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이 - 스타일이 살아 있는 곳
빠이에 이르는 들고 나는 방법이나 숙소 그리고 식당, 펍, 바 정보는 요술왕자가 올릴 것을 살짝 기대해보구요. 전 그저 빠이라는 작은 마을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에 대한 느낌을 조금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곳은 치앙마이에서 미니봉고를 타면 3시간 만에 이르는 산골의 작은 마을인데요, 요왕은 그동안 틈만 나면 이곳에 왔다 갔지만 제가 마지막으로 들렀던 때는 아마 5년 전 쯤인듯 해요.
아무튼 꽤 오랜만에 빠이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방콕을 기준으로 잡자면 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치앙마이의 수많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빠이까지 여행자들을 실어 나르는 여행사 미니버스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1인 150밧 짜리 봉고에 올라 탄 후 잘 포장된 에스커브 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멀미 감이 살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다행히도 쏟아내기 직전에 빠이에 도착했어요.
예전에 왔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데 일단 세븐일레븐이 마을 남쪽 초입에 하나, 그리고 시내(?) 중심에 하나 이렇게 총 2개가 생겼고, 곳곳에 은행과 ATM이 보입니다. 유럽, 호주, 한국, 일본 등등 여러나라의 계좌에서 이곳으로 돈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그야말로 시내에 줄줄이 서있습니다.
예전의 희미했던 기억을 훑어보자니 빠이에서는 식도락의 재미를 못 보았던 것, 그리고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도로가 포장되어있지 않아 오토바이로 한 바퀴 돌고나면 온몸에서 먼지가 풀풀 나던 장면이 떠오르는데... 이제 이곳은 거의 대부분의 길이 잘 포장되어 있고 새로운 게스트 하우스와 식당, 인터넷카페와 분위기 있는 각종 상점들이 제대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위장을 행복하게 채워줄 만큼 식당의 수준도 높아지고 좋아졌구요.
그야말로 하나 불편 한 것 없는 타운이 형성되었고, 이곳이 태국 매스컴에 몇 번 소개되면서 태국 현지인들도 무척이나 많이 방문하는 포인트가 되었어요.
이곳의 스타일이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몇 가지 작은 이유들은... 정말로 작은 마을의(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쪽의 가장자리로 도보로 금방 다다를 수 있습니다) 가게들이 각각의 색깔과 디자인, 그리고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매대에 올려진 물건들이란 어쨌든 판매가 그 목적이긴 하지만, 이곳의 제품들에는 약간의 예술가적 몽상과 독특하고 공 들인 듯 한 디자인이 살짝 깃들어 있습니다.
홍등이 달린 나른한 밤거리, 고산족 부인네들이 내어놓은 수공예 패브릭들, 획일적인 아크릴 간판이 아닌 다양한 폰트의 간판들과 상품들이 묘한 하모니를 이루고요, 그리고 현재 이곳의 쌀쌀한 날씨는, 여행자들로 하여금 외투 한 자락을 더 껴입고 머플러와 비니 같은걸 두르게끔 하는 데요, 추위를 막기 위해 입은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각자의 그런 모양새들이 개성과 멋을 표현해줘요. 짧은 바지와 반팔 면 티셔츠가 표현하기 어려운 멋스러움이 있습니다.
백인 커플이 거리에서 자신들이 직접 만든 장신구를 팔기도 하고, 일본인 히피 같은 아저씨가 기타를 두둥기기도 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두 남자는 무보수로 바에서 연주하고, 일본인들은 벌써 이곳에서 살짝 벗어난 외곽에 자그마한 커뮤니티를 형성해 있다는군요.
빠이의 여행자 중심 구역을 벗어나면(다리 하나만 건너가면 됩니다) 그곳에서부터는 여행자 무드와는 전혀 상관없는 듯한 논과 밭의 연속입니다. 물론 그쪽에도 많이 생겨난 게스트 하우스와 리조트들이 촘촘하지만, 이 평화로운 농촌 분위기를 갉아먹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요.
딱히 할 일이 없는 이곳에서 논, 밭 사이의 오솔길을 따라 걷는 것도 심신에 좋습니다. 무척 상쾌한 느낌이고 신선한 공기가 폐를 청소해 주는듯한 상상도 듭니다. 마을을 둘러싸고 흐르는 강과 들판 그리고 새로 지어진 스타일 있는 부티크 숙소들이 서로 섞여서 자아내는 느낌은 참 이쁘고 편안한 느낌이에요.
현지인들도 다양합니다. 이곳 주민들, 외지에서 놀러온 태국 젊은이들, 중국계 무슬림 주민들, 그리고 저녁이면 작은 수공예품을 들고 자리 잡기 시작하는 고산족 아낙들, 그리고 히피 분위기가 물씬한 백수 청년등등...
사실 이러한 구성은 다른 곳에서도 흔하지만, 이 작은 길거리에 소복이 모여 있다 보니 그 대비가 더욱 확연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직 이른 아침.... 먹을 것을 찾아먹으려고 숙소 앞 길거리에 나서봤더니 그 이른 시간에 기타를 튕기며 노래하는 청년, 그리고 검은 베일의 무슬림 아줌마, 머리를 산발한 사두 같은 정체불명의 중년남자와 백인 여행자들 그리고 스님에게 공양을 바치기 위해 서있는 태국인 아주머니들과 그들을 축복해 주는 오렌지 색 승복의 스님... 아주 좁은 간극을 유지하며 한 컷에 다 들어오는데 각자 맡은 바 역할을 하는 무대에 선 배우들 같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5년 전 말끔한 시설로 시내 중심에서 오픈한 팜 게스트 하우스는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숙소이지만, 예전의 반짝거림이 거의 퇴색되어서 좀 낡아 보이고 게다가 수건은 누런 찌든 때가 빠지지 않은 채 제공되어서 좀 아쉽습니다.
하지만 빠이 중고등학교를 지나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다리가 나오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 그야말로 새로 들어선 숙소들이 굉장히 많아요. 무척 잘 꾸며놓은 곳도 심심찮게 보이구요, 나름의 특이한 색깔과 분위기가 있습니다.
밤이 되면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거리에 깔리는데 그렇게 시끄럽지는 않습니다. 마을 전체에 나긋나긋 조용한(어찌보면 약간 맥이 빠진듯한...) 무드가 흘러서 심신이 차분해 지네요.
적어도 이곳에 있는 동안은 무섭게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펀드도, 사자마자 하한가를 땡땡 울려주시는 주식걱정에서도 해방됩니다. 요왕은 타 빠이 온천(빠이 시내에서 8키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에 놀러가 모래로 둑을 쌓는 놀이를 하면서 , 어렸을 때 재미있던 놀이가 커서도 여전히 재미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키들키들 웃어요.
사실 느낌이란 것은 무척이나 주관적인 것이어서 딱히 뭐라고 하기도 어렵고, 또 남의 느낌을 따라서 여행계획을 짠다는 것도 좀 불안한 점이긴 합니다. 저 역시 다른 사람들의 주관적 느낌을 쫒아 여행지를 정했다가 실망감과 의아함만 안은 채 돌아온 적이 가끔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어디서나 그렇듯이 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에요.
이곳 빠이에도 우리가 이곳을 방문하기 얼마 전에, 경찰이 캐나다 국적의 남녀에게 총을 쏜 사건... 태사랑 게시판에도 올라왔던 사건인데요, 남자는 죽고 여자는 치앙마이 병원에서 회복 중에 있다는 그 뒷 얘기가 이 지역 영문 소식지에서 떴더군요. 기사를 보면 마치 구로자와의 라쇼몽에서 처럼... 경찰의 말, 목격자의 말, 여성 여행자의 말, 여성 여행자의 친구의 말 등등이 전부 차이가 있습니다. 한 상황에 대해 판이한 이야기들이 보고되어지고 있어서 일의 진전이 지지부진 하다는 군요.
어디서나 몸조심, 사람조심해야 하는 건 이곳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루 평균 5건 정도의 오토바이 사고(이곳의 규모를 생각하면 꽤 많은 횟수인데요... 일단은 집계를 믿어봅니다만...)가 일어난다고도 하네요.
굳이 빠이 만을 목표로 방콕에서 이 먼 북쪽까지 힘겹게 올라와야할 이유는 없지만, 일단 여정이 치앙마이까지 다다르셨다면 조금만 더 시간을 내서 빠이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다른 여행자들처럼... 이곳의 무드에 터치를 받았다면 , 그거야 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구요... 정말 시시하게 느껴진다면 - 췟 ! 인터넷에 떠도는 감상적인 장광설에 깜박 속았구먼 - 하시고 재빨리 미니 봉고에 올라타면 됩니다. 그럼 3시간 만에 치앙마이에 도착해 있을 거에요.
#2009-04-09 14:09:31 지역/일반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