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사람보다 한국 사람이 쿨할까?
불멸의 사랑을 꿈꾸는가..
라오 여성의 결혼관
파티중에 여주인의 전남편이 찾아왔다
이 남편은 둘째 애의 아버지다.
서로 학펭깐(존중하는 사이, 친구간)이란다.
첫째 애는 이미 성인이다.
그 애의 아버지이고 첫남편은 지금 55세인데 7번째 아내인 19살 몽족 여자와 푸카오쿠와이에서 살고 있다.
집주인은 첫남편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어떤 사람은 라오 사람들이 최고의 결혼률은 물론 최고의 이혼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보기에도 심하게들 결혼하고
심하게들 이혼한다.
배가 다른 아이들이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씨다른 형제들이 자라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이혼이 한국처럼 감정 다 파괴하고
가재도구 다 부수고
가'족'간에 전쟁을 하고 헤어지지 않는다.
내가 볼 때 한국 사람들은 쿨하다고 주장은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현실이야 어쨌거나 한국 사람들은 불멸의 사랑을 믿거나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인도차이나 여자들은 한국 사람들 처럼 혼인의 공고성이나
불멸의 사랑을 애시당초 믿지 않는 것 같다.
전근대성이 강한 라오 여자들이 이 방면에서는 훨씬 현실적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씨다른 형제들이 사이좋게 사는 가정은
얼마나 되는 걸까?
내가 뭘 기대하는 건가...
한국은 계모에 대한 편견도 심하고,
콩쥐팥쥐라는 스토리에 깊이 빠져있는 사회인데....
아름다운 계모에 대한 스토리를 들어본 적이 드문 것 같다.
팥쥐 어머니를 만들어 내면서 살아가는 사회가 한국이다.
한국의 작가들은 스토리 구성하는 것이 스테레오 타입이다.
결손 가정에 대한 스토리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 속에서
소설도 드라마도 다큐멘터리도 출발하는 경향이 있었고..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부재가 나쁜 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없었거나 잃었던 아들들이 위대한 역사를 만든 것을 나는 수없이 기억할 수 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알렉산더의 전기도 그랬다.
아버지가 일을 많이 하자 알렉산더가 자기 일이 줄어든다고 말하는 것을 기억한다.
태무진도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지만 징기스칸이 되지 않았는가?
니가 뭐가 쿨해!
니 머리 속에 든 스토리 구조가 후졌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