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에서의 1일 투어 13
여행기간 : 02 년 3월 14일 ~ 4월 3일
여행 날짜 : 3월 23일 토요일 ( 달랏 2일째 )
눈을 떠 보니 아침 6시20분이다.
간 밤에 솜 이불 덕택으로 따뜻하게 잘 잤다.
두툼한 솜 이불이 있어야 하고 선풍기 에어컨이 없던 이유도 알게 되었다. 밤에는 기온차가 심했다.
어제 까지 호치민에서 무더위에 쫓기며 지냈는데 한 나라 안에서
도 기후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아! 아침 기분이 상쾌하다.
하루 밤 사이에 힘이 재 충전 된 듯한 기분이다.
오늘 하루 투어도 즐거울 것 같다.
우리는 "HUONG THUY HOTEL"에서 방을 옮기기로 했다.
중심가에서 벗어나 있어서 밤 길 다니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나짱으로 출발 하기도 좋고 신 카페 사무실이 있는 "TRUNG CANG HOTEL"로 옮기기로 했다.(1박에10불)
다른 집에 비해 약간 비싼 편이나 새 집에다 모든것이 새 것이라 맘에 들었다.
오늘 우리와 1일 투어를 함께 할 가이드는" 미스터 남" NO 5번이다.
사람이 친절하고 인상이 꼭 순한 한국사람 같다. 영어도 잘 한다.
그리고 차도 한국 "프라이드 베타"다.
이국에 와 있다는 기분이 전연 들지 않는다.
아침은 호수 옆 언덕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먹었다.(56000동)
음식이 입에 맞고 깔끔하다.
역시 분위기가 있고 보니 좀 비싸기는 하다.
물수건 사용료(2000동)
오늘 투어는 택시를 대절(15불)하여 보고 싶은 곳 10곳을 보기로 했다.
시내는 걸어 다니면서 볼 수도 있기에 외곽 부터 먼저 보기로 했다.
10:00 투어 출발!
택시는 시내를 벗어나자 어제 지났던 소나무 숲이 울창한 고개를 넘어 외곽으로 빠지기 시작한다.
!0:40 처음 목적지인 치킨 빌리지 도착.
마을 입구에 내리니 커다란 닭 모양 부조물이 이방인을 반긴다.
이곳은 1977년에 형성된 KHO(코호) 라는 소수민족 마을이다.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 쌓인 들판에 옹기종기 마을들이 자리잡고 있다.
탐스럽게 잘 자란 양배추가 한창 출하 중이었다.
가옥의 형태만 빼고는 전형적인 한국의 농촌 모습이다.
당근,배추, 방울 토마토, 양배추, 꽃 등 재배 작물도 꼭 같다.
마을을 들어 서니 기념품을 파는 가게 앞에 모여 있던 여인들이 " 곤니찌와" 한다.
나는 "노 곤니찌와"
"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에 답례를 하니 그 때서야 모두가
"아! 따이한" 하고 아는 체를 한다.
그러나 나는 이들이 약간 두렵다.
베트남 전쟁 당시 우리로 인하여 이들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은 아픈 상처라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봐!
한쪽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우리 주위에 하나 둘씩 모여 들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의복을 보니 너무 남루하고 가난의 때에 찌들려 있다. 안쓰럽기 그지없다.
" 이럴 줄 알았더라면 런닝 이라도 몇장 가져올 걸"
초등에서 42 년간을 아이들과 동고 동락했던 지난 세월 때문일까?
나는 어느 나라 어느 곳을 가든지 아이들을 만나면 그냥 스치지 못한다.
천진난만한 그들의 눈망울을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한다.
여기도 예외 일수 없다.
가녀린 몸매에 애처러운 눈빛으로 나에게 호소를 하는 것 같다.
나는 최선의 방법으로 풍선과 사탕으로 이들을 달랜다.
그런데 풍선은 캄보디아에서 100여개가 이미 동났다.
이제 남은 것은 마트에서 사온 베개 만한 대형 사탕 2봉지 뿐!
그중 한 봉지를 오늘 배낭에 넣어 왔다.
도로 건너 편에 허름한 건물이 학교 같아서 물어보니 그렇단다.
주위에 몰려든 아이들에게 사탕 한줌 씩을 나누어 주고 학교로 발길을 옮겼다.
교실을 보니 제대로 된게 하나도 없다.
다 부서져 가는 책걸상에 바닥은 맨 흙 바닥이고 칠판도 칠이 벗겨져 나가서 글을 알아 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교육 환경이 이렇게 열악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내 어린시절 (6.25사변 때) 그 때가 생각난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을 생각하니 천국과 지옥이다.
사탕을 나누어 준다는 입 소문에 어른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몰려들기 시작 했다.
줄잡아도 오륙십 명은 더 될 것 같다.
서너 개씩 쥐어 주던 사탕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서로 달라고 아우성이다.
아무리 질서를 지키라고 해도 소용없다.
딸 아이를 시켜서 사탕을 더 사 오도록 했다.
마침 가게에 베트남 사탕이 있었다.(18000동)
교실 안에서 한 녀석 씩 주고 내 보내기를 수없이 반복해도 끝이 없다. 받고 또 받고.....
하는 수없이 현지인 젊은 남자 분에게 사탕 봉지를 맡기고 도망치듯이 그곳을 빠져 나왔다.
돌아보니 아이들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다.
" 이 일을 어쩐 담, 행여 다치기라도 하면....."
어쩐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미스터 남을 재촉해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 두번 째는 프랜폭포다.(입장료 6000동)
동물원이 있는 곳으로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았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는데 갑자기 인상이 경직 된 군인들을 만났다.
산속에서 우리 모녀는 새파랗게 겁에 질려서 허둥지둥 계곡으로 내려섰다.
위쪽에는 높이 10M의 프랜 폭포가 있고 그 아래로는 자그마한 인공 호수가 자리잡고 있었다.
작은 케이블 카도 운행되고 소수민족 의상(까허족)을 빌려 입고 기념 촬영도 할수 있다.
그리고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놀 수도 있다.(보트비 5000동)
공원을 돌아 내려 오니 군인들이 많이 보였다.
"아하! 오늘이 토요일 이라서 휴가를 나왔나 보다."
긴장 되었던 마음이 좀 풀렸다.
그런데 계급이 제일 높아 보이는 한 녀석이 내 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롱(베트남 모자)을 쓰고 있었기에 현지 아가씨로 본 모양이다. 외국 아가씨라는 걸 알고 이것 저것 질문을 한다.
같이 왔던 군인 일행들이 (30여명쯤) 두사람을 가운데 두고 순식간에 에워 쌌다.
기념 사진 도 몇 컷트 함꼐 하고 나니 내일 자기가 가이드를 해 주겠단다.
손해 갈것은 없다 싶어서 호텔을 알려 주고 내일 아침 10시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이곳은 느긋하게 시간을 가지고 쉬어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아이스커피 2잔(10000동)
* 요술왕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10-14 08:48)
여행 날짜 : 3월 23일 토요일 ( 달랏 2일째 )
눈을 떠 보니 아침 6시20분이다.
간 밤에 솜 이불 덕택으로 따뜻하게 잘 잤다.
두툼한 솜 이불이 있어야 하고 선풍기 에어컨이 없던 이유도 알게 되었다. 밤에는 기온차가 심했다.
어제 까지 호치민에서 무더위에 쫓기며 지냈는데 한 나라 안에서
도 기후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아! 아침 기분이 상쾌하다.
하루 밤 사이에 힘이 재 충전 된 듯한 기분이다.
오늘 하루 투어도 즐거울 것 같다.
우리는 "HUONG THUY HOTEL"에서 방을 옮기기로 했다.
중심가에서 벗어나 있어서 밤 길 다니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나짱으로 출발 하기도 좋고 신 카페 사무실이 있는 "TRUNG CANG HOTEL"로 옮기기로 했다.(1박에10불)
다른 집에 비해 약간 비싼 편이나 새 집에다 모든것이 새 것이라 맘에 들었다.
오늘 우리와 1일 투어를 함께 할 가이드는" 미스터 남" NO 5번이다.
사람이 친절하고 인상이 꼭 순한 한국사람 같다. 영어도 잘 한다.
그리고 차도 한국 "프라이드 베타"다.
이국에 와 있다는 기분이 전연 들지 않는다.
아침은 호수 옆 언덕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먹었다.(56000동)
음식이 입에 맞고 깔끔하다.
역시 분위기가 있고 보니 좀 비싸기는 하다.
물수건 사용료(2000동)
오늘 투어는 택시를 대절(15불)하여 보고 싶은 곳 10곳을 보기로 했다.
시내는 걸어 다니면서 볼 수도 있기에 외곽 부터 먼저 보기로 했다.
10:00 투어 출발!
택시는 시내를 벗어나자 어제 지났던 소나무 숲이 울창한 고개를 넘어 외곽으로 빠지기 시작한다.
!0:40 처음 목적지인 치킨 빌리지 도착.
마을 입구에 내리니 커다란 닭 모양 부조물이 이방인을 반긴다.
이곳은 1977년에 형성된 KHO(코호) 라는 소수민족 마을이다.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 쌓인 들판에 옹기종기 마을들이 자리잡고 있다.
탐스럽게 잘 자란 양배추가 한창 출하 중이었다.
가옥의 형태만 빼고는 전형적인 한국의 농촌 모습이다.
당근,배추, 방울 토마토, 양배추, 꽃 등 재배 작물도 꼭 같다.
마을을 들어 서니 기념품을 파는 가게 앞에 모여 있던 여인들이 " 곤니찌와" 한다.
나는 "노 곤니찌와"
"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에 답례를 하니 그 때서야 모두가
"아! 따이한" 하고 아는 체를 한다.
그러나 나는 이들이 약간 두렵다.
베트남 전쟁 당시 우리로 인하여 이들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은 아픈 상처라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봐!
한쪽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우리 주위에 하나 둘씩 모여 들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의복을 보니 너무 남루하고 가난의 때에 찌들려 있다. 안쓰럽기 그지없다.
" 이럴 줄 알았더라면 런닝 이라도 몇장 가져올 걸"
초등에서 42 년간을 아이들과 동고 동락했던 지난 세월 때문일까?
나는 어느 나라 어느 곳을 가든지 아이들을 만나면 그냥 스치지 못한다.
천진난만한 그들의 눈망울을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한다.
여기도 예외 일수 없다.
가녀린 몸매에 애처러운 눈빛으로 나에게 호소를 하는 것 같다.
나는 최선의 방법으로 풍선과 사탕으로 이들을 달랜다.
그런데 풍선은 캄보디아에서 100여개가 이미 동났다.
이제 남은 것은 마트에서 사온 베개 만한 대형 사탕 2봉지 뿐!
그중 한 봉지를 오늘 배낭에 넣어 왔다.
도로 건너 편에 허름한 건물이 학교 같아서 물어보니 그렇단다.
주위에 몰려든 아이들에게 사탕 한줌 씩을 나누어 주고 학교로 발길을 옮겼다.
교실을 보니 제대로 된게 하나도 없다.
다 부서져 가는 책걸상에 바닥은 맨 흙 바닥이고 칠판도 칠이 벗겨져 나가서 글을 알아 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교육 환경이 이렇게 열악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내 어린시절 (6.25사변 때) 그 때가 생각난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을 생각하니 천국과 지옥이다.
사탕을 나누어 준다는 입 소문에 어른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몰려들기 시작 했다.
줄잡아도 오륙십 명은 더 될 것 같다.
서너 개씩 쥐어 주던 사탕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서로 달라고 아우성이다.
아무리 질서를 지키라고 해도 소용없다.
딸 아이를 시켜서 사탕을 더 사 오도록 했다.
마침 가게에 베트남 사탕이 있었다.(18000동)
교실 안에서 한 녀석 씩 주고 내 보내기를 수없이 반복해도 끝이 없다. 받고 또 받고.....
하는 수없이 현지인 젊은 남자 분에게 사탕 봉지를 맡기고 도망치듯이 그곳을 빠져 나왔다.
돌아보니 아이들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다.
" 이 일을 어쩐 담, 행여 다치기라도 하면....."
어쩐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미스터 남을 재촉해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 두번 째는 프랜폭포다.(입장료 6000동)
동물원이 있는 곳으로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았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는데 갑자기 인상이 경직 된 군인들을 만났다.
산속에서 우리 모녀는 새파랗게 겁에 질려서 허둥지둥 계곡으로 내려섰다.
위쪽에는 높이 10M의 프랜 폭포가 있고 그 아래로는 자그마한 인공 호수가 자리잡고 있었다.
작은 케이블 카도 운행되고 소수민족 의상(까허족)을 빌려 입고 기념 촬영도 할수 있다.
그리고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놀 수도 있다.(보트비 5000동)
공원을 돌아 내려 오니 군인들이 많이 보였다.
"아하! 오늘이 토요일 이라서 휴가를 나왔나 보다."
긴장 되었던 마음이 좀 풀렸다.
그런데 계급이 제일 높아 보이는 한 녀석이 내 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롱(베트남 모자)을 쓰고 있었기에 현지 아가씨로 본 모양이다. 외국 아가씨라는 걸 알고 이것 저것 질문을 한다.
같이 왔던 군인 일행들이 (30여명쯤) 두사람을 가운데 두고 순식간에 에워 쌌다.
기념 사진 도 몇 컷트 함꼐 하고 나니 내일 자기가 가이드를 해 주겠단다.
손해 갈것은 없다 싶어서 호텔을 알려 주고 내일 아침 10시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이곳은 느긋하게 시간을 가지고 쉬어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아이스커피 2잔(10000동)
* 요술왕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10-14 0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