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여행기2] 역시 방콕이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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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여행기2] 역시 방콕이 진리!

피비 34 5439
*혼돈의 오토바이 도시 호치민에서 방콕으로 건너온 날, 파야타이 공항철도역에서 내려 트루시암까지 잘 찾아왔어요. 체크인 하자마자 배낭 집어던지고, 한국에서 돈 줘도 안 입는 요가바지도 벗어던지고, 호치민에서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초미니스커트 입고, 색소폰으로 뛰어갔네요. 

*룰루랄라, 어찌나 발걸음이 가볍고 좋은지, 역시 방콕이 진리, 진리, 진리!! 나도 몰랐는데 윤종신의 환생을 부르고 있더군요. 다시 태어난 거 같아요~ 오 놀라워라~ 그대 향한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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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만큼 써놓고,  

*파타야 2박하고 다시 방콕입니다. 이번엔 실시간여행기 쓸 맘이 그닥 생기지 않더군요. 역시 지난번에 대충 써놓은 것들 완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서인지, 왜 숙제처럼 느껴지면 하기 싫잖아요.ㅜㅜ

한국 가기 전에 열심히 쓸려고 합니다. 기록은 삶에 우선한다... 여행은 찰나이고 사진과 여행기는 영원하더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꼭, 꼭, 여행기든, 사진이든 남기세요! 

*트루시암 숙소 위치 환상이네욧! 환율도 지난 4월에 비해 아주 좋아졌네요. 그땐 2800대까지 내려갔는데 이번엔 백달러 3086으로 환전했어요. 

*놀라지 마세요. BTS 요금 올랐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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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1 폭우 내리는 오후 


트루시암에서 나와 길을 나서는데 빗방울이 한방울씩 떨어졌다. 팔 등에 살포시 점 찍듯이 내려앉는 물방울 때문에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 잔뜩, 언제 물 한 바께쓰가 쏟아져도 이상할 게 없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 우산을 챙겼다. 우산을 쓰고 비 맞는 현지인들 사이로 유유히 산책을 나섰다. 

빅토리 마뉴먼트 역으로 향하던 나는 문득 쇼핑몰은 조금 시시하다 싶어, 사거리에서 파야타이 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는 비쯤이야 온 몸으로 맞아주던 대범한 현지인들도 어느새 거리엔 없다. 나 뿐이다. 빗방울이 내 머리 바로 위 우산 지붕을 드럼 치듯 때리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바닥을 때리던 빗물은 일제히 위로 다시 튀어 오른다. 신발이 젖기 시작했고 우산을 쥐고 있던 손등 위에도 빗물이 내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제 파타야에서 올 때도 이렇게 비가 내렸다. 블로그에 올린 호텔 후기에 대한 포상으로 받은 5성급 호텔에서 나와 친구는 조식을 푸지게 먹고 뿌듯함을 안고 객실로 돌아와 체크아웃 시간 전까지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잠깐 주위가 사위어가는 느낌, 과장되게 말하면 종말의 시간이 다가오는 분위기가 평화로운 호텔룸을 잠식했다. 

간접 조명이 한층 어두워진 불길함, 커튼을 걷으니 비가 있었다.

지금처럼 시야를 가리는 스콜성 폭우였다. 마음을 빼앗긴 채 내리는 비를 한참 쳐다봤다. 언제부터인가 미친 듯이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때도 비가 있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얼굴로 맞고 있는 내가 있었다. 시종 웃느라 빗물이 입으로 마구 들어가는데도 조금도 개의치 않는 20대의 내가 있었다. 

현지인들이 물놀이 한다는 장소에서 나와 그는 벌거벗은 채로 불어터진 강물과 묘하게 섹슈얼한 분위기를 탐닉하고 있었다. 디디엠 도미토리에서 처음 만나 칸짜나부리에서 다시 재회했던 터였다. 

그 당시 나는 지하철에서 처음 만나 섭웨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와 7년 여의 연애를 끝낸 후 1년을 보냈지만 여전히 비슷한 뒷통수를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사후 후유증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상태였고, 

그는 1년 여의 세계 여행에서 얻은 언니라는 별명에 걸맞게 긴 머리와 치마를 즐겨 입고, 당시 카오산에 굴러다니는 여행 폐인들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지지리 궁상으로 다니는 독특한 비쥬얼의 사람이었다. 

첫만남은 흔했다. 

쏭크란을 맞아 방콕으로 날아온 난 디디엠 로비에서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마침 호주에서 집채만한 양털 이불을 사들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경유지로 잠깐 태국에 들른 비슷한 또래 여자 2명이 옆 테이블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때, 그가 등장했다. 머리띠로 긴 머리카락을 뒤로 보내고 새카맣게 그으른 얼굴에 하늘색 천으로 앙상한 몸매를 치마처럼 감싼 채로. 분명 남자인데 여자처럼 다소곳한 국적불명의 사람이었다. 

"언니! 오늘도 얼굴 팩 할 거죠?"

언니라는 호칭에 화들짝 놀랐다. 나는 번뜩이는 호기심에 그를 쳐다보았고 그는 내 앞에 의자를 빼 그를 반기는 두 여자 앞에 앉았다.

"물론이지, 오늘은 뭐할 거야?" 

다리를 꼬고 앉은 폼이 여자보다 더 정숙하고 얌전했다. 말투 역시 언니라는 호칭이 전혀 위화감이 없다.

그랬다. 그는 방콕에 성전환수술을 하러 온 특별한 사람들 중에 하나였던 거다. 

하지만 여자가 되기에 그는 터무니없이 키가 컸고 다리는 모델처럼 날씬하고 예쁜 반면 어깨는 남자의 것처럼 너무 넓었다. 더욱이 말투와 걸음걸이는 여자보다 우수하지만 얼굴은 곱상하지 못하고 각이 진 남자 얼굴이다.

슬프고 딱한 일이었다. 

그(녀?)는 왕궁 입장료가 비싸기 때문에 거기에 갈 이유가 없다고 딱 잘라말했고 그의 찌질한 궁상에 두 명의 여자가 까르르, 웃었다. 

왕궁 입장료가 비싸다 하니 그는 전환 수술을 할 만큼 돈을 모으지 못했을 것이 자명했다. 오히려 다행이다. 그는 여자가 되기엔 너무 크고 남성스럽다. 비록 속은 천상 여자일 지라도. 

나는 이방인처럼 앉아 그들의 대화를 조용히 엿들을 뿐 껴들 순 없었다. 그들만의 대화가 끊겨 그의 관심이 내게 쏟아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애꿎은 가이드북만 계속 만지작거렸다. 

이후, 체크인을 하게 되었고 당시 디디엠은 남녀가 함께 방을 썼기 때문에 그가 남자방에서 잘 지 여자방에서 잘 지 하는 저속한 호기심 채우기는 불발로 그쳤다.

쏭크란 축제가 다가오기 직전의 카오산은 그야말로 북적북적했고 한국에서 날아온 젊음은 모두 디디엠에 모여들었다. 
나는 2층 침대의 고층을 차지하고 삐꺽거리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방콕 입성 후 첫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싱싱한 젊음조차도 에너지가 딸렸던 미친 물축제 동안에 나는 1층 침대를 쓰던 두 살 연하 남학생과 밥도 같이 먹고 시내로 나가서 함께 쇼핑도 하고 그랬다. 

언니라고 불리던 그는 주로 대단위 일행들과 함께 우루루, 몰려다니는 거 같았다. 그에 대해서 알 기회는 제법 있었다.
디디엠의 밤은 길었고 2층 침대 7개에 세들어 사는 14명은 틈만 나면 비좁은 바닥에 둘러 앉아 호시탐탐 서로를 알고자 했다. 

중국 칭다오를 배로 건너와 중국 대륙을 육로로 이동한 그는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말레시아 등 인도차이나 반도를 훑고, 다시 인도, 이집트를 거쳐서 선교사 친구가 있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1년에 걸쳐 세계여행을 한 상태였고 이제 송크란이 끝나면 여행의 마무리를 짓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2층 침대 7개를 공유했던 그 시절, 그 방에서 우리는 뜨겁게 서로를 감싸안았고 서로의 총알받이라도 할 양 든든한 동지애도 생겼다. 그 중심엔 언니가 있었다. 잘려고 누운 사람들 하나 하나 챙기면서 에어컨 온도가 맞는지 살폈고, 배탈난 한 여학생의 손을 바늘로 능숙하게 따주기도 했다. 

처음엔 그 친절이 우스꽝스럽기만 했는데 에어컨 가까운 2층 침대에서 하룻밤을 꼬박 추위에 벌벌 떨고 지낸 후엔 그가 네팔 트래킹에서 사용했다는 침낭을 염치 없이 빌려 쓰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오지랖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남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기는 현대인이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지 않은가. 

그렇게 살가웠던 우리는 쏭크란이 끝나면서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마지막은 그닥 아름답지 못했다. 

내 아래 1층 남학생이 모두가 잠든 한밤 중에 옆 침대 1층에 자던 여학생의 배낭에 오줌 한바가지를 쏟아낸 일이 터졌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엔 항상 복병이 있기 마련인데 그 해 디디엠 숙소가 바로 그러했다. 그 복병의 정체를 까발리기엔 우리는 너무 순진했고 여행 역시 계속되어야 했다. 모두가 고개를 돌리고 외면한 상태에서 피해 당사자인 여학생은 침묵 속에서 묵묵히 배낭을 빨았다. 

그와는 그렇게 헤어졌다. 특별히 작별인사를 할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고 다시 만날 일은 없다 생각했는데, 

칸짜나부리 졸리프록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방콕에서처럼 그는 혼자가 아닌 여행지에서 만난 동생들을 줄줄이 매달고 나타났다. 

그리고 폭우가 오는 어느 날, 

둘이 두 손 맞잡고 넘실대는 강물 속에 몸을 맡긴 채 내리는 비를 맞고 있었다. 

함께. 우리 둘만. 


......


그로부터 8년이 흘렀다. 

언니는 지금 무엇을 할까. 

조금 오래간만이지만 전화를 해봐야겠다. 메시지로는 부족하다. 

그때 우리가 함께 맞았던 그 비를 언니도 기억하고 있을까. 
당시 언니가 얼마나 예쁜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모든 사람한테 친절한 사람이었는지 알까. 

때르르르르르릉, 때르르르르르릉, 신호가 갔고,

"앗, 자기 어디야? 잘 지내고 있어?" 

언니의 목소리다. 



34 Comments
루나tic 2013.10.01 18:49  
소설읽는 기분입니다..전 왜 두근두근 거리죠? 궁금하고 조마조마하게 2편기다리는 그런 마음이예요..
피비 2013.10.02 01:10  
오~ 루나틱님 4월에 예정했었던 9월 방콕 여행을 무사히 잘 다녀오셨나 봐요?
한국에 귀국하면 여행기 차근차근 읽어볼려고 기대 중이에요.^^
제목부터 완전 흥미돋아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해낸 거네요!!
루나tic 2013.10.02 12:19  
네~ 잘다녀오고 다년온 기간보다 더 길게 후유증에 시달리는중입니다. 다시 가고 싶어요..ㅋㅋㅋ 다시가면 회사그만두고 아주길~~~~~~~~~~~~~~게 갈려고 맘먹고 있어요..ㅠㅠ 짧은 일정 너무 아쉬워요..ㅠㅠ
피비 2013.10.05 21:40  
헉!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대시면 그냥 지르시고 30대 이상이시면,
회사 그만두고 다음 회사 정해놓고 쉬는 타이밍에 다녀오시길 적극 권해드립니다.ㅋ

그나저라 짧은 일정은 무지 아쉽지요. 2주도 짧은 듯, 한달은 되야 어디 이동도 맘 놓고 하고 그럴 듯요.
앙큼오시 2013.10.01 19:11  
bts요금이 올랏군요....ㅠㅠ
피비 2013.10.02 01:10  
빅토리마뉴먼트에서 아속까지 37밧.ㅜㅜ
뮤즈 2013.10.01 19:28  
드라마 작가신가봐요.
결정적인 순간에 딱 끊어먹네..ㅠㅠ

일주일 기다려야되나요? ㅎㅎㅎ
피비 2013.10.02 01:15  
비도 그치고 배도 고파서 후다닥 올리고 나왔어여.ㅋㅋㅋㅋㅋ
실시간여행기니깐요.ㅠㅠ
아디다스와초장 2013.10.01 20:03  
언니가.
치앙마이행 야간버스 안에서 그 노래와 같이 만났던 분일까.
분당의 그분일까. 아주 잠깐 궁금했었어요.
사랑했던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있는 분이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피비 2013.10.02 01:19  
무언가를 추억한다는 건,
이미 그 한가운데 있지 않다는 얘기라고 하던데,
이 여행기가 만약 사랑을 추억하는 얘기라면 나는 그 과정을 이미 지나쳐 온 건가, 싶어 마음 한켠이 서늘해 집니다.
댓글로 아는 척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낙슥사 2013.10.02 11:29  
빨리 써줘용
피비 2013.10.05 21:19  
헉!! ㅡㅡ;
본자언니 2013.10.02 12:32  
잊고싶어도 잊지 못하는 기억..저도 맘 한구석이...;;
피비 2013.10.05 21:20  
가만보니 본자님도 언니시군요.ㅋㅋ 여행 안 나가시나요?
본자언니 2013.10.06 12:58  
앗!!! 저 별명이 언니라 아뒤가 언니이지 실제로 언니는 아닙니다. 남자입니다...;;;
그리고 10월 28일에 32살여행 떠납니다..ㅎㅎ
본자언니 2013.10.06 13:00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혹시 님의 그 언니 같은 뜻으로 얘기신거면..ㅎㅎㅎㅎ
정말 아닙니다~ 전 남자입니다~ ㅎㅎ 전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입니다..^^;;;
etranger 2013.10.02 14:37  
가끔 태사랑 여행기를 읽다보면 핑크빗 컬러가  드문드문 보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가울때가 밋밋한 여행기 읽다가 이런 스토리 나올때이지요. 다음편 기대 됩니다.
피비 2013.10.05 21:23  
앗, 감사합니다. 덕분에 사진 없는 여행기도 마구 올릴 수 있네요.ㅋ
대한민국1%미남 2013.10.02 23:03  
소설입니다ㅋ
피비 2013.10.05 21:24  
리얼이에욤.ㅋㅋㅋ
답망이 2013.10.03 00:00  
곧 방콕 여행을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것 같아요 ㅎㅎ
피비 2013.10.05 21:24  
어느 부분이?ㅋㅋ
재프™ 2013.10.03 17:35  
방콕이 진리 지요  ^^
저도 아무 생각 없을 땐 그냥 방콕으로 날아 가는 거 같아요. 가면 그냥..  동네 같은...
이제 종로 보다  수쿰빗이 다 익숙하다는    ㅎㅎ
피비 2013.10.05 21:25  
종로보다 수쿰빗이라니 진정한 태사랑회원이신가 봐요,
아, 왜 부럽지?ㅋㅋㅋ
pf13 2013.10.04 15:26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원래 대화명에서 케이츠 누나를 연상했었는데
이번 편을 읽고 나니 "피비"는 "blood rain"을 의미한다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드네요. -_-a
물고기날다 2013.10.05 12:37  
제 생각엔 프렌즈의 피비! 한표입니다.
피비 2013.10.05 21:27  
방콕에서 나랑 놀아주는 베프가 지어준 별명이에요. 아마도 프렌즈 피비일 듯?
피비 2013.10.05 21:25  
피비린내,,,의 준말일 수도....
dalala 2013.10.05 11:34  
BTS 요금 올랐군요;;;; 글 잘 쓰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ㅎ
피비 2013.10.05 21:28  
요금 너무하지용. 현지인들 우째 다니라고...ㅠㅠ
강팀장1 2013.10.06 20:41  
글 잘봤습니다~~
하얀미소55 2013.10.07 22:05  
한편의 소설같아요...ㅎㅎ
hueann 2014.02.25 02:31  
4개월이 지났는데..the 언니와의 다음글좀 써주세요!!
jimbob 2016.12.18 12:38  
재미나게  소설처럼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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