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스페셜 19번째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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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스페셜 19번째 쿠데타

석양 0 729
19번째 쿠데타

- 방송 : 2006년 10월 22일 (일) 밤 8시 KBS 1TV
- 연출 : 강희중, 황대준 PD


태국은 왜 19번째 쿠데타를 맞았는가?

태국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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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의도

지난 9월 19일, 태국에서 19번째 쿠데타가 발발했다.
1992년 민주화 항쟁 이후 ‘정치 불개입’을 원칙으로 삼았던 군부는 15년 만에
다시 태국정치의 핵으로 떠올랐다. 탁신 총리의 부패로 국론이 분열될 위기였지만,
무력으로 정권을 탈환한 군부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러나 태국의 국왕은 하루 만에 쿠데타를 승인했다.
태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군부와 절대 권력의 소유자인 왕이 관여하는
이른바
태국식 민주주의!
태국 비상사태의 원인과 태국식 민주주의의 한계를 심층 취재했다.
태국에서 쿠데타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태국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 주요내용

1. 태국 국민들은 왜 쿠데타를 환영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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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국민들은 왕의 이름으로 부패한 탁신정권을 몰아낸 쿠데타에 대해 무척 환영하고
있다. 쿠데타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밖으로 나와 군인들에게 꽃과 음식을 나눠주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며 쿠데타를 반기는 모습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들과 대학생들의 집회와 시위도 이어졌다. 그들도 부패한 탁신정권이 물러나게
된 점에 대해서는 역시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군부가 강제적으로 정권을 쟁탈한 점에는
심한 반발감을 보였다. 92년 민주화항쟁 이후 민주주의로 자리 잡아 가던 태국은
왜 또 다시 쿠데타를 반복 할 수밖에 없었나?

2. 실패한 CEO 총리, 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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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국가고, 국가는 회사다. 국가와 회사의 경영방식은 다르지 않다"
-
태국 前탁신총리

태국 최대의 부호이자, CEO출신인 탁신은 집권 후에도 기업식 경영 마인드로
국가를 ‘
경영’했다. 97년 IMF의 위기를 겪게 된 태국은 2001년 탁신 집권 후 매년 6% 이상
경제성장을 일궈냈고, 2003년에는 IMF 관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탁신의 성장위주 정책의 수혜는 고스란히 그의 가족과 측근들에게 돌아갔다.
탁신은 집권 직후부터 부패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쿠데타 역시 지난 1월 탁신의
가족이 소유한 ‘친코퍼레이션’의 주식을 매각하면서 19억 달러의 수익을 챙겼음에도,
단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아 발발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탁신에 대한 지지와 반대의견은 분분하다. 그는 분명 태국의 성장을
일궈낸 지도자이다. 하지만 안정과 질서를 강조하며 반대파 의견은 철저한 외면과
탄합으로 일관해왔다. ‘마약과의 전쟁’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남부 무슬림 지역에 수많은 폭동을 일으켜온 개발독재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3. 왕의 두 얼굴, 부처와 카리스마

“왕은 조언을 하기 전에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왜냐하면 국민들의 불만을 진심으로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
출라롱콘대학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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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국왕은 일 년에 200일 이상 산간 오지를 다니며 가장 가난한 국민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과 고충을 듣고, 국민들이 자립해서 살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개발해왔다. 올해로 즉위 60년을 맞이한 국왕의 이런 한결같은 모습은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이 같은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이 바로 국왕의 절대적 카리스마의 원천이
되었다. 국왕은 73년과 92년도의 군사정권을 국왕의 명령으로 민선정권으로 이양시켰다.
뿐만 아니라, 지난 4월 총선에서 이긴 탁신은 왕과의 대면 직후 이틀 후 총리직
포기선언을 했고, 19일 발발한 쿠데타 역시 국왕이 하루 만에 승인했다.
이처럼 태국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국왕이 있었다.
태국에서 국왕은 국민의 수호자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국왕의 정치개입은 태국의
민주주의를 나약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국왕의 관여가 태국의 정치가 자립해 나가는데
제도적인 걸림돌이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4. 태국 민주주의, 시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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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쿠데타가 지난 18번의 쿠데타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군부가 아니라, 재벌의
절대 권력에 대한 반발이었다는 점이다. 92년 민주화항쟁 이후 태국에서 군의 영향력은
다소 약해졌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민선정권으로 운영되는 동안에도 왕과 군부는 늘
태국 정치세력의 중심에 있었다. 이번 쿠데타는 군부와 왕, 재벌총리 삼각구도에서
일어난 정쟁이었다.
탁신정부를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단 하루 만에 쿠데타를 승인한 국왕! 그리고 부패한 재벌총리!
그러나 그들의 충돌사이에 태국시민의 자리는 없었다. 시민의 정치참여가 없는 한
민주주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태국에서 20번째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태국
시민들은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군부의 방관자가 아닌,
왕의 신민(臣民)이 아닌
주체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시민으로 태어나야 할 것이다.


VOD 로 방송을 보게 되었네요!
19번째 쿠데타 관련한 이야기들이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초점은 탁신/국왕/국민들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태국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 에 물음을 던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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