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코타이 여행기 3
이 위용 앞에 태국을 후진국이라 우길 수 있는 용기 있는 자 나와 봐.
위의 탑들 중에 하나 하부가 열려 있어 들어가 무턱 대고 찍은 사진이다. 예상 외로 깨끗하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부처님이 봉안 되어 있던가, 이렇게 텅 비어 있던가, 둘 중 하나다. 우리나라 같으면 다라니경이라던가 경전 한 필, 그리고 어느 고상한 스님의 사리 몇과 쯤을 보물인양 봉안했을 텐데. 모르지 내가 모르는 어떤 다른 것이 있었는지도.
모든 탑과 부처님들을 에워싼 장방형의 가람 배치는 어김없이 벽돌 성벽을 둘렀다. 그리고 그 밖에 일목 정연한 호수가 굴러 싸고.
조선 리아카 비슷한 거 앞에 앉은 게 나고 그 뒤 리어카 밀고 있는 포즈를 잡은 게 태국인 가이드이며 툭툭이 주인이시다. 연세 70, 나 62, 한 쌍 늙은이가 죽이 맞아 새벽 5시부터 10시까지 신나게 돌아 다녔다.
돌아친 툭툭이 값은 450밧이다. 더 줄려다 너무 고마워하는 통에 내가 너무 많이 준 것 같은 생각이 불현듯 들어 얼른 접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태국인들은 영어로, 나는 죽어라 태국어로 쏼라 거리는 통에 누가 보아도 가관이다.
일본어를 배우고 태국어를 배우는 어느 부인의 말로는 일본어 교과서에 그런 말이 있다고 한다. “제발 일본 말로 해 주세요.” 시원찮은 영어 실력을 발휘할 양으로 외국인을 만나면 기를 쓰고 영어를 구사하려 애쓴다고 한다. 그 외국인은 다름 아닌 일본어를 배워 일본어를 구사하고 싶어 죽을 지경인데.
내가 그 꼴이다. 태국어를 3개월 배워 써 먹고 싶어 안달인데, 만나는 태국인 마다 유창한 영어를 과시하니 죽을 맛이다. 하다못해 10살 안팎의 어린 애 까지. “야! 너 어느 학교 다녀”하니 “인터네셔널 스쿨” 이런 엠비. 말을 닫았다.
수코타이를 여기서 끝내면 안 된다. 또 다른 수코타이가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다. 툭툭이 할아범보고 가자니 1,500밧을 주어도 못 간다고 앙살이다. 버스로 가란다.
그런데 버스가 가관이다. 버스 차장이 저 앞에 보이는 안경 쓴 할머닌데. 40대는 넘고 50대쯤은 될까. 그런데 더욱 가관인 건 다음 사진이다. 개문 발차. 선풍기를 돌리다기도 출발하고 나서 문 활짝 열어젖히고 선풍기는 어느 틈에 끄고 먼지 풀풀 날리는 바람 쏘이며 달린다. 달린다. 열린 문 바로 뒤에 할머니 겁도 없다. 태연자약.
또 다른 수코타이의 ‘히스토리칼 파크’ 첫 번째 절이다. 왓 마하탓 찰리엥.
가장 웅장하고 유물의 흔적이 뚜렷한 곳이다.
기둥으로 대변하는 웅장한 전당, 그리고 크신 부처님, 그 뒤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옥수수 모양의 탑 수코타이 최고의 압권이다.
‘왓 마하탓 찰리엥’에 들어가는 북쪽 문이다. 이 다리 밑은 꽤 깊다 어마어마 하다. 븕은 흙탕물이 넘실거리며 흐른다. 겁도 없이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100밧) 여길 건너려는데 겁나 안 되겠다 싶어 엔진마저 끄고 질질 끌고 건넜다. 남들은 여자들도 겁도 없이 잘도 타고 다니건만 난 여기서 완전히 쪽 팔렸다.
그래도 30여년 만에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보니 100밧이 비싼 게 아니라 타고 싶어 좀이 쑤셔 죽겠는 거다. 30여년 만에 이국땅에서 오토바이를 달린다. 꽤 넓은 지역을 바람 가르며 달린다. 이곳은 천연의 요새다. 애써 비유하자면 우리나라 안동 하회마을 같은 곳이랄까. 그 보다 더 깊은 욘강이 흐르고 그 안에 성벽을 쌓아 도시를 건설했다. 도시는 불교 천국이다. 과거는 사라졌고 헐려지는 성벽과 불상과 불탑, 그리고 사람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학이 떼를 지어 군무를 춤춘다. 거대한 목장이 있고, 아름다운 잔디밭이 끝 간 데를 모르는 곳. 관광객마저 찾지 못하는 곳이다.
애들이야 역사가 무언지 알 필요도 없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도 필요치 않다.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그지 못하리”란 늙은 철학자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다. 그냥 재미있으면 된다. 여자 남자면 더욱 좋다. 그렇지 않은가.
후기 : 나 이거 올리느라고 직사하게 고생한 겁니다. 그건 알아 줘야 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