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체류를 정리하면서(14) 텃밭 이야기
베트남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다양한 것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와는 너무나도 다른 행동을 보면서 당황하게 되고, 우리와 너무 비슷한 행동을 보면서 또 당황을 하게 됩니다. 다를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 너무나도 같은 행동으로 하는 것을 보면 참 세상은 별 반 차이가 없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 이길래 이렇게 글을 시작하는지 궁금하십니까? 오늘의 이야기는 텃밭을 주제로 할까 합니다.
베트남에서는 야채가 참 저렴합니다. 그래서 외국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베트남 사람들은 야채는 저렴해서 많이 먹겠구나 생각을 했고, 실제로 식당에서 보면 야채는 참 푸짐하게 준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텃밭을 만들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오늘의 주제로 선정을 했습니다.
제가 12군으로 옮긴지도 벌써 6개월이 되어 갑니다. 그전에는 고법이라는 군에서 지냈습니다. 빈 공터라고는 한 곳도 없고, 오직 아스팔트와 시멘트 건물만이 있던 곳이죠. 아침이면 골목에 아침시장이 반짝하고 생겨서 사라지니, 모든 주부들이 아침이면 시장을 보러 와서는 필요한 것들을 사고는 식사 준비를 하러 갔습니다. 저는 외국인이니까 순두부(5,000동)나 한 그릇 사먹고 사진이나 찍고서 구경을 했습니다. 제가 필요한 모든 식사 재료는 모두 친구 아내가 다 준비 해주니 제가 할 시장보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12군으로 이사를 오고는 집 옆에 작은 빈터(거의 집 하나를 지을 수 있는 정도)가 있더군요. 친구에게 물어보니 땅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국가 소유일 것이라고만 하더군요. 그래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습니다.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친구가 빈 터에 텃밭을 할 거라고 하더군요. 땅 주인이 나타나면 돌려주면 된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국가 소유라면 임대가 되기 전까지 사용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같이 텃밭을 만들기로 하고 삽을 들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모래를 한 차 사가지고 오더군요. 텃밭에 웬 모래??? 베트남에서는 텃밭을 할 때는 모래를 깐다고 하더군요. 그 모래 밑에는 각종 나뭇가지나 나무 조각들을 깔아 놓고서 일종의 물이 빠지는 공간을 만들고요. 그 나무나 가지 위에 모래를 계속 골고루 뿌려서 밭의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긴 길이를 따라서 물이 빠질 배수로 같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그 수로로 물들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밭의 형태를 만드는 일은 남자들이 합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나무를 박고서 그 나무 사이를 철사를 이용해서 그물망 같은 것을 만들어 둡니다. 여기까지가 남자가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베트남에서는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이 구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지역이 그런지 아니면 제 친구처럼 북부만 그런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제가 사는 이 집은 남자와 여자의 일이 정확하게 구별이 됩니다. 여자는 아기 보고, 밥하고 빨래하고 등등 소위 우리가 말하는 집안 일을 아무리 힘들어도 여자가 다 합니다. 밖에서 식사 해결하는 베트남의 습관이 부러웠을 여자 분들은 여기서 아마도 강한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죠. ^^;;;)))
이제는 친구의 어머니가 부탁해서 가져온 씨앗을 뿌리고 풀의 줄기들을 여러 마디로 끊어서 땅에 그냥 꽂아두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그 위에 수로에 고여 있던 물을 뿌리기 시작합니다. 아침부터 시작한 텃밭 만들기가 오후 4시쯤에 끝이 났습니다. 그럼 친구 와이프는 뭘 했냐구요? 애기 돌보고 점심과 저녁을 준비하면서 중간중간에 먹을 것을 준비 해서 주는 것을 했습니다. 어딜 가나 아기 보는 것이 제일 힘이 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밭을 만들고는 매일 한 번씩 수로에 고인 물을 한 번씩 뿌리기만 하는 시간이 한 달 정도 지나니 밭에서 여러 가지 야채가 커서는 밥상에 올라 오기 시작했습니다. 참 다양한 야채가 밥상에 아침 저녁으로 올라 옵니다. 그리고는 야채 삶은 물도 밥상에 올라옵니다. 야채 삶은 물에 짠이라는 베트남 레몬을 한 개나 반 개 정도 짜서는 넣고 국처럼 마십니다. 개인적으로 맛이 깔끔해서 좋았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또 씨를 친구 어머니가 뿌리는데, 아들인 내 친구는 2층에서 그냥 구경만을 합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어머니가 저렇게 일을 하시는데, 너는 왜 구경만 하냐고 말이죠. 이 친구 왈 “ 준비까지가 힘이 드니 남자가 하고, 그 이후로는 힘이 안 드는 것은 여자들이 알아서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물어봤습니다. “베트남은 야채가 싼데, 왜 텃밭을 만들어서 야채를 키우느냐?”고요. 친구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아무리 저렴해도 집에서 키워서 먹는 것 보다는 싸지 않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집에서 키우는 야채에는 화학 물질(?)이 없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화학 물질??? 예, 바로 농약을 말합니다. 베트남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지금 농사를 짓는 곳에서 농약을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가끔 신문에 기사로 나올 정도이지만, 베트남에서도 농약을 과다 사용하는 문제로 인해서 농산물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라오스나 캄보디아를 여행할 때 들었던 이야기가 사실인가 봅니다. 가난해서 농약을 살 돈이 없어서 농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농산물은 안전하다고 하던 말 말입니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도 말하기로 그냥 먹는 야채는 베트남산 보다는 캄보디아나 라오스가 더 좋다고 합니다. 물론 중국산은 그다지 인정해 주지 않고요. ^^;; (((중국산 죽순은 하얀 색인데, 베트남산 죽순은 약간 노랑 색을 띕니다. 그리고 중국산 당근은 위에 줄기가 없는데, 베트남산 당근은 줄기가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구별을 해서 시장에서 팔고 있습니다.)))
요즘 일을 하다가 가끔 2층 베란다에 담배를 피우러 나가면 어머니는 오직 물만을 뿌립니다. 그리고 다른 농약을 준다거나 비료를 뿌리거나 하는 행동은 일체 없습니다. 그래서 식탁에 올라온 야채를 보면 벌레 먹은 자국들이 엄청 많습니다. 제가 야채를 좋아한다고 끼니 마다 챙겨서 삶아 주시니 저야 참 즐겁게 먹습니다. 물론 한번씩 저도 물을 뿌리러 갈 때가 있습니다. 물만 뿌려줘도 쑥쑥 잘 올라오니 재미가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간간히 비까지 내리니 물을 뿌릴 이유도 점점 없어져 갑니다. 아마도 올 건기가 다시 시작 되기 전까지는 그냥 씨나 뿌리고 줄기나 끊어서 땅에 꽂아두면 비는 자동으로 뿌려지니 정말 편한 텃밭인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유기 농산물이라는 이름으로 비싸게 비용을 지불하고 사서 먹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진짜 유기 농산물은 다른 사람이 키울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기 가족이 먹는다는 것을 안다면 과연 경제성을 바탕으로 한 기업 경영식 농사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가 텃밭에서 열심히 농사를 위해서 물을 뿌리는 것을 볼 때 생각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직도 노인이 같이 살아가기에 불편한 존재 입니까? 당신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 그렇게도 경제성으로 활동을 하면서, 고집만 남았다고 불편하게 여기는 바로 저 노인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손녀를 재우기 위해서 한 번씩 베트남 전통 노래를 부를 때는 제 느낌으로는 자장가처럼 들리지 않고, 신세 한탄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북부 사투리는 완전히 못 알아 들으니 그 내용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정말 서글프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번씩 고향생각으로 울기도 하십니다. 자식을 위해서 고향을 떠나 대도시 호치민에서 대화 상대도 없이 잘 버텨주시는 부모가 있다는 것은 제 친구에게는 참 다행스러운 일일 겁니다.
하필 오늘이 어버이 날이네요. 많이 늦었지만, 여행정보 수집보다는 부모님에게 전화 한번 해 보시죠. 저는 아침에 했습니다. ^^V 그것도 국제 전화로요. 텃밭을 보면서 별 생각을 다해봤던 조선소 캬캬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