판을 많이 걸어놓고 있더라구요. 어떤 곳은 4채1탕에 400元도 하던데, 이 상차림 하나를 시키면 2명이서도 거뜬히 먹고 남습니다. 밥은 무제한 셀프 리필 이구요. 대형 급식 체제 같은 모양새여서 사실 약간 빈티가 나는 점도 없잖아있지만, 배부르고 맛있게 먹기에는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아리산의 여관촌. 나름 깔끔하다. 맨 왼쪽이 우리가 묵었던 숙소
버스터미널 건물에 붙어 있는 식당가. 그중 한곳으로 들어갔다.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도 뭐한 작은 중심지이지만 식당, 우체국, 편의점 등 있을 건 다 있구요, 게다가 우리는 환전을 제 때 안 해 마침 현금이 똑 떨어져서 걱정을 하던 차였는데(춥고 배고프고 거기다 돈까지 없는 최악의 상황 ㅠㅠ) 편의점 Hi life(萊爾富)에 설치된 ATM 덕에 지갑이 다시 넉넉해졌어요. 정말 사랑스런 편의점입니다. 토요일이라 상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은 상황에서 ATM을 찾아 헤메다 우체국에 딸려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체크카드, 직불카드, 씨티은행 국제 현금카드 모두 안 되어서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다음날까지 거의굶어야 하는 상태였지요. 하지만 우연히 하이라이프를 발견하여 돈을 찾고는 다음날 이른 아침식사를 이곳에선 산 먹거리들로 해결했으니, 그야말로 지갑과 배를 불려주는 여행자의 쉼터로군요.
이날은 카오슝에서 자이를 거쳐 이곳에 이르는 이동과 숙소 잡기, ATM 찾아 헤메기, 그리고 저녁 찾아먹기에 온 하루를 다 쓰고(그것도 비를 맞으면서) 내일을 위해서 일찍 잠이 듭니다. 다른 여행자들도 마찬가지이구요...
다음날 숙소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행들을 깨우는 목소리로 시끌벅적 해지고 분주합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일출을 보러가기 위해 祝山역으로 기차를 타고가거나 숙소에서 제공하는 봉고를 타고 이동하는데, 이때는 일출이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때여서 神木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1인당 50元 하는 이 목재 열차는 정말로 운치가 있는 예쁜 기차였어요. 내리는 게 아쉬울 정도였고(15분인가 탑니다), 묘하게 덜컹대는 느낌마저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신목역에 도착해서 원시림을 돌며 삼림욕을 했습니다. 비를 맞을지언정 상쾌하고 의미 있는 산책이었습니다. 나중에 돌아가는 기차를 코앞에서 놓치고 물에 빠진 생쥐꼴로 마을까지 터벅터벅 걸었던게 좀 고생되긴 했지만요...
대만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 명산의 자태는 몇 장의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아리산 역에서 신목역으로 가는 기차 시각표. 왼쪽줄이 아리산발, 오른쪽은 신목발
흐리고 비가 와서 사진찍기도 어려운데다가 울창한 나무들때문에 어두워서 사진이 거의 안나왔네요. 너무 아쉽습니다.
빗속에서 혹여 엉덩방아라도 찧을까봐 조심조심하며 목재로 탄탄히 정비된 산책로를 둘러보고는 서둘러 체크아웃 시간 전에 숙소로 돌아와 도시로 바삐 돌아가는 것이 이곳을 방문한 주말 여행객들의 대부분의 일정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지요.
하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산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얼마를 여기서 머무르건 그건 각자의 자유. 12시 체크 아웃시간에 맞추어 후다닥 이곳을 떠나오긴 했지만, 사실 이렇게 한나절만을 할애하기에는 정말 아까운 곳이었어요. 우리는 비 때문에 이곳에 있어봤자 더 볼 수 있는 게 없겠다 싶어 1박만을 하고 물러나왔지만, 다음에 방문하게 되면 일출도 보고, 산 속의 원시림 산책로도 구석구석 빠짐없이 다니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12시에 아리산-자이 행 버스(일인당 214元)로 자이로 나와, 다시 자이-타이뻬이 행 국광버스(375元)를 타고 수도인 타이뻬이로 돌아오니 시간은 벌써 저녁 먹을 때를 훨씬 넘겼네요.
사방은 여느 대도시들처럼 , 네온간판이 반짝거리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이 날 오전 내가 수령이 천 년을 가뿐히 넘기는 거목들 사이에서 분주하게 돌아 다녔었나 할 정도로 아주 이질감이 극명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