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영웅들...
세계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베트남의 거리 이름은 베트남 역사에서 위대한 영웅들의
이름을 딴 곳이 많습니다.
살짝 역사 공부를 하고 간다면, 이해 하기가 쉬울꺼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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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응우 라오[Phạm Ngũ Lão] 1255 ~ 1320
쩐 홍 다오[Trần Hưng Đạo] 1226 ~ 1300
쩐 흥 다오(Trần Hưng Đạo)는 남딘(Nam Định)성 출신으로 쩐(Trần) 왕조(1225~1400년)시대의 제일의 공신이자 장군으로 쩐 꾸옥 뚜언(Trần Quốc Tuấn)이 그의 본명이다. 그는 쩐(Trần) 태종의 손자이며, 원나라가 남방으로의 팽창 정책을 펼치면서 3차례에 걸쳐 베트남을 침략했는데, 쩐 흥 다오(Trần Hưng Đạo) 장군은 백성의 단결력에 호소해 원(元) 나라의 침략을 물리친 베트남의 민족적 영웅이자 천부적인 전략가이다. 1283년 원 나라가 50만 대군으로 베트남을 공격해 1285년 초 당시 왕도인 탕롱(Thăng Long-현 하노이의 옛 이름)이 함락되자 당시 왕 인종(1273~1293년)은 전쟁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원에 항복할 것을 쩐 흥 다오(Trần Hưng Đạo) 장군에게 묻자 ‘항복하시려면 저의 목을 먼저 베어 달라’며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고 투쟁하여, 탕롱을 재탈환하고 원군을 물리쳤다.
베트남과의 패전에 격노한 원세조는 1287년 재차 수륙(水陸) 양군 30만 대군으로 제3차 베트남을 침략했으나, 쩐 흥 다오(Trần Hưng Đạo) 장군은 하이퐁 근처 바익 당(Bạch Đằng)강 전투에서 강바닥에 용치를 박고 만조때 원의 전함을 유인, 간조때 용치에 걸려 꼼짝 못하는 원 수군을 대파했다. 아울러 패퇴해 도주해가는 원나라의 육군마저도 미리 매복시킨 복병을 통해 대파시켜 국가의 독립을 지킨 베트남 제1의 민족 영웅이다. 징기스칸이 세운 몽고족의 원나라에 대항해 굴복하지 않고 전쟁에서 승리해 독립을 지킨 유일한 나라가 베트남이 아닌가 싶다. 베트남 해군은 오늘날에도 바익 당(Bạch Đằng)강 전투를 기려 쩐 흥 다오(Trần Hưng Đạo) 장군을 ‘베트남 해군의 아버지’로 기리고 있다. 국민들은 사당을 지어 그의 공로를 기리고 있는 데, 끼엡 박(Kiếp Bắc) 사당이라고 불리운다.
레러이 [黎利(여리), Le Loi, 1385~1433]
레타이또[黎太祖: 1428~1433]라고도 한다. 중국은 베트남을 BC 111년부터 AD 938년까지 천년 이상 지배하였고, 그 이후에도 침입을 계속하였다. 명의 영락제에 의해 베트남이 재정복되자 베트남인들 사이에서 저항운동이 일어났으나 불행히도 내분 때문에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명나라는 베트남을 지배하면서 경제적 착취와 함께 문화적 동화정책을 강화시켰으므로, 저항운동은 재연되었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레러이였다.
1418년 타인호아[淸化] 지방에서 군사를 일으켜 저항운동을 하였으나, 처음 몇 년간은 지지부진하여 한때 명나라 군대와 타협도 하였다. 1424년 저항을 재개하여 명군을 격파하고 그 세력을 베트남 전역으로 확대시켰다. 마침 중국에서는 영락제의 사망으로 명군이 철수함에 따라 베트남은 독립을 되찾았다. 그는 새로운 왕조를 세움과 동시에 그 기반을 확고히 하고 농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킬 목적에서 토지대장과 호적을 재정비시켰으며, 이를 근거로 하여 베트남 최초의 균전제를 실시하였다. 한편, 이전의 역대왕조가 불교를 숭상했던 것과는 달리 유학을 국가의 지배이념으로 삼았고, 이 정책은 후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 점에서 레왕조의 성립은 베트남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