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延長
StartFragment
태국에서 넉 달 만에 다시 돌아 왔습니다.
넉 달 만에 내 나라 내 마을 거리를 걷습니다.
도로나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가로수이나 석양으로 새빨개지는 서쪽 하늘이나 이미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개천이나 겨우 넉 달 사이에 달라진 게 있다면 얼마나 달라졌겠습니까.
그런데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도로를 가로질러 동창생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반가워 악수를 청하려니 동창생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것입니다.
늙어서 그렇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 틈에 허리며 다리며 팔이며 모두 아버지의 그것들로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 때, 놀라서 그랬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백색 스크린 속 그림자로 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세상 풍경이 환해지고 거기 늙은 친구들의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 누이들이 서성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골목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길모퉁이에 주저앉아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것은 나도 어느 틈에 아버지가 되어 망연자실 거기 서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소설 한 토막 정도겠지 생각하며 집에 돌아와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아아, 나는 어느 틈에 나는 사라졌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근심스럽게 거울 속에서 나를 내다보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