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에서 장기체류를 하다보니(17)
한국과 베트남은 유교적 전통문화가 있어서 그런지 유사한 점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지역적 거리감과 기후 풍토 등의 차이로 다른 것 또한 많습니다. 사고방식의 차이도 있고, 생활 습관의 차이 등도 있습니다. 물론 저보다 더 연장자 분들이 보기에는 다르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사라져 버렸지만, 그래도 참 좋은 문화였는데,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몇 가지 소개할까 합니다. 시대를 역행하자는 말은 아니고, 단지 여기 와서 장기로 지내다 보니 느끼게 되는 그런 소감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 심부름 하기 – 어릴 때 아버지가 점방(작은 구멍가게)에 가서 담배 사와라 하고 1000원짜리를 던져 주시면 열심히 뛰어가서 사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한테 담배 심부름 시키는 것이 무슨 추억이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악용의 여지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담배심부름을 다니던 때에는 중고생이 담배를 피웠지만, 어른들이 아버지 심부름이라고 하면 믿었다는 점입니다. 집안의 구성원으로서 가정의 일정 부분을 담당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어머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두부 1모를 사오라고 하면 열심히 뛰어갔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이것 또한 역시 구성원으로서의 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베트남에서는 아이들이 아버지의 담배심부름이나 맥주에 넣을 얼음을 사러 가는 심부름을 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리고는 5000동을 받아서 구멍가게에서 과자 하나 사먹고는 합니다. 아이는 부모가 해주는 뭔가를 받고만 사는 수동적 구성원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함께 하는 진정한 구성원으로서 같이 생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라는 말보다는 뭔가 같이 동고동락을 하는 구성원이라는 일체감을 줄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었으면 하면 바람이 있는 것이죠.
2. 버스에서 자리 양보하기 –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실 나이가 드신 분들이 양보를 바라지도 않는다는 내용은 좀 서글픈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에게도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젊은 사람이 자리를 양보하면 그다지 고맙다는 인사를 안 하십니다. 그 인사 한번 하면 무슨 죽음을 맞이할 것도 아닌데, 그냥 당연한 듯이 앉아버립니다. 저라도 기분이 나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 베트남은 나이 든 어른이나 임산부가 버스에 오르면 자리를 자연스럽게 양보해 줍니다. 만약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표를 파는 안내원이 젊은 사람에게 양보하라고 손짓을 합니다. 그 학생은 별로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양보하더군요. 물론 여기 어른들은 고맙다고 인사를 잘 하지 않습니다. 다음에 한번 그런 내용을 다루겠지만, 속으로는 고마워도 겉으로 잘 표현을 하지 않는 이들의 문화 때문입니다.
3. 조부모의 아기 돌보기 – 우리나라에서도 있는 것이지만, 베트남은 가족 중심의 문화가 강해서 아기의 부모가 맞벌이일 경우에는 조부모가 당연히 아기를 돌봅니다. 물론 조부모가 없는 경우에는 유아원 같은 곳에 아기를 맞기지만 말입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보면 부모 중 한쪽이 오토바이에 아기를 태우고는 열심히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유아원인지 유치원인지 잘 모르지만, 아기를 맞기고 출근을 합니다. 길에서 조부모가 아기를 돌보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아무리 좋은 선생님일지라도 자기 가족처럼 돌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4. 거리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 베트남에서는 초등학생 정도되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을 너무 자연스럽게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사는 12군은 특히 변두리라서 인지 몰라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학교를 마치면 여기도 아이들이 학원을 가기는 합니다. 특히 영어학원을 많이 간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거리에서 건강하게 뛰어 노는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 학교 운동장이 없어서 인지, 주로 동네의 공터나 동네 체육 센터에서도 종종 보게 됩니다. 건강한 것이 어찌 보면 자식에 대한 최대한의 부모 사랑이 아닐지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5. 가족들 간의 모임 – 우리나라에서도 가족 간의 모임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베트남은 주말이면 가족끼리 모여서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시간을 잘 보냅니다. 특히 주말 커피숍에 가보면 온 가족이 놀러 와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커피숍에서 밥도 판매를 하니 하루를 가족과 함께 가족끼리 보내는 것이죠. 물론 연인이나 친구끼리 오는 모임도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가족끼리 잘 옵니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오늘도 회사 회식을 하는 것은 아닌가요? 그러다 보니 가족들간의 대화도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대화가 사라져서 한 때 사회문제가 되었고, 지금도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은 많이 아는 사실 입니다.
6. 사람들 간의 대화 문화 – 여기 베트남에서는 세대간, 직업간의 차이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대화를 하는 것이 참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에서나 거리에서나 누구던지 먼저 말을 걸면 말을 받은 사람은 참 대답을 잘 해줍니다. 외국인에게는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이 영어가 안 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간단한 베트남어로 말을 걸면 열심히 대답해주고, 틀린 발음이나 성조도 고쳐주고 열심히 대화를 합니다. 특히, 길거리 커피숍에서 대화가 시작되면 자기의 시간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열심히 말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베트남어 실력이 더 좋아지면 더 많은 대화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베트남 사람의 첫인상은 까칠하고 무뚝뚝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알게 되면 참 재미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위험한 상황에서는 피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위험을 대신 할 사람은 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 말고도 좋은 것들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은 얼마던지 있을 텐데,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이정도 인듯합니다. 옆집하고 인사하고 지내는 것 등도 그런 것 이겠지요.
베트남의 문화가 모두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간의 단결력이 너무 강해서 사실 역작용도 있는 것은 확실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좋은 것은 틀림없이 좋은 것일 테니 굳이 부정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번에는 제가 베트남 호치민에서 느끼는 베트남에서 지내면서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내용을 한번 정리해 볼까 합니다. 즐거운 신정연휴가 끝이나니 또 바쁜 일과가 시작되는 군요. 가끔 나타나서는 별 시덥지 않은 내용으로 장문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오늘 한국에 전화나 한 통 해야 겠네요. 가족은 한국에 살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