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04/20 루앙프라방 에서 방비엔으로
06시 30분 첫 차를 타기 위해서 04시 반에 일어났다.
아침은 선식으로 때우고 05시 30분에 집 앞 주차장으로 가 보니 비엔티안행 버스는 이미 만원이었다.
그리고 통로에 까지 보조의자를 놓아서 비집고 들어 갈 여지가 없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06시 30분 출발 버스가 05시 50분이 되니까 출발해 버린다.
이곳에서는 출발 시간이 따로 없다. 사람이 차면 떠난다.
그래서 대충 그 시간이면 출발하는 것이려니 생각해야지, 꼭 그 시간이다라는 개념이 없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다음 차로 가기로 하고 기다렸다.
배차 시간표를 보니 07시 30분 출발이다.
06시가 좀 넘으니 버스가 왔다.
현지인들이 서로 먼저 타려고 질서를 지키지 않았다.
차례를 기다리며 체면을 지키던 나도 짐은 딸아이에게 맡겨두고 그 사이를 비집고 기를 쓰고 몸부터 밀어 넣어 근근히 탔다.
다행히도 입구 쪽 두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다.
07시 30분 버스도 주말이라서 그런지 금새 만원이 되었다.
그리고 앞차와 마찬가지로 보조의자 12개를 통로에 놓아 사람을 빼곡히앉혔다.
아마도 65명은 족하게 탄 것 같다
06시 50분이 되자, 07시 30분 출발 버스가 첫 차 처럼 또 출발해 버린다
버스 지붕 위에 실은 짐이 1톤 트럭 1대 분은 족 할것 같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이 고물 버스가 우리나라 70년대에 진해시에서 쓰던 시내 버스였다는 사실이다.
우연히 차 안을 둘러 보니 "진해시 일류시민 카렌다"가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바로 내가 70년도 초반까지 진해시에 근무했을 당시의 시정이 담긴 색바랜 캘린더였다. 잠시였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오후 2시 반 경에 방비엔에 도착하여 도쿤 1, G.H에 여장을 풀었다.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엔 까지의 산길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 짐도 풀기 전에 한숨자기로 했다.
저녁에 이 메일 확인 차 딸 아이와 이교장님은 나가시고, 나는 여독이 풀리지 않아 그대로 뻗었다.
방비엔은 다시 찾아 와 봐도 아름답고 포근 한 곳이다.
여행자가 지친 몸을 쉬어 가기에 편한 곳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인심이 후한 곳이다. 그래서 나는 고향 집에 돌아 온 기분처럼 편안함을 느낀다.
아침은 선식으로 때우고 05시 30분에 집 앞 주차장으로 가 보니 비엔티안행 버스는 이미 만원이었다.
그리고 통로에 까지 보조의자를 놓아서 비집고 들어 갈 여지가 없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06시 30분 출발 버스가 05시 50분이 되니까 출발해 버린다.
이곳에서는 출발 시간이 따로 없다. 사람이 차면 떠난다.
그래서 대충 그 시간이면 출발하는 것이려니 생각해야지, 꼭 그 시간이다라는 개념이 없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다음 차로 가기로 하고 기다렸다.
배차 시간표를 보니 07시 30분 출발이다.
06시가 좀 넘으니 버스가 왔다.
현지인들이 서로 먼저 타려고 질서를 지키지 않았다.
차례를 기다리며 체면을 지키던 나도 짐은 딸아이에게 맡겨두고 그 사이를 비집고 기를 쓰고 몸부터 밀어 넣어 근근히 탔다.
다행히도 입구 쪽 두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다.
07시 30분 버스도 주말이라서 그런지 금새 만원이 되었다.
그리고 앞차와 마찬가지로 보조의자 12개를 통로에 놓아 사람을 빼곡히앉혔다.
아마도 65명은 족하게 탄 것 같다
06시 50분이 되자, 07시 30분 출발 버스가 첫 차 처럼 또 출발해 버린다
버스 지붕 위에 실은 짐이 1톤 트럭 1대 분은 족 할것 같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이 고물 버스가 우리나라 70년대에 진해시에서 쓰던 시내 버스였다는 사실이다.
우연히 차 안을 둘러 보니 "진해시 일류시민 카렌다"가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바로 내가 70년도 초반까지 진해시에 근무했을 당시의 시정이 담긴 색바랜 캘린더였다. 잠시였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오후 2시 반 경에 방비엔에 도착하여 도쿤 1, G.H에 여장을 풀었다.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엔 까지의 산길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 짐도 풀기 전에 한숨자기로 했다.
저녁에 이 메일 확인 차 딸 아이와 이교장님은 나가시고, 나는 여독이 풀리지 않아 그대로 뻗었다.
방비엔은 다시 찾아 와 봐도 아름답고 포근 한 곳이다.
여행자가 지친 몸을 쉬어 가기에 편한 곳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인심이 후한 곳이다. 그래서 나는 고향 집에 돌아 온 기분처럼 편안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