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소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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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모

오이소박이

유토피아. 7 1449

참 이상한 일이다.


작년 6개월 동안 내가 태국에 나가 있는 동안, 생과부로 농사를 짓는다, 보험 설계사로 돈 벌이를 한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다가 관절에 무리가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서 수술을 하고, 물리치료에, 좋다는 침에 한약에, 한 술 더 떠 협심증 수술까지….


하여튼 좌충우돌 안 아픈데 없는 아내다.


이런 아내가 1년을 너끈히 살아온 힘이 어디에 있을까.


있긴 있다.


작년 8월인가, 태국에서 귀국해 아내와 선배 한 분을 모시고 그 흔한 돼지 갈비를 구워 먹으면서 태국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얘기가 나왔다.



태국에서 마지막 저녁을 평양관에서 먹었다.


평양관은 메인 메뉴가 냉면이지만 김치가 끝내준다.


포기김치를 통째, 세로로 좍 갈라 하얀 접시에 내어 놓으면, 싱싱한 흰 배추의 속살과 무 상채, 붉은 김치 국물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밥상은 장관이다.


더구나 뜨거운 열사의 나라에서 한 겨울에 먹는 속 배기 김치라니.


언제나 평양냉면 보다 이 김치에 미치는 거다.


아들과 냉면 한 그릇, 김치 한 포기, 뚝딱 먹어 치우고, 남아 있는 오이소박이를 먹는다.


그런데 아니올시다.


오이를 썰어 놓은 폼도 내용물을 접어 넣은 폼도 조선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태국제도 아니다.


성의가 없는 거다.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오이소박이 흉내를 낸 꼴이다.


“야. 이 오이소박이는 너의 엄마 솜씨만 못한데.”


아들에게 한 마디 하니, 아들.


“세상 천지에 엄마가 만든 거 보다 맛있는 음식 보셨어요.”


아내 음식 솜씨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그렇게 까지….



이 얘길 아내 듣기 좋으라고 한 것도 아니고 선배 앞에 아내 자랑하자는 뜻도 아닌데 이 얘기가 갑자기 거기서 왜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선배가 듣고 아내에게 “아들 칭찬을 들으시니 얼마나 좋으세요.” 하니, “에이 내 음식에 익숙해서 그렇겠죠.”


그런데 그게 아니다.


다음 날부터 찌들어가던 얼굴색이 피어나는 거다.


관절로 끌려 다니는 걸음걸이일망정 지난날들보다 훨씬 기운차 보이는 거다.


히야 그놈의 칭찬이 뭔지.


야! 아들, 너의 엄마 앞으로 1년은 뭘로 살지.

7 Comments
narak 2008.04.18 01:1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을 보면서 유토피아님을 옆에서 뵙는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유토피아. 2008.04.18 04:28  
  과연 나락님이십니다. 제일 먼저 댓글 달아 주시니.
오랫만입니다. 굳세게 악수...
Hoi 2008.04.18 12:52  
  오이 소박이가 먹고 싶네용 ㅎㅎ
홍익여행사 2008.04.18 21:09  
  저도 오이 소박이가 먹고 싶어 지네요.ㅎㅎㅎ
유토피아. 2008.04.20 13:42  
  이거 미치겠네. 오이 소박이를 만들어 가지고 갈 수도 없고. 호이님, 홍익여행사님 안녕!^^
흰곰 2008.04.21 01:26  
  유토피아님의 글 참 좋아요...웅...나도 갑자기 오이소박이가...ㅋ
유토피아. 2008.04.22 07:09  
  반갑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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