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여행하는 법] 9. 타페와 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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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여행하는 법] 9. 타페와 짠순이

피비 21 3599
2006년 6월 15일



치앙마이 온 이래 최고로 재미있고 신나는 날이었다.
동거녀와 나는 최초로 깟쑤언깨우를 벗어나 타페로 향했다.
내일 빠이로 떠나므로 더이상 타페를 미룰 수 없었다.



하루 50밧을 쓰는 동거녀에겐 쏭태우비 20밧은 큰 돈이었다.
그것은 어느새 그녀에게 물들어버린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동거녀의 계산은 이러했다.
10밧은 천원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모든 것들이 얼추 다 맞아떨어진다.



돼지고기 꼬치 5밧. 오백원.
길거리 덮밥 20밧. 이천원.
과일 쉐이크 20밧. 이천원.
영화관람료 70밧. 칠천원.
마사지 100밧. 만원.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도 하루 오천원 밖에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50밧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그녀.



그녀는 깟쑤언깨우에서 할일 없이 배회하는 도중에도
항상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반성한다.
지금 일을 하고 있으면 누릴 소득에 대한 손실을 아까워한다.
한참 진행 중인 적금을 끝까지 붓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



뉴욕에서도 돈을 벌어 돌아온 생활력 강한 그녀.



배워야 한다...



동거녀 전용의 지도를 펼쳐 들고 우리는 타페로 향했다. 
치앙마이 알짜배기 정보가 담겨 있는 그 지도는...
그녀의 보물 제 2호였다.



치앙마이 시내를 두달 동안 샅샅이 돌아다니면서 발로 뛰며 만든 지도.
기존의 지도 위에 그녀가 꼼꼼히 기록해 놓은 것은 대부분,
가장 ‘싼’ 가게 표시였다.



가장 싼 마사지 숍, 가장 싼 PC방, 가장 싼 생필품 가게 등...



그녀는 진정한 짠순이였다.



20분 후에, 우리는 드디어 타페문에 도착했다.
타페문은 적어도 우리나라 독립문보단 분위기가 있었다.
그 사이로 통과도 가능하다.



타페문을 지나면 바로 스타벅스가 보이고
스타벅스를 왼쪽으로 끼고 쭉 뻗어있는 그 거리가 여행자들의 타페거리이다.



덥다. 무지...
돈을 아끼려면 역시 불편함이 잇따른다.



치앙마이 마사지 샵도 거의 120밧이 대세다.
하지만 동거녀의 지도위에는 분명히 백밧 마사지샵이 표시되어 있다.
그녀는 조금 헤매는 한이 있더라도 그곳을 찾아갈 기세다.
 


역시 배워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있었다.
그것도 두 가게나 나란히.



종업원의 인도에 따라 우리는 마사지 실로 향했다.
중간에 호스 물로 발을 씻겨 주는 시스템.
수건으로 닦아주는 것보다 훨씬 더 상쾌하다.



마사지 다음 코스는 중고책방이다.



역시 동거녀 지도를 보고 이동한 그곳.
나는 빠이에서 읽을 책이 필요했고 그녀 역시 영문 소설을 원했다.
책 먼지 냄새 맡으며 오랫동안 책을 골랐다.



이제 다시 우리가 갈 곳은 깟쑤언깨우.
목, 금, 토, 3일 동안 쇼핑몰 앞에 야시장이 선다.
미친 듯이 구경했다.



야시장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또 한번 발마사지를 받기도 했다.
30분에 60밧.



마사지사들은 죄다 사람 좋게 생긴 아줌마들인데,
동거녀의 마사지사만 뭔가 특별했다.
짧은 커트 머리, 화장기 없는 하얀 얼굴, 지적인 안경, 단추를 느슨하게 푼 하얀 셔츠, 그리고 결정적으로 검정색 정장 바지.
누가 봐도 레즈비언이었다.



그럴 리 없다고 말하는 동거녀.
결국 확인사살을 한다.



"Do you have a kid?"



매력적인 미소로 우리의 넋을 빼놓는 레즈비언.
옆에서 나의 마사지사가 웃으며 거든다.



“No, she likes woman"
 


21살의 레즈비언, 그녀는 현재 여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단다.



하지만 동거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내가 옆에서 말린다.



“그러다 치앙마이 지역 신문에 난다...”



우리는 그녀들에게 목에서 가슴까지 이어지는 마사지를 한 번 더 받는다. 



야시장에서 쏨땀과 찰밥으로 저녁을 먹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
보람 찬 하루였다.
동거녀 역시 간만의 외출과 지출로 기분이 완전 좋아진 상태이다.



가계부를 정리하는데 자꾸만 몇 십밧이 빈다.
내가 끙끙대자 내 것을 힐끗 보던 동거녀, 바로 돈의 행방을 찾아낸다.
과연...



배워야 한다.



“언니는 가계부 돈 빈 적 없어?”



나의 우문에 그녀는 나의 가계부 앞에 큼직하게 새겨 넣을 주옥의 문장을 하나 남긴다.



“난... 50사탕까지 맞아야 돼.”



 
----------

 


짠순이 그녀의 보물 제 1호는 손바닥만한 검정색 수첩.
대단한 비밀인양 내게 살짝 보여준 수첩에는 과연,
놀랄 만한 것이 있었다.



침대부터 TV, 냉장고, 세탁기에 이르는 혼수품과
냄비, 그릇, 접시, 수저 등의 주방용품,
샴푸, 비누, 치약 등의 욕실용품,
이불, 수건, 화장지 등의 생활용품 등



수개의 카테고리 밑에 나열된 물건들 가격이
깟쑤언깨우, 탑스, 야시장, 로컬시장, 타페 슈퍼 등에서 
각각 얼마인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깨알 같은 글씨로.



그녀는 진.정.한. 짠순이었다.


21 Comments
솜누스 2006.07.23 01:54  
  ㅎㅎㅎㅎ......^^; ........인정합니다
정말가냐 2006.07.23 14:27  
  10밧은 천원이라는 이상한 계산법이 이상하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솜땀처럼 시원짭잘한 글 잘 읽었습니다.
mjk 2006.07.23 15:12  
  you are making me crazy 피비
but I really love your 오소독소한 글 ㅋㅋㅋ
하늘향 2006.07.24 00:36  
  피비님...혹시 6월 12일 오후 10시정도에 미소네서 사모님과 맥주 드시던 두분의 여성분들중 한분이 아니신지?
피비 2006.07.24 01:40  
  mjk님~ㅠㅠ
이래저래 치앙마이 불평해댔지만 난 언니때메 너무 잼있고 좋았어.
캐나다에서 외로움, 호출해~ 갈 지도.--;;;;
피비 2006.07.24 01:49  
  하늘향님~ 미소네 사모님 뵈러 매일밤 갔긴 한데... 맥주 마신 적은 없구염. 컵라면과 야쿠르트, 과자, 등 여러가지 먹었다고 가계부 뒤지니 나오네요.--;
석하 2006.07.24 04:22  
  잘 읽었습니다....일편부터 보려니 시간이 ..

필리핀 2006.07.24 11:13  
  헐~ 내 짐작이 맞았네요.
mjk님, 잘 지내고 계신가여?
끄라비에서는 쏨땀과 얌운센 막 쏘시더니...
짠순이였군여. [[으힛]][[으힛]][[으힛]]
근데 치앙마이에서 신혼살림 차릴 생각이에여?
웬 혼수품 목록???[[므흣]][[므흣]][[므흣]]
아, 퐁은 함 만나봤나여???
항상 일탈을 꿈꾸다 2006.07.24 13:17  
  그렇게 많은 시간을 타국에서 보내도 되는 님들이 너무 부럽습니다.  7박 휴가 일정을 잡고서 정말 뛸듯이 기쁜 나인데...
하늘향 2006.07.24 20:04  
  헛..제가 잘못 알았나보네요. 죄송..그날밤  친절하게 주유소 위치 알려주신분들인줄 알고...^^
피비 2006.07.24 23:58  
  핫. 하늘향님~ 그때... 밤에 오토바이 몰고 오셔서 주유소 위치 물어보신 분 아닌가요? 제가 지도 보여드렸잖아요. 그닥 친절하게 알려드린 거 같진 않지만 저도 옆에서 한몫 거들긴 했어염.ㅋㅋㅋ...

여행은 무사히 잘 하셨는지요? 제가 그때... "빠이에서 만나면 오토바이 태워주세요~" 그랬었는데.ㅋ
mjk 2006.07.25 06:32  
  ㅋㅋㅋ 필리핀님 원래 세계 어딜 가든 품목별로 가격 리스트 작성하는 게 취미랍니다
반갑네요~ 여행중이세요?
퐁은 이멜 보냈는데 나중에서야 답장 왔어요~

필리핀 2006.07.25 11:11  
  mjk님 방가방가~~~
6월에 보름 동안 벳남 다녀왔는데,
완죤 삘 받아서 8월에 다시 1달 갑니다. ^^
아마 도중에 태국에 들릴지도...
치앙마이에서 생활 잘 하시고
12월에 무꼬 쑤린에서 만나여~~~~
까^미 2006.07.25 11:22  
  치앙마이계시면 정보줌주세여..궁금한게 넘많네여 혼자 감춰놓구 보지마시구여 싼정보 등등..매우필요합니다 .저희카페도 함놀러오시구여.다음카페에 콘사이치앙마이 입니다.나중에 이주하실분들이 궁금한자료가 거기 다있을거라 생각하며 정보줌 주세여 ..살아있는정보여/
kirk69 2006.07.27 12:56  
  예전에 깐자에서 만난 피비씨가 맞는지 모르겠네요
저 기억해요? 김상...
지금 치앙마이에 있고 잠시후에 빠이로 갑니다.
혹 아직 빠이에 있다면 간만에 함 볼까요?
메일 주세요
<a href=mailto:kirk69@gmail.com>kirk69@gmail.com</a>
피비 2006.07.30 03:33  
  헉... 영, 영*오빠!!!!!!!! 대한민국 1%!!!!!!!
그 담은... 쪽지로 할게욤.--;
아리잠 2006.08.08 17:32  
  지도가....탐나는군요 =_=
못된바보 2006.08.14 03:50  
  대한민국 1% !! 그 남자를 저는 꽤 여러번 뵈었는데,, 행운였을까나요~?
피비 2006.08.14 16:48  
  못된바보님~ 꽤 여러번 뵈었다면 행운이었을거에요.
근데 매일 뵙게 된다면... 그것 역시 행운일까요?ㅋ 
김성찬 2006.08.17 11:00  
  부러운 여행을 하는군요...
너만좋아해 2015.09.01 16:35  
타페에서 일요시장 간 생각이 나네요~
전 여행가면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져요~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왜 이렇게 물쓰듯이 써댔지 ㅠ
이러면서 자책만 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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