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에서 장기체류를 하다보니(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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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에서 장기체류를 하다보니(13)

조선소캬캬 2 3428

오늘은 베트남에서 생계형 범죄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날치기나 좀도둑에 대한 그들의 사고방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와 생각하는 방식이 좀 틀린 것 같습니다. 과연 이 나라에서는 처음부터 날치기와 좀도둑이 많았을 까요? 저의 생각과 베트남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1960년에 들어서 베트남전(여기 베트남에서는 미국전쟁입니다만)이 전면전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사실 베트남(남부 베트남이 더 정확함)이 우리나라 보다 경제적으로 더 부유했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거의 100년에 가까운 전쟁(프랑스 전쟁까지 해서)으로 전 국토가 당연히 황폐해 졌습니다. 전쟁이 일반적으로 가져오는 가장 큰 폐해는 살아 남기 위한 잘못된 행동을 허용하게 만든다는 점일 겁니다. 단적으로 매춘에 대한 규제가 철저한 이슬람 사화에서 여자가 살기 위해 몸은 판다는 것은 즉각 죽여도 되는 큰 사회 범죄이죠.(물론 남성이 여성의 몸을 사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한 면이 있지만 ㅠㅠ)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후, 수많은 여성들이 이란 쪽으로 이동을 해서 매춘을 했다고 합니다. 그 보수적인 사회에서 눈을 감아 버린다는 신문기사는 전쟁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생계형 범죄, 즉 날치기나 좀 도둑도 그 숫자가 늘어나게 되죠. 극단의 상황은 사소한 질서 위반 행위를 규제는 하지만, 같이 살기 위한 방법으로 허용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 베트남에서의 현재의 생계형 범죄는 어떤 상황으로 지금까지도 우리보다 관대한 입장을 보이는 것일까요? 우리도 가끔 얼마나 먹고 살기가 힘들었으면 저런 짓까지 할까하고 동정의 감정표현을 하는 것을 보면 그다지 특수한 사고방식은 아니고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베트남 역사에서 프랑스의 식민지 시절 이전의 생활은 별반 우리와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도둑에 대한 불쾌감이나, 사회 윤리나 질서를 위반한 경우 집단적인 사적인 징벌도 가능했다고 하니, 이들의 범죄에 대한 한 단면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하노이나 중부지방에서는 도둑이나 마약 중독자의 절도의 경우는 마을 사람들이 때려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날치기를 관대하게 보는 것은 일반적인 시각이 아닌 개별적이고 특수한 시각일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호치민에서는 이렇게 자주 날치기가 발생할까? 저는 이에 대한 해답이 잘 없었고,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주로 학교에서)에게 자주 물어봤는데, 그 중 가장 흥미로운 답변을 하나 듣고서 여기에 소개를 합니다.

 

프랑스와 미국의 전쟁 중에 베트남 군대는 별다른 무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사실 식민정부가 현지인에게 무기를 지급할 리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베트남 인들은 프랑스나 미국의 무기 창고에서 무기를 조금씩 표가 나지 않게 이를 빼 나와서 전쟁을 계속 했다고 하네요. 남 베트남의 군대가 미국이 제공한 무기를 빼돌려 북 베트남 군대에 판 이야기는 누구나가 알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조금씩 훔쳐서 제대로 된 무장을 하고서 전쟁을 수행하는 와중에 그런 행위가 근 1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고 여겨집니다. 이런 장기간의 전쟁과 무기를 빼돌려서라도 전쟁을 하면서 독립을 꿈꿨던 사람들의 행동에 별다른 죄책감이 없었다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게 예측이 되기는 합니다. (우리 나라도 민주화라는 8~90년대의 과정에서 정치범의 전과를 다는 것은 그다지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는 전과였던 시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전과를 가졌던 속칭 운동권의 활동가들은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으니까요.) 이런 생각이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는 설명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들어본 대화 중에 가장 흥미로운 답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학생의 대답은 재미있는 이야기도 한가지 더 이야기를 했는데, 베트남에서는 책을 훔쳐가 피해를 본 학생은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사람이 책을 훔쳐가서 열심히 공부를 한다면,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예전에는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이야기 있었습니다. (물론 요즘은 워낙 세태가 각박해져서 이런 말을 하지도 않지만 말입니다.) 훔치는 것에 대한 긍정적 이해해주기 라고 해야 할 까요?

 

우리는 이제 절도는 큰 범죄가 되어서, 사회적 쟝발장이 계속해서 배출(?)되고 있습니다. 물론 더 많은 소비를 위해서 비사회적 절도도 많지만 말입니다. 베트남의 날치기나 생계형 범죄가 옳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100%사라질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사회가 점점 더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줄어들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강대국(?)들이 안정이 되길 원할지 그것은 모릅니다만, 상황이 조성이 된다면 결과는 나올 겁니다.

 

사실 이건 개별 학생 한 명의 생각을 정답으로 몰고 가는 일반화의 오류로 절대 읽지 말아 주시길 부탁합니다. 그냥 제일 흥미로웠던 답변 중의 하나를 글로 옮긴 것 일 뿐입니다.

 

괜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제가 어릴 때 어른들이 자주 사용했던 단어가 생각나서 마지막으로 적고서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동냥하는 사람, 즉 거지에 대한 매몰찬 감정과 연민의 감정이 있는 특이한 나라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면서 올바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옆에서 몰래 귀동냥을 해서라도 공부해야 한다.” “귀동냥은 배운다는 과정으로 생각해 동냥이 아닌 그냥 지적 욕구의 해결책으로 당당히 인정을 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져야 할 그 생계형 범죄처럼 말입니다.

2 Comments
제로섬 2013.12.29 17:29  
60 년대 청룡 소대장으로 파월했던 나로서는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8-90 년대 얘기에서 진정성을 느낍니다.
 옛날 기억 때문에 호치민 하노이 여러번 가봤고 2007 년 교직 퇴직 후에는  우리 청룡이 근무했던 다낭 호이안(쾅남성 유쑤우엔군  짜큐 마을)  1년에 한번 꼴로 갑니다.
 아직도 안껌 쯔아? 쯔아  로이  바우니우 뜨어이?
,띠엔? 등등..  몽안찐짬싸우머이찐(69년도에 갔었다고) 어쩌구 한마디씩 합니다.
호치민 가면 한번 쯤 뵜으면 합니다.  감사 합니다.
조선소캬캬 2013.12.29 21:38  
반갑습니다. 종종 파월 군인으로 여기서의 기억때문에 오시는 분들 뵙습니다. 어떤 향수인지 번민 이 있는지는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뭔가가 그 분들을 여기로 불러 들이는 모양이라는 생각정도로만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을때 TV에서 파월 군인들이 옛 전장터에서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뭔가 설명이 힘들지만, 짠한 아픈 마음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저야 전후 세대이니까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단지, 그 전사한 분들을 기억하는 그 노인분의 모습에서 사람의 모습은 저런 것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을 찬성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친구(보통 전우라고 하지요)를 챙기지 못한 죄책감을 느꼈다고 하면 제가 너무 과한 반응을 한 것 인지 모르겠네요. 소대장으로 파월 했다고 하셨서 그 때의 기억이 뭔가 제로섬 님을 여기로 불러 들이는지 궁금합니다. 연락이 되신다면 저도 한번 뵜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성격이라서, 사실 그런 경험을 하신 분들의 이야기는 억지에 가까운 이야기도 있지만, 삶의 극단에서 생존한 사람들의 사고 방식도 제가 정말 이해하고 싶은 삶의 한 극단이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제 글이 좀 농담투의 글이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엄청 극단적으로 진지해서 좀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오늘은 혹시나 제가 뭔가 실례될 말은 없었는지 모르겠네요. 실수가 크다면 고쳐주시고, 작다면 너그러이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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