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묵게 되다니 빠이 읍내의 탑?클래스 리조트 <더 쿼터>
근래 들어 빠이를 방문했던 시기를 생각해보니 늘 겨울 성수기였다.
사실 되짚어보자면 새벽에 하얀 콧김이 살짝 나오고 다리가 절로 오그라드는 빠이의 쌀쌀맞은 겨울시즌이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풀로 즐길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하등 신기할 자락이 그다지 없는데도, 어쩌다보니까 늘 기온이 낮아지는 성수기에 이 트랜디 한 산골 마을을 방문하곤 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충실하게 따르느라 훅~ 높아지는 타운의 숙소비와 그 시기에 태국 북부지방에서 일으키는 화전과 가뭄으로 인해 상당히 탁해지는 공기오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긴 늘 더운 기운 속에 허덕이는 동남아시아사람들에게는, 찬 공기를 가리느라 목도리 두르고 뽀대나게 장만한 두툼한 외투를 입어보는 이국적인 체험을 해 볼 수 있기에 이곳이 대단히 매력적인 관광지이긴 하다. 정성들여 가꾼 마을의 팬시한 풍경과 아기자기 예쁜 들판의 전경도 사실 볼거리인건 사실이기도 하고...
하여튼 건강상의 이유로 저번에 빠이를 떠나면서 다음번에는 꼭 우기 때 오자고 했던 바 이번에는 비 추적추적 내리는 우기시즌에 도착~ 그래서 성수기 때에는 감히 리스트에 넣지도 못했을 숙소인 이곳을 ‘비수기’라는 계절의 특성상 묵을 수 있었다.
9월 즈음 한인 여행사 가격으로 5만원에 못 미치는 숙소인데, 요즘에야 워낙 빠이에 리조트 사업이 활황인지라 더 쿼터는 예전에 비하면 야 대세에서 좀 비껴간 한물간 감이 없잖아 들지 몰라도, 이 숙소가 개장을 할 당시에는 빠이에서는 뭐랄까... 과장되게 말하자면 새 시대의 개막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_-;;
대형 고급 리조트가 빠이 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위치 해 있는 것과 달리 더 쿼터는 빠이병원을 지나쳐서 조금만 서쪽으로 더 걸어가면 나온다. 물론 사정없이 더운 한 낮이나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질 때 또는 음주 후 깜깜한 밤공기를 가르며 처벅처벅 걸어와야만 할 때는 그 거리감이 좀 멀게 느껴지긴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꽤 규모가 있는 예쁜 수영장이 리조트부지 안쪽에 자리 잡고 있고 아침식사가 마련되는 오픈에어 스타일의 식당도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으며, 잘 가꾸어진 열대 정원 컨셉의 초록빛 뜰 안에 2층짜리 빌라 형 목조건물이 삥 둘러쳐있는 구조이다. 대문 안으로 처음 들어섰을 때 눈 안에 들어오는 그림이 꽤 멋있다. 우기라서 그런가 푸르다 못해 형형스레 시퍼래 보이는 잔디와 검은 빛의 석조상과 건물 때문에 발리에 온 것 같은 느낌도 약간은 들 정도다.
체크인을 도와주는 리셉션의 직원들도 친절했고 식당의 직원들도 아침식사 마련해줄 때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꽤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좋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리 멀지않은 거리이긴 하지만 읍내까지 이곳 전용 뚝뚝이로 무료로 데려다주기도 하는데, 사실 우리는 그런 걸 요청하는 게 왠지 직원을 귀찮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걷기운동도 할 겸 한번도 이용해보지는 않았다.
방도 널찍하고 화장실의 수압도 좋고 물도 뜨끈뜨끈 한 것이 장점이 꽤 있는 숙소였다.
우리가 갔던 시기에는 이 숙소에 손님이 별로 없어서 야외의 수영장을 거의 혼자서 첨벙첨벙 즐길 수도 있는 수준이었는데 우기여서 그런지 정작 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 숙소가 처음 오픈 했을 때는 아직 빠이에 LCD TV 바람이 불기 전이라서 그런지, 숙소의 급에 비해 TV는 구형 브라운관형... 근데 브라운관이든 LCD이든 볼만한 채널 없는 건 매 한가지라서 그건 딱히 장점도 단점도 아니고, 여기까지 와서 말도 못 알아듣는 외국방송을 멍하니 보는 것도 적당치 않고, 혹여 KBS월드 같은 게 나오더라도 우리나라의 사건사고를 여기와서까지 보고 있는 게 좀 아이러니한 것 같기도 하고 해서 티비는 거의 장식용이 되어버리곤 한다. 여행자에게 중요한건 와이파이의 속도와 안정성인데. 무선 인터넷은 그럭저럭 웹서핑을 하기에는 적당한 편이라고 해야할까... 뭐 그랬다.
우리는 이곳에서 이틀을 머물렀는데 아침식사는 비수기시즌임을 감안해서 그날그날 유동적이었다. 첫날은 머무른 손님이 거의 없는 관계로다가 주문식 + 매우 간단한 구성의 뷔페식, 둘째날은 러시아인과 중국인 손님이 좀 들어온 관계로다가 간단한 구성의 뷔페식 이랬는데, 만족도는 주문식과 뷔페식이 섞인 손님 없던 첫날이 더 좋았다. 둘째날은 더운 요리가 몇 가지 더 추가 되긴했지만 전체적인 질로 보면 오히려 첫날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는데, 하긴 뭐 아침식사를 만찬으로 즐길 것도 아니고 어차피 탄수화물이랑 과일 좀 먹고 말거니까... 라고 스스로 위로해가며 아쉽게 포크를 뒤적거렸다. 식사하는 내내 상당히 고즈넉한 운치가 있었는데 마침 비도 살짝 떨어지고 하니 어두운 갈색의 건물과 푸릇푸릇한 잔디가 한 컷에 들어오면서 정말로 집에서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와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럼 이 지루한 장광설의 끝에 오는 물음 ‘다음에도 여기에 묵을것인가?’ 라고 자문해본다면... ‘한번쯤은 묵어 볼만하고 지내는 동안 크게 나쁠 건 없었지만 다음에 또 묵고 싶은 생각은 없다오’이다.
그건 바로 객실에 진하게 배어 있는 냄새 때문인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우기 때 만의 특성인지 아니면 숙소가 오래된 나머지 일년 내내 그런 특성인지, 또는 우리가 묵은 1층 만의 사정인지 아예 2층도 그러한지는 완벽하게 파악이 안 되어서 딱 단언하기엔 좀 애매하긴하다. 그래서 다른 시기에 이곳에 머물렀던 여행자들의 후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체크인을 하고 기대에 찬 발걸음으로 룰루랄라~ 스텝 꽁무니를 따라갔는데, 우리를 일층의 객실로 안내해주며 직원이 객실의 유리문을 활짝 열었을 때 훅~ 끼치는 큼큼한 습기 찬 냄새가 정말 지내는 동안 내내 강렬했다. 그 이유는 이 목조 객실은 벽마다 창문을 정말 크게 만들어놨는데 외부로부터 실내를 보호하기위해서 치렁치렁하고 무거운 커텐이 자락자락 드리워져 있었다. 게다가 우리 방은 일층인지라 낮에도 좀 편한 자세로 딩굴 거리고 있으려면 그 무거운 커텐을 다 여미고 있어야 했는데 그거야 뭐 그렇다 치더라도 이 두껍고 오래된 커텐이 습기와 곰팡이냄새를 꽉 머금고 있는지라 아무리 환기를 하고 에어컨을 틀어도 그 축축한 냄새가 왠만해선 빠지질 않는 거다. 그런데 리조트 입장에서는 얇은 커텐으로 개비를 하자니 창이 워낙 넓은지라 손님들의 프라이버시가 보장이 안될테고... 흠흠 -_-;;
냄새가 배이지 않는 소재의 블라인드라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아~ 잘 모르겠다.
다음에 빠이에 오게된다면 오토바이를 한 대 빌려서 아예 외곽의 들판가운데에 자리한 리조트에 묵어보고 싶기도 하다. 2박이될지 3박이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까이꺼 빠이타운의 편리함은 포기하고(사실 편리함이래봤자 별건 없고 야시장과 식당정도...), 그냥 온통 초록색 속에 왕창 묻혀 있다가 빠져나올 작정으로 말이다.
조금만 기운을 더 써서 양쪽 다 잡으려고하다가, 앗차~ 양쪽 다 놓칠 때가 있는데 더 쿼터가 내게는 약간 그런 이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