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이야기(1)] 방콕의 맛집거리, 예전에는 귀신이 지나는 곳? <빠뚜피>
서울에는 '광희문光熙門'이라는 성문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시구문屍口門'이라고도 불렀는데, 서울 도성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화장이나 매장을 성 안에는 할 수 없었고 이 문을 통해 시신을 성 밖으로 내보냈다고 하지요.
이런 전통은 태국 방콕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빠뚜피ประตูผี', 빠뚜=문, 피=귀신, 이름 그대로 '귀신문'이라 불린 곳입니다.
라마 1세가 방콕을 세울 당시, 도시는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왕실의 가족이 죽으면 성 안에서 화장을 하고 탑을 세워 안치하기도 했지만 그외 일반인들이 세상을 떠나면 반드시 동쪽 성문을 통해 시신을 내보내 '왓싸껫วัดสระเกศ'으로 옮겨 화장을 했습니다. 이 문을 '귀신문', '빠뚜피’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성문들에는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문구나 부적을 새기지만 빠뚜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직 장례 의식을 치르지 않은 영혼이 자유롭게 성을 빠져나가야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동시에 불길한 기운이 함께 들어올 수도 있었기에, 도시는 이를 막는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바로 왕궁 안에 있는 왕실사원인 '왓프라깨우'의 '에메랄드 불상(프라깨우)'을 빠투피와 정면으로 마주보게 하여, 신성한 힘이 나쁜 기운을 억누르도록 했습니다.
빠뚜피의 역사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장면은 아마 '왓싸껫의 독수리 떼'일 겁니다.
라마 2세 시절, 콜레라가 크게 퍼져 약 3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시신은 줄지어 빠뚜피를 통해 성 밖으로 옮겨졌지만, 화장터가 감당을 하지 못하였기에 며칠동안 왓싸껫 안에 방치 되어 있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시신 위로 수많은 독수리들이 내려와 살점을 쪼아 먹었고, 이 끔찍한 광경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후 라마 3세와 5세 시기에도 전염병이 재차 발생하면서 독수리떼가 왓싸껫 주변에 몰려 드는 일이 반복 되었습니다.
왓싸껫 안에 있는 푸카오텅 북쪽 면에 시신 주변에 독수리떼가 모여든 모습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지금은 그 무시무시한 풍경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벽과 문은 사라지고, 새 도로가 뚫렸으며 빠뚜피가 있던 길은 '즐겁고 평화로운 사람들'이란 뜻의 '쌈란랏สำราญราษฎร์'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다만 지역민들에게 이 동네는 빠뚜피가 더 익숙합니다.
이 지역은 팟타이로 유명한 팁싸마이, 미슐랭에도 오른 쩨파이 등의 식당이 있는 활기찬 음식 거리로 유명해 졌습니다. 옛날에는 시신을 실은 행렬이 지나갔던 길이, 오늘날에는 맛있는 음식을 찾아온 여행자와 현지인들의 발걸음으로 북적이고 있는 것이지요.
'죽음을 내보내던 문'이 세월을 거쳐 '삶과 즐거움을 불러들이는 곳'이 되었네요.
쌈란랏 거리
푸카오텅과 옛 성벽
쌈란랏 거리 입구의 타이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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