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체류를 정리하면서(5) 몽고군과 고려 그리고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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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체류를 정리하면서(5) 몽고군과 고려 그리고 베트남

조선소캬캬 2 3518

베트남 역사와 한국역사가 과연 무슨 연관관계가 있을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베트남 전쟁(미국전쟁이죠. 베트남 사람들의 입장에서는요), 보트피플의 한국행, 베트남 마지막 왕이 조선으로 와서 한국으로 귀화(화산 이씨)해서 살았다는 이야기 정도, 이제는 서로간에 사돈의 나라가 되었다는 정도가 연관이 되는 내용인 듯 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가져온 새로 쓴 베트남 역사라는 책에 나오는 대목을 보던 중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내용이 있어서 한번 소개를 할까 합니다. 물론 기왕에 알고 계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냥 재미로 읽어 보시라고 그냥 정리 해봤습니다.

 

고려시대 몽고군의 고려침입으로 나라가 황폐화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문제는 몽고군이 일본을 정벌하려는 의도로 해서 정동행성(1차 일본정벌 이후가 정확합니다.)이라는 관청을 세우고 일본 정벌을 계획합니다. 이 때 일본은 금으로 집을 짓고 산다 등의 허무맹랑한 풍문이 돌기도 해서 몽고군의 관심을 끌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입니다. 실제로 일본으로 간 몽고군은 일본에서 말하는 가미가제와 풍토병 등 때문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1차는 경험부족, 2차는 풍토병과 태풍 그리고 3차는 준비 중에 원 세조(쿠빌라이)가 사망하면서 유야무야 되면서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은 끝이 납니다. 사실 이때 몽고군 장수들이 고려의 장수들의 의견을 받아 들였다면 아마도 몽고군은 일본까지도 정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역사에 만약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왜 몽고군은 일본 정벌을 중지 했을까요? 여기에 대한 해답이 베트남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쿠빌라이 사후에도 몽고군의 세계 정벌은 계속 되는데, 왜 일본은 제외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답 말입니다.

 

베트남에도 실제로 몽고군이 3차에 걸쳐서 침입을 하게 됩니다. 물론 중국 대륙의 통일을 완성한

이후입니다. 1차는 큰 숫자(대략 5만 정도라고 하는 군요.)가 아니라서 큰 문제가 없지만, 원나라

자존심이 상하여 2차에 50만 대군을 이끌고 재차 침입을 하게 됩니다. 물론 1차와 같은 전략에

속았고, 수군의 미숙한 운영으로 해서 군량미가 제때에 도달을 못하면서 1차와 같은 이유로 거의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하게 됩니다. 2차전을 패한 후 원나라 황제도 베트남으로 출격을 할 준비를

다시 하면서 1차와 2차의 패배에 대한 분석을 하고 3차전에 준비를 합니다. 가장 큰 이유가 수군

의 부족과 경험의 미천을 그 이유로 꼽고서는 원나라가 이용 가능한 수군을 모두 베트남 쪽으로

이동을 시킵니다. 그래서 고려에 있던 수군을 모두 베트남 전선으로 이동을 시킵니다. 이 때 고려

에 있던 수군도 모두 베트남 전선으로 이동을 시킨다고 하는군요. 이유는 해상전의 경험이 있는

수군이 필요했기 때문이겠지요. 이때 고려에 있는 몽고군 정예를 거의 모두 베트남 쪽으로 이동

을 시키게 됩니다. 물론 이 3차전에서도 몽고는 대패를 하게 됩니다. 이유는 자기들은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고 생각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지형지물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자신들의 계

획이 잘 짜여졌다고 판단을 하고서 다른 사람의 계획까지는 파악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됩

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쩐흥다오 장군이 그 이름을 날립니다. 물론 2차전에서도 이름을 날렸지만

말입니다. 굳이 비교를 한다면, 베트남의 이순신 장군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이순신 장군이

조선의 쩐흥다오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자주 보게 되는 박당이라는 이름도 여

기서 나오는 전쟁터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베트남 정벌에 실패한 몽고군은 베트남을 비켜서 가는 길을 택하면서 지금의 미얀마가 있는 바간으로 들어가는 길을 선택하고 바간 왕조는 몽고군에게 져서 역사에서 사라지는 왕국이 되었습니다. 베트남은 당시 최강 몽고군을 물리쳤다는 역사를 가지게 됩니다.

 

정말 억척에 가까운 연결로 두 나라간에 이런 역사적 연결도 가능하다는 억지 주장을 하게 되었네요. 실제로 한국의 활은 대부분이 동남아산 물소 뿔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물소 뿔이 아마도 안남(지금의 베트남)의 물소 뼈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직접적인 무역이 아니라도 간접적으로는 우리가 동남아 국가와 이렇게 연결이 되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나비효과이겠지만 말입니다. ^^;;

 

제가 왜 이렇게 베트남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를 연결 시켜 보려고 했을까요? 요즘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사업을 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한국에서 준비하고 계획을 철저히 세워서 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국에서 세운 한국적인 계획과 준비일 뿐입니다. 베트남의 상황과 문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막연할 뿐 구체적이지 못한 계획과 준비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유교적 문화와 전통이 있고, 부모님의 말을 잘 따른다 등의 문화가 과연 우리와 동일한 문화일까요? 예전의 미국의 사회학 교수가 한국의 사회를 연구하고서 감동을 했다고 하더군요. 한국은 동산을 넘어도 음식이 달라지고, 강을 건너면 풍습이 달라지고, 큰 산을 넘으면 말이 달라지니, 사회를 연구하기에 이보다 좋은 나라가 어디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베트남은 산과 강도 아니라 나라와 나라를 넘어서 와야 하는 아주 먼 곳입니다. 겉모습에 보여진 몇 가지를 보고서 우리와 유사하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와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 전 공항에 손님이 와서 마중을 가는 길에 베트남에서 사업을 정리하고 베트남을 떠나는 한 분과 공항으로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베트남에 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가시더군요. 자기의 실패를 모두 베트남 사람에게 떠 넘기는 푸념을 듣고 있는 저로서는 참 황당했습니다. 자기의 실수를 모두 베트남 사람들의 잘못으로 만드는 그 분의 말씀은 듣기가 거북했습니다. 적절한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처녀가 아이를 가져도 이유는 있다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처녀가 아이를 가지는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그것을 변명한다면 더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요?

 

제가 모든 사람의 말을 가급적 경청하는 편입니다. 제가 말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이 옳던 그러던 항상 듣고서 돌아와서 되씹는 편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우화인데, 이슬람 우화입니다. “살아서 좋은 일을 한가지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이 죽음에 임박해서 자식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어머니에게 효도를 하라고 말입니다.” 과연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서 거짓말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사람은 나쁘지만, 옳은 말이니 따라야 할까요?

 

오늘 억지 주장을 한 요지는

 

계획과 준비는 철저하게 세우는 것이 진실로 옳은 것 입니다. 하지만, 그 계획과 준비가 여기 이 땅에서 과연 생각대로 바로 적용이 될 것인가를 한번 더 판단할 기간이라는 고려사항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옛날 전쟁에서도 세작(스파이)을 보내서 적국의 상황을 염탐했었습니다. 바로 기간을 두고서 충분히 계획과 준비를 더 구체화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죠. 물론 베트남이 적국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계획과 준비를 꽃 피울 수 있는 구체화의 과정을 꼭 거치는 게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모든 것을 알아는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몽고군이 3번이나 실패한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2 Comments
로맨스파파 2014.04.05 23:16  
조선소캬캬님의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진지함이 있습니다.
글장이의 글처럼 화려함은 없지만 진솔한 사람냄새가 물씬한 그런 진정성말입니다.
잘읽었습니다. 다음글을 또 기대해봅니다.
조선소캬캬 2014.04.06 01:22  
감사 합니다. 기대해 봅니다. 부담감을 주시는 군요. ㅠㅠ

제가 다음편을 예고하려고 했는데, 당분간 일이 좀 있어서 며칠 친구를 도와 줘야 합니다. 그래서 며칠(3~4일 정도) 잠시 출장(?)을 갑니다. 출장에서 복귀를 하면 그 때 다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출장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씁니다. 역시 사람은 할 일이 있을때가 제일 좋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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