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야 아이스 인 - 창문 없는 방, 그리고 그들과의 전쟁...
처음 아이스 인에 묵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제2도로 중간쯤 있는 이곳은 위치도 좋은 편이고 그때는 막 오픈하여서 그런지 시설이 깨끗하고 관리도 잘 되고 있어서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숙소였어요. 아이스인, 에이펙 호텔, 다이아나 인이 나란히 있는 배낭여행자 숙소로는 시설과 위치 모두 최고였지요... 지금도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좋아 오후가 지나면 거의 매일 프론트데스크에 Full 사인이 붙을 정도입니다.
방 중에는 창문이 있긴 있으나, 그 창이 외부를 향하지 않고 건물 내부를 향해 있어서 햇빛이 거의 안들어오는 방이 몇 개 있어요. 만약 방을 보여 달라고 했는데 그런 방을 준다면, 다른 방으로 바꾸시거나 과감하게 다른 숙소로 가는 게 좋을듯합니다.
건물이 예전만큼은 새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냉장고, 티비, 온수, 와이파이도 되어서 넷북 사용자는 편하거든요. 그리고 성수기 기준으로 더블룸이 580밧이고, 비수기에는 이보다 약 100밧 정도 저렴해집니다.
시트나 수건도 깨끗한것으로 제공은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복병이 있으니 그것은 빈대입니다.
이번에 3층의 창문이 내부로 향한 방에 묵었는데, 방을 볼 때 그 점이 살짝 꺼림칙하긴 했습니다. 말레이시아나 인도에서는 볕이 들지 않는 방에는 빈대가 있을 확률이 높거든요... 하지만 태국이고 뭐 별일 있으랴 싶어서 그냥 체크인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슬슬 후끈하게 열이 나면서 가렵기 시작합니다. 전 그때 침대에 눕지도 않고 그냥 의자에 앉아 있었던 거라 설만 빈대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요. 그런데 웬걸~ 아이구머니나 요왕도 허벅지를 벅벅 긁기 시작하네요. 그때부터 빈대의 습격이 시작되는데... 침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큰 놈, 작은 놈, 깨알만한 놈들이 자꾸 나옵니다.
안 되겠다 도저히 침대에는 못 있겠다 싶어서 화장대 의자로 갔는데, 의자 가장자리에 빈대가 슬슬 기어다녀요... 그리고 걸쳐놓은 옷에도 빈대가... 아악~~~이게 왠 변괴람... 그 넓은 방에서 누울 곳은 커녕 앉을 곳 마저 없게 되었어요.
시트 다 걷어내 버리고 한사람은 복병 서고 한사람은 토막잠 자는데 그래도 빈대는 어김없이 무네요.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맨 바닥에 큰 타올 하나 깔아놓고는 요왕이 가부좌 틀고 앞에 앉고 그 바로 뒤에 제가 오두커니 앉아서는 온밤을 지샜습니다. 모양새가 뭐랄까... 하얀 미니 양탄자 타고 날아가고 있는, 두 명의 홈 리스 같은 그림이 되어 버렸어요.
근데 이 빈대들이 사람 냄새를 맡고는 타올로도 살살 오는 거여서 결국은 그 손바닥 만한 장소도 안전지대는 못 되더라구요. 이렇게 온밤을 지샜더니 머리가 빙빙 돌고 허리가 절로 앞으로 꺽입니다. 사실 이렇게 된데에는 관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지금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다보니 그중에는 위생이 매우 좋지 않은 여행자도 있을테구요. 그런 상태에서 햇빛도 안 드니 왕성하게 번식하게 되나봐요.
다음에 파타야에 올때는 돈이 좀 들더라도 좀 깨끗한 중급 호텔이나 레지던스에 묵거나, 아니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로 가버리든지 해야겠다고 결심이 들 정도였어요. 정말 끔찍한 밤이었습니다. 이렇게 온갖 나라 사람들이 드나드는 여행지의 숙소일수록 밝은 방, 그러니까 햇빛이 정말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