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왔으면 쓰라린 가슴안고 떠났을 빠이
겨울성수기에는 중국인여행자+태국현지인 여행자에 더해 늘 이곳의 주류를 차지하고있는 후리한 스타일의 서양인들로 바글바글 들끓는 산골마을 빠이입니다.
매홍쏜 주의 작은 마을일뿐이었는데, 이제 외지인 유입 인구의 기운으로 보자면 도내에서는 원탑클래스죠.
저는 겨울성수기 시즌의 높은 인구밀도와 높아지는 숙소비, 게다가 화전으로 인한 공기의 탁함 등등 때문에 빠이로 가고 싶은 맘이 그다지 안듭니다.
하지만 비수기인 우기에는 오히려 고즈넉한 무드가 그나마 좀 있기도 하고 논에 푸르른 벼들도 서정적이고 해서 이곳에서의 머무름이 훨씬 편안해지네요. 황금들녁도 멋있지만 역시 안구정화에는 녹색이 좀 더 낫네요.
그래서 이번에 방문한 빠이에서의 시간이 편안하고 나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이 여정에서 요왕이 같이 있었으니 이런 마음이 들었지 만약 혼자였다면, 또는 대략 나와 비슷한 정도의 무능력 캐릭터랑 함께 했다면 빠이에서의 시간이 어떠했을까? 생각해보니 하나도 즐겁지 않아요. 아마 쓰라린 마음 안고 울며 잠이 들었을지도요...^^
빠이의 개들 처럼 몸을 돌돌 말아서요.
일단...
왠만한 도시에서는 가까운 거리를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대중적인 교통수단이란게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그런게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자가운전을 못하는 여행자가 관광포인트를 가려면 일단 오토바이 대절을 해야하는 그런 시스템입니다.
그러니 읍내의 동서남북으로 사방팔방 넓게 퍼져있는 유명한 포인트를 가보려면 오토바이 자가 운전자가 아닌 이상 상당히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남이 모는 오토바이뒤에 실려서 가는것이 그다지 쾌적하다고 만은 할수없는 상황 이랄수도...
읍내 남쪽으로 코끼리 캠프와 트리하우스같은 특이한 숙소 그리고 온천도 있고, 북쪽으로는 오토바이로 전경을 둘러볼수있는 좋은 논과 강 풍경도 있고, 서쪽으로는 중국인 마을과 윤라이 전망대와 머뺑폭포, 그리고 메인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가면 빠이캐년과 예쁜 커피집 그리고 2차대전 다리 등등이 있지만 갈 도리가 없으면 전부 무용지물 이잖아요.
저같이 오토바이 못 모는 사람이라면 여행사에서 모집하는 빠이타운 근교볼거리들을 묶어서 하는 반나절투어를 해도 되긴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요모조모 볼 수 있으니 이걸 해보면 효율적이긴 할거에요. 다만, 완급을 조절 할 수 없고 이런류의 단체투어가 다 그러하듯, 좀 싱겁게 끝나긴 하겠지만 다른 방편이 없지않겠어요. 여기까지 커브길을 구비구비 돌아 구토유발을 참으면서 힘겹게 왔으니 뭔가 좀 보긴봐야죠...
그렇게 타운 근교 볼거리들을 한바퀴 돌고 난 후에는 뭘할까...
그럼 원거리 이동이 제한적이니 저처럼 두발로 걷는거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엔, 볕이 쨍쨍 한때를 피해서 호젓한 길을 산책하는 것도 좋겠지요. 태국에서 볕 쨍쨍할때 거리를 무작정 터벅터벅 걷는건 그야말로 자학행위에 가깝다고 보여지고요, 그나마 선선한 아침나절이 산책을 하기에는 좋아요. 그런데....
이때의 문제점은 개들입니다.
이런류의 호젓한 길에는 꼭 집없는 개들이 배회하거나, 또는 각각의 주택에서 키우는 개들이 목줄을 안한 채 살고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낮에 더울때는 이들도 혀 빼물고 그냥 엎어져있는데 차갑고 선선한 기온에는 힘이 뻗치는지 개들 기운도 좀 사납습니다.
그리고 이 개들조차도 사람을 가려서 대하는지, 좀 체구가 작고 약해보이는 캐릭터들에게 더 공격적이란 말이에요. 흑흑...
매옌, 매히마을의 안 자락 농로 길을 요왕이랑 같이 걸으며 주위풍경에 빠져 걷고 있는데... 사람의 인기척을 들은 개들이 집마당에서 뛰어나와 그르렁 거리면서 몇 발자국을 막 따라옵니다. 아니 그쪽 방향으로 눈길 하나 준 것도 아니고 그냥 앞만 보고 걸었거든요. 이거 저 혼자라면 도무지 쾌적한 산보길이 안될 것 같습니다. 두 명이 걸어 간다 치더라도 개 무서워하는 저같은 캐릭터가 동반자로 한 명 더 있다한들 아무 도움 안될 거 같아요. 비명이나 두배로 지르겠죠.
그러니 저같은 사람의 아침산책 모양새는 이집 개한테 쫒기고 저집 개한테 쫒기고 그냥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면서 나좀 내버려둬!! 그러면서 걷는라 서정적인 경치가 눈에 안들어올거같아요. 흑흑
개를 잘 다루고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런건 전혀 문제가 안되겠지요.
사정이 이러한바 대략 안전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는 빠이읍내에 머물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늘상 걷는 길이 그길이지 않겠어요. 일명 워킹스트릿이라 이름 붙여놓은 차나쏭크람 길과 그 길에서 가지를 뻗은 몇몇개의 도로들... 그리고 타운의 규모가 작다보니 맨날 먹는게 그거고... 이러다보면 그 좋다는 교외경치도 내가 즐길 수 없으니 무쓸모고...
중국인한테 치여, 외국인한테 치여, 개에 치여, 그리고 빠이타운길에 늘 행인들과 뒤섞여 달리는 오토바이에 치여... 그냥 이리저리 치이다가 쓸쓸하게 빠이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재빨리 치앙마이로 튈게 뻔해요. 저라면 말이에요.
빠이에는 예쁜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많긴한데 사실 치앙마이의 토요시장, 일요시장에서도 다 살수있는... 게다가 가격은 치앙마이쪽이 아무래도 약간 더 저렴해서 메리트가 그닥 있을라나 모르겠네요.
같은 공간 동일시간이라도 내가 어떠한 캐릭터인가에 따라 감흥이 무척 다를수밖에 없을텐데요... 저혼자 여길 온다고 생각하니 그냥 암담하고 그렇네요.
혹여 음주가무에 탁월한 재능 가진 분이라면 자금자금하게 열리는 빠에 가서 시간을 보내도 좋겠고, 명상이나 요가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마을 여기저기 벽마다 선전지가 붙어있으므로 그런 커뮤니티에 소속이 될수있으니 그나마 괜찮을텐데...
전 그것도 아니니 말입니다요.
끄적거려놓고 보니 이건 제가 문제가 많아서 그렇네요. 흑흑...
‘빠이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것 같아요. 모든 여행자들이 동일한 여행조건과 취향과 여행스타일을 갖고 있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러니 혹여 빠이에 오셔서...
다른이들의 감성이 흘러넘치다못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여행기에서처럼, 멋들어진 감흥을 못느낀다 하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하세용.
여행자는 자기가 경험한 것에 대해 늘 좋다고 이야기하기 마련이고, 그렇지 않은 여행자는 왠지 실패한듯한 느낌때문에 그 마이너한 감정을 숨기기 마련이니까... 분명히 여러분과 같은 생각을 하고 빠이를 떠나는 여행자들이 있을겁니다.
사실은 저도 후자쪽입니다만....^^;;
치앙마이와 빠이를 연결하는 터미널 미니밴
오후시장 앞 사거리
거리 풍경
으응?
타빠이 가는 길
왓 매옌 대불상 앞에서 내려다본 빠이 전경
터미널에서 다음 여행지로 이동을 준비중인 여행자들
빠이강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