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여행기] 배낭의 속사정(?)
*방콕 올때마다 새롭네요. 터미널 21, 아시아티크, 메가방나, 재개장한 시암센터 등
*시암쪽 많이 변했어요. 마분콩부터 칫롬까지 스카이워크로 다 연결돼 있고 시암센터뿐만 아니라 근처 쇼핑몰들 많이들 재정비했어요. 덕분에 시암스퀘어가 상대적으로 죽은 느낌이에요. 센트럴칫롬점 현재 레노베이션 중이고 랑수언로드 조용해요.
*그럼 뭐하나요. 환율과 물가상승으로 방콕 너무 비싸요. 비수기 프로모션가로 호텔 예약하고 노점과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밥 먹으면 아직도 쓸만해요. 문제는 쇼핑을 못해요. 쇼핑몰들 모두 그림의 떡.ㅠㅠ
*지난 3월 초에 100달러 환전하면 2920밧이었는데, 오늘 터미널 21 보라색 은행 환전소 갔더니 2836밧. 뜨악!!!
___________
2013.04.16 - 김해공항에서 수완나폼 근처 호텔을 거쳐 목적지인 첫날 숙소까지의 여정
최근 몇 년간 배낭을 메고 여행을 나간 적이 없다. 혼자하는 여행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국은 보통 둘만 돼도 택시를 이용하는 게 여러모로 합리적이기 때문에 배낭을 가져올 이유가 없었다.
대신, 여행일수에 따라 20인치 혹은 24인치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
이번엔 혼자다.
그래서 배낭을 쌌고 한국에서 신는 가장 편한 운동화를 여행동반자로 간택했다.
한반도 전쟁을 우려해 방콕으로 피신해 온 친구를 위해,
한국의 빅씨, 이마트에 들러 화장품, 고추장, 오뚜기 후추, 맥심 모카골드 등을 챙겼다.
배낭이 살짜쿵 널럴해 공간마다 커피믹스를 끼워 넣었더니,
나중엔 배낭이 빵빵해지고 돌덩이처럼 무거워져 혼자 힘으로 배낭을 옮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다행히 리무진 버스 정류장까지 엄마가 태워줬고 그 담부턴 기사님이 200바트 가량의 돈으로 나를 김해공항까지 실어주었다.
공항은 한산했다.
순식간에 내 차례가 되어 천근만근 배낭을 카운터 저울 위에 올려놓고 첵인 수속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놀라운 숫자.
10.00Kg
고작 십킬로.
불과 몇년 전이었다. 십수킬로짜리 배낭쯤 거뜬히 메고 공항에서 노숙도 불사했던 그때가.
제주항공을 타면 현지 시간 자정 즈음에 공항에 떨어진다.
겨우 몇시간 자겠다고 호텔씩이나 예약하는 것도 그때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수완나폼 공항 푸드코트에서 끼니로 쌀국수 한그릇 먹고, 간단한 간식거리로 볶음국수 한그릇 더 먹고, 한적한 의자를 찾아 침낭 꺼내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몇 시간 눈 좀 붙이고 주위가 시끄러워질 때쯤 일어나 카오산으로 가,
이미 태사랑 게스트하우스 리뷰를 통해 물색해 놓은,
혹은 한인업소 도미토리로 가면,
하룻밤 숙박비는 벌게 된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카오산 노점에서 우아하게 요거트에 과일 듬뿍 넣은 무슬리 한 그릇 먹고, 해장용 나이쏘이든 쫄깃탱탱한 쿤뎅 국수든 가서 한 그릇 먹고, 입가심으로 숯불토스트 한조각 하고, 취향에 따라 과일쉐이크 혹은 커피 한사발 노점에서 양질 우수한 놈으로 테이크아웃해서 숙소로 걸어오면 되겠다.
공항 노숙의 피곤함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면,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 잠을 청하든지 혹은 짜이디 혹은 반싸바이 마사지로 가서,
모닝 맛사지 한판 하면, 것도 좋겠다.
근데, 십킬로의 무게도 감당 못해 트롤리에 배낭을 올려놓고 끌고,
2층 4번 게이트 미팅 장소에서 마중 나온 친구와 푸지게 재회하고,
(왜 외국에서 보면 더 반갑지?-_-)
단 몇 시간 동안의 심신의 안락을 위해 호텔로 이동하는 지금의 나는...?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 못하는 건방증으로 치부하기엔,
증세가 조금 심각한 게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최근 몇년 동안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왠지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아니, 누가 뺏어간 것만 같다.
내 하소연을 들은 친구가 한마디 거든다.
"이젠 책가방도 무거워 못 든다"
사실일까.
책 넣을 가방도 없거니와 가방에 넣을 책도 없다.ㅠㅠ
그러니 책가방을 내가 들 수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 없다.
가만보니,
요 몇 년 간 내가 얻은 건 뱃살과 뻔뻔함이며,
잃은 건 근력과 지식이다.
친구와 숙소로 돌아와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배낭 정리였다.
일단, 친구를 위한 전리품은 전부 제거했다.
구석구석 들어간 커피믹스는 150개가 넘었다.
이젠 제법 가벼워졌겠거니 했는데,
다음날 체크아웃할 때 배낭 메 보고 또 한번 크게 좌절했다.
한국의 꽃샘추위 날씨에 맞춰 입고 온 옷을 배낭에 넣고,
가벼운 나시와 요가바지를 빼 입으니,
커피믹스 150개 받고 50개 다시 받은 무게로 배낭이 변신했다.
그 초사이언급 변신은 마치 나를 조롱하는 듯 했다.
약이 바짝 올랐다.
내가 가장 가까이 두고 매일 씻겨주고 먹여주고 했었는데,
내가 그 사람이 변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타인에게 무심하고 사물에게 무례한 나일지라도,
나에게만은 극세사 감수성과 예민한 촉각으로,
일거수일투족, 사사건건, 참견하고 개입하고 군림했었는데,
몰랐다.
나는 나를 몰랐다.
나는 더이상 배낭을 메지 못한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다.
그리고 큰 문제도 아니다.
"나는 소중하니까" 대명제는 변함없으니,
푼돈 정도는 아낌없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다.
애초 계획은 호텔 픽업 버스를 타고 다시 공항으로 가서,
저렴하고 빠른 공항철도를 타고 시내로 나올 계획이었는데,
그냥 택시를 타기로 한다.
**
복병.
순진하고 사람 좋지만 무식하고 섬세하지 못한 방콕의 택시 기사는,
나와 친구, 내 배낭, 그리고 이제는 친구의 짐이 되버린 커피믹스 150개를,
그냥 시내 한복판에 널부러 뜨려 놓았다.
내가 묵을 숙소는 내셔널스테디움역인데 그의 도착지는 시암역이었다.
전철 한코스 거리를 꼼짝없이 걸어야만 했다.
불행과 고난이 닥칠 때,
보통의 나같은 소시민이 취하는 자세란 일단 상황을 만만하게 보고 쿨하게 대처하기.
배낭을 사뿐히 짊어지고,
모든 시작은 한걸음부터라는 긍정적인 모토로,
앞만 보고 걷기.-_-
막상 닥치니 해냈다.
그러고보니,
나는 더이상 배낭을 못 메는 사람이 아니라,
배낭 메기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 차이는 크다.
나는 무능력자가 아니라 그냥 속물이었던 거다. 이상한 비약이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다.
배낭을 메고 걷는 길은 순례자의 그것처럼 고되고 성스러웠다.
시암역에서 내셔널스테디움역까지 가기 위해선,
시암파라곤을 시작으로 시암센터를 지나, 시암디스커버리를 지나,
MBK로 들어가는 통로까지 걸어와줘야 한다.
쇼핑몰을 가로지르며,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난 생각했다.
이건, 조금 "벌" 같다고.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상적인 삶을 살지 않는 여자"가 겪어야만 하는,
고난 같은 거라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 그 아이가 3kg에서 20kg이 되도록 업고 안고 하는 과정을 겪는다면,
그 아이와 아이의 아빠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주기 위해,
마트에서 혹은 시장에서 장을 보고 드는 장바구니의 무게를 내가 알고 있다면,
이 십킬로짜리 배낭의 무게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방콕이라는 엉뚱한 곳에서
짝을 짓고 아기를 찍어내는 인생의 진짜 훈련 대신,
배낭을 짊어지는 가짜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인 건가.
이쯤 되면 어른 말 틀린 게 없다고,
발 끝부터 머리 끝까지 지식과 지혜로 무장 중인 어느 노교수님이 그랬다.
세계 어는 나라를 가도 똑같은 게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계란맛.
나머지 하나는 택시 기사 불친절한 것.
그후, 나는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고 성공적으로 첵인을 마쳤다.
*시암쪽 많이 변했어요. 마분콩부터 칫롬까지 스카이워크로 다 연결돼 있고 시암센터뿐만 아니라 근처 쇼핑몰들 많이들 재정비했어요. 덕분에 시암스퀘어가 상대적으로 죽은 느낌이에요. 센트럴칫롬점 현재 레노베이션 중이고 랑수언로드 조용해요.
*그럼 뭐하나요. 환율과 물가상승으로 방콕 너무 비싸요. 비수기 프로모션가로 호텔 예약하고 노점과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밥 먹으면 아직도 쓸만해요. 문제는 쇼핑을 못해요. 쇼핑몰들 모두 그림의 떡.ㅠㅠ
*지난 3월 초에 100달러 환전하면 2920밧이었는데, 오늘 터미널 21 보라색 은행 환전소 갔더니 2836밧. 뜨악!!!
___________
2013.04.16 - 김해공항에서 수완나폼 근처 호텔을 거쳐 목적지인 첫날 숙소까지의 여정
최근 몇 년간 배낭을 메고 여행을 나간 적이 없다. 혼자하는 여행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국은 보통 둘만 돼도 택시를 이용하는 게 여러모로 합리적이기 때문에 배낭을 가져올 이유가 없었다.
대신, 여행일수에 따라 20인치 혹은 24인치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
이번엔 혼자다.
그래서 배낭을 쌌고 한국에서 신는 가장 편한 운동화를 여행동반자로 간택했다.
한반도 전쟁을 우려해 방콕으로 피신해 온 친구를 위해,
한국의 빅씨, 이마트에 들러 화장품, 고추장, 오뚜기 후추, 맥심 모카골드 등을 챙겼다.
배낭이 살짜쿵 널럴해 공간마다 커피믹스를 끼워 넣었더니,
나중엔 배낭이 빵빵해지고 돌덩이처럼 무거워져 혼자 힘으로 배낭을 옮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다행히 리무진 버스 정류장까지 엄마가 태워줬고 그 담부턴 기사님이 200바트 가량의 돈으로 나를 김해공항까지 실어주었다.
공항은 한산했다.
순식간에 내 차례가 되어 천근만근 배낭을 카운터 저울 위에 올려놓고 첵인 수속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놀라운 숫자.
10.00Kg
고작 십킬로.
불과 몇년 전이었다. 십수킬로짜리 배낭쯤 거뜬히 메고 공항에서 노숙도 불사했던 그때가.
제주항공을 타면 현지 시간 자정 즈음에 공항에 떨어진다.
겨우 몇시간 자겠다고 호텔씩이나 예약하는 것도 그때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수완나폼 공항 푸드코트에서 끼니로 쌀국수 한그릇 먹고, 간단한 간식거리로 볶음국수 한그릇 더 먹고, 한적한 의자를 찾아 침낭 꺼내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몇 시간 눈 좀 붙이고 주위가 시끄러워질 때쯤 일어나 카오산으로 가,
이미 태사랑 게스트하우스 리뷰를 통해 물색해 놓은,
혹은 한인업소 도미토리로 가면,
하룻밤 숙박비는 벌게 된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카오산 노점에서 우아하게 요거트에 과일 듬뿍 넣은 무슬리 한 그릇 먹고, 해장용 나이쏘이든 쫄깃탱탱한 쿤뎅 국수든 가서 한 그릇 먹고, 입가심으로 숯불토스트 한조각 하고, 취향에 따라 과일쉐이크 혹은 커피 한사발 노점에서 양질 우수한 놈으로 테이크아웃해서 숙소로 걸어오면 되겠다.
공항 노숙의 피곤함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면,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 잠을 청하든지 혹은 짜이디 혹은 반싸바이 마사지로 가서,
모닝 맛사지 한판 하면, 것도 좋겠다.
근데, 십킬로의 무게도 감당 못해 트롤리에 배낭을 올려놓고 끌고,
2층 4번 게이트 미팅 장소에서 마중 나온 친구와 푸지게 재회하고,
(왜 외국에서 보면 더 반갑지?-_-)
단 몇 시간 동안의 심신의 안락을 위해 호텔로 이동하는 지금의 나는...?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 못하는 건방증으로 치부하기엔,
증세가 조금 심각한 게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최근 몇년 동안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왠지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아니, 누가 뺏어간 것만 같다.
내 하소연을 들은 친구가 한마디 거든다.
"이젠 책가방도 무거워 못 든다"
사실일까.
책 넣을 가방도 없거니와 가방에 넣을 책도 없다.ㅠㅠ
그러니 책가방을 내가 들 수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 없다.
가만보니,
요 몇 년 간 내가 얻은 건 뱃살과 뻔뻔함이며,
잃은 건 근력과 지식이다.
친구와 숙소로 돌아와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배낭 정리였다.
일단, 친구를 위한 전리품은 전부 제거했다.
구석구석 들어간 커피믹스는 150개가 넘었다.
이젠 제법 가벼워졌겠거니 했는데,
다음날 체크아웃할 때 배낭 메 보고 또 한번 크게 좌절했다.
한국의 꽃샘추위 날씨에 맞춰 입고 온 옷을 배낭에 넣고,
가벼운 나시와 요가바지를 빼 입으니,
커피믹스 150개 받고 50개 다시 받은 무게로 배낭이 변신했다.
그 초사이언급 변신은 마치 나를 조롱하는 듯 했다.
약이 바짝 올랐다.
내가 가장 가까이 두고 매일 씻겨주고 먹여주고 했었는데,
내가 그 사람이 변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타인에게 무심하고 사물에게 무례한 나일지라도,
나에게만은 극세사 감수성과 예민한 촉각으로,
일거수일투족, 사사건건, 참견하고 개입하고 군림했었는데,
몰랐다.
나는 나를 몰랐다.
나는 더이상 배낭을 메지 못한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다.
그리고 큰 문제도 아니다.
"나는 소중하니까" 대명제는 변함없으니,
푼돈 정도는 아낌없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다.
애초 계획은 호텔 픽업 버스를 타고 다시 공항으로 가서,
저렴하고 빠른 공항철도를 타고 시내로 나올 계획이었는데,
그냥 택시를 타기로 한다.
**
복병.
순진하고 사람 좋지만 무식하고 섬세하지 못한 방콕의 택시 기사는,
나와 친구, 내 배낭, 그리고 이제는 친구의 짐이 되버린 커피믹스 150개를,
그냥 시내 한복판에 널부러 뜨려 놓았다.
내가 묵을 숙소는 내셔널스테디움역인데 그의 도착지는 시암역이었다.
전철 한코스 거리를 꼼짝없이 걸어야만 했다.
불행과 고난이 닥칠 때,
보통의 나같은 소시민이 취하는 자세란 일단 상황을 만만하게 보고 쿨하게 대처하기.
배낭을 사뿐히 짊어지고,
모든 시작은 한걸음부터라는 긍정적인 모토로,
앞만 보고 걷기.-_-
막상 닥치니 해냈다.
그러고보니,
나는 더이상 배낭을 못 메는 사람이 아니라,
배낭 메기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 차이는 크다.
나는 무능력자가 아니라 그냥 속물이었던 거다. 이상한 비약이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다.
배낭을 메고 걷는 길은 순례자의 그것처럼 고되고 성스러웠다.
시암역에서 내셔널스테디움역까지 가기 위해선,
시암파라곤을 시작으로 시암센터를 지나, 시암디스커버리를 지나,
MBK로 들어가는 통로까지 걸어와줘야 한다.
쇼핑몰을 가로지르며,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난 생각했다.
이건, 조금 "벌" 같다고.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상적인 삶을 살지 않는 여자"가 겪어야만 하는,
고난 같은 거라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 그 아이가 3kg에서 20kg이 되도록 업고 안고 하는 과정을 겪는다면,
그 아이와 아이의 아빠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주기 위해,
마트에서 혹은 시장에서 장을 보고 드는 장바구니의 무게를 내가 알고 있다면,
이 십킬로짜리 배낭의 무게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방콕이라는 엉뚱한 곳에서
짝을 짓고 아기를 찍어내는 인생의 진짜 훈련 대신,
배낭을 짊어지는 가짜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인 건가.
이쯤 되면 어른 말 틀린 게 없다고,
발 끝부터 머리 끝까지 지식과 지혜로 무장 중인 어느 노교수님이 그랬다.
세계 어는 나라를 가도 똑같은 게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계란맛.
나머지 하나는 택시 기사 불친절한 것.
그후, 나는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고 성공적으로 첵인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