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에서 장기체류를 하다보니(16)
베트남어를 배우다 보니, 이들의 언어 생활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아직 표준어 규정이 없다는 것이 언어생활의 단순화가 안 되었다는 것도 있지만, 언어의 풍요로움이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한국 사람(다른 외국인 포함)들은 처음에 호치민에 와서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발음과 성조일 것입니다. 6성조와 발음(특히 모음 발음)은 극복해야 하는 첫 번째 장애물입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따라 할 때쯤이면 다시 부딪히는 것은 지역에 따른 다른 단어의 사용이 될 것입니다. 베트남은 아직 표준어 규정이 없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하노이의 말이 표준어라고 쉽게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에서 쉽게 하는 방식대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TV에서 방송을 모두 하노이의 말을 기준으로 방송을 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 특유의 서울 지향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모든 것을 서울로 집중시키는 몰개성적인 특성은 언어의 문제에서도 그대로 반영이 됩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조금 다릅니다. 하노이를 벗어나도 하노이 말을 배우면 모두가 알아 듣는다고 하네요. 하지만, 다른 지역 말을 하노이 사람들은 잘 못 알아 듣는다고 하네요. 그러니, 언어의 이상한 간격이 생겨버렸네요. 그래서 타 지역 사람(우리는 지방이라는 말로 통일해 버리죠)들은 하노이 사람이 이상하다고 합니다. 왜 우리는 하노이 말을 이해하고 있는데, 하노이 사람은 왜 우리 지역 말을 이해하지 못할까 하고요.
베트남어는 크게 하노이 중심의 북부 방언, 중부 방언, 호치민 중심의 남부 방언 그리고 소수민족의 개별적 언어로 구성이 될 겁니다. (저는 베트남어도 관심이 있지만, 실제로는 소수민족의 언어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매개언어로서 베트남어가 필요한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하노이 중심의 북부어를 배우고, 방송은 하노이 말로 방송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 지역 생활에서는 자기 지역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그 어떤 괴리감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듯 합니다. 지금이야 이동이 많다 보니 그 지역 언어간의 차이가 많이 줄었겠지만, 이동을 시작할 무렵에는 혼란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거주하고 있는 친구 집의 아버지는 하노이 출신으로 호치민에서 거주를 하고 계십니다. 집에서 가족들도 북부어를 사용하고요. 1976년도에 호치민에 처음 왔을 때 말을 해도 못 알아 듣고, 상대가 말을 해도 본인이 이해를 못하니 많이 힘들었다고 하시는 군요. 물론 지금이야 편하게 사시지만 말입니다.
TV에 나오는 한 미국인은 언어의 천재인 듯 한데요, 각 지역별 단어를 잘 알고 있어서 베트남 사람도 많이 놀란다고 하네요. 베트남 사람도 이 미국인을 굉장히 재미있게 본다고 합니다. 우리가 TV에서 로버트 할리씨가 “한 뚝배기 하실레예?” 하는 광고를 보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군요. 이 미국인을 굉장히 재미있고, 신기하게 본다는 것은 자기들도 별 관심 없이 지내던 그 지방 말을 유창하게 하니 부럽다는 것도 그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과연 표준어라는 것이 꼭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언어에서도 경제성이 논리가 꼭 필요한 요소라면 표준어라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기준이 될 겁니다. 하지만, 언어의 풍요로움은 표준어 규정으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또 다른 언어의 긍정적 의미의 사치가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내 지역 사람을 만나서 표준어로 대화를 한다면 뭔가 정감이 없는 대화가 된다는 느낌은 사실 지방사람들은 누구나가 느끼는 감정일 것 입니다. 반대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어릴 때 쓰던 말 그대로 대화를 하면 더 반가운 것은 당연한 느낌일 것입니다. 물론 욕도 조금 섞어서 말이죠. 예전에 알던 서울 분인데, “가시나”라는 말을 욕으로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업무상 울산에서 지내는 동안 거리에서 사람들이 “가시나”라는 말을 너무 자주 사용해서 처음에는 울산 사람이 다 깡패로 보였다고 하더군요. 물론 지금은 아니고, 한 번씩 농담으로 “이 가시나, 저 가시나”하고 억양을 흉내내면서 장난도 치십니다.
과연 언어가 표준화가 꼭 필요한 그런 경제성의 산물로 전락해야 하는지 저는 굉장히 의문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언어가 가장 경제적인 언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편이라서요. 나의 반가움과 고마움 섭섭함 또는 미안함 등의 감정을 꼭 표준어로 표현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요즘 한국은 서울 표준말도 모자라서 영어 표준어로 가고 있다는 느낌까지 든다면 제가 너무 심하게 보는 것 일까요? 미취학 아동까지 영어를 배우고 있고, 영어를 배운다고 어린 나이에 해외에 나가는 현 시대를 보면 뭔가 사람들이 잘 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여기 베트남에서도 영어바람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외국인을 상대하지 않으면서 영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리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외국인에게는 자기의 영어의 유창함을 자랑하지만, 베트남인 사이에서는 절대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공부할 때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사용합니다. 만약 베트남 사람에게 자기가 잘 하는 외국어를 유창하게 먼저 말 한다면, 베트남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친구들에게서 따돌림을 받는다고 합니다. 영어에 미쳐 있어도 자기가 베트남 사람임을 잊지 않는 이들의 행동이 사실은 더 부럽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국제결혼을 한 지인이 있는데, 베트남어를 잘 합니다. 와이프가 한 번씩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한테 베트남어로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고 합니다. 1~2시간 쉴 새 없이 이야기 하고 나면 얼굴에 뭔가 만족스런 느낌의 표정이 생긴다고 하네요. 이 형수는 남부지방 사람입니다.
표준어이던 영어이던 그것은 수단이지 하나의 지향점이 아닐 것 입니다. 모든 지구인들이 영어로 통일이 되어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는 그 날이 올지라도 저는 제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한국어 그 중에서도 경상도 말을 사용할 때 더 제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 경상도에서 그 문화를 배우고 체득해 버린 경상도 보리문디니까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