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뇽이의 태국-라오스 여행기(17)
- 씨싸왕 G.H. -
2018년 1월27일(토). 내가 묵고 있는 씨싸왕 게스트하우스(Sisavang G.H.)는 가족이 운영하는 숙소로 다른 숙소들도 많이 모여 있는 루앙프라방 거리(Thanon Luang Prabang)의 중앙에 있어서 위치가 너무 좋다. 또한 프렌즈 라오스에서 소개하고 있는 숙소이기도 하다.
청소 상태도 아주 양호하다. 방값은 선풍기가 8만낍이다. 루앙프라방에서도 그랬지만 겨울철에 에어컨은 별로 필요가 없다. 여기도 선풍기라고 하면 에어컨 리모콘을 안 준다.
열쇠를 잃어버리면 하루 방값의 거의 2배를 변상해야 한다. 나는 왜 이래야 하는지 이해가 안되긴 하지만 어쨌든 규정은 그렇다. 그 외에 와이파이가 너무 느린 것이 단점이다.
다른 게스트하우스의 경우 1층에서 케잌을 팔기도 했다. 가격은 20만낍. 우리나라 돈으로 28,000원. 다른 물가와 비교하면 상당히 비싸다. 혹시 누구한테 선물할 일이 있다면 케잌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어렸을 때 내가 케잌을 못 먹어봤던 기억도 난다. 대학생 때 처음 먹었나?
- 아침풍경 -
아침 6시40분 기상. 간만에 아주 잘 잤다. 게스트하우스 복도에서 보면 예전에 활주로로 사용되었던 공터가 보인다.
밖으로 나오니 어떤 아저씨가 런닝만 입고 아침부터 세차를 하고 있었다. 라오스에 따로 세차장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예전에 우리가 살던 모습하고 비슷하다.
스님들의 아침공양 행렬. 루앙프라방에서와 같은 장관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자연스럽다.
아침은 아리야 누들(Aliya Noodle)에서 랍(Laab)을 먹고 싶어서 아침부터 헤매고 다녔다. 그런데 찾지 못했다. 이유는 가이드북에 나온 지도가 잘못됐기 때문. 그렇게 아침부터 기운을 빼고 식사는 그냥 아무데서나 볶음밥으로 했다.
- 왓 깡 -
아침식사 후에는 평소와 같이 사원으로 갔다. 방비엥은 마을 규모가 작아 원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아 보이니 변변한 사원도 없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일단 도시 중심에 있는 왓 깡(Wat Kang)부터 들렀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와불상이 동남아에서는 흔한 것 같다. 우리는 부처님의 누워 계신 모습을 경건하지 못하다고 스스로 금기시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가 대법전 같았는데 잠겨 있어서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사원에서 나와 루앙프라방 거리를 따라 북쪽으로 걸었다. 날씨가 꾸물꾸물해서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 왓 탓 -
이번에는 방비엥 다운타운의 북쪽 끝에 있는 왓 탓(Wat that)으로 갔다.
대법전 안에도 들어갈 수 있었는데, 불상 3개가 소박하게 모셔져 있었다.
자료가 없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구경하지만 불상의 모습 자체는 참 재미있다. 지금 이것은 손오공같기도 하고 뭔지 모르겠다.
- 방비엥 이모저모 -
왓 탓에서 나와서 강변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여기는 숙소도 많고 바와 레스토랑도 여기저기에 있는데 전체적인 모습이 참 예쁘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대나무 다리를 만났다. 이건 건기에만 운영한다고 한다. 그럼 우기에는 철거를 하나 아니면 떠내려가도록 내버려두나?
강 건너편에는 방갈로가 죽 늘어서있고, 뒤에는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가운데 강물 위에서는 뱃놀이가 한창이다.
꾸물거리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산이야 당연히 없었는데, 건기에 비가 내려봐야 얼마나 내리겠냐 하는 마음에 그냥 맞고 다닌다. 젊은 아줌마가 장사를 나가는 모양이다. 리어커의 무게에서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반면 이들에 비해 형편이 좋은 우리 민족은 도우미가 없으면 노래가 안 나오는 모양이다.
태국에 도시마다 T.A.T(Tourism Authority of Thailand)가 있듯이 방비엥에도 여행정보센터가 있었다. 다만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 있다. 공무원들도 사람이니 쉬어가며 일해야 되겠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점심은 인도음식점에서 먹어보기로 했다. 여기는 루앙프라방 거리에 있는 나짐(Nazim) 레스토랑.
이번 여행에서 꼭 경험하고 싶었던 음식은 바로 인도카레이다. 우리가 흔히 카레라고 먹는 것은 일본카레라고 한다. 인도에서 온 친구 말로는 진짜 인도 카레는 무척 맵다고 했다. 나보고 인도카레를 먹으면 눈물을 마구 흘릴거라고 했었다. 여기서도 나한테 어떻게 해줄까? 라고 묻는데, 맵게 해달라는 말은 무서워서 못했다. 그냥 보통으로 해 주세요...
점심을 먹고 나서 픽업 시간이 되어 숙소 앞에서 기다렸다. 차... 정말... 안 오네... 처음에는 여유를 갖고 담배도 피워 가며 차분히 기다렸는데, 30분이 지나도 안 오니까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표를 구입했던 게스트하우스에 내 사정을 말했더니 여사장님이 친절하게 전화해서 알아봐줬고 곧 오니까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기를 한시간... 여사장님이 길 건너 여행사 앞에 가서 기다리라고 다시 안내해 준다. 여사장은 간만에 좋은 분이었다. 결국 한시간 반이 지나서 픽업뚝뚝이 왔다. 정말 한국 같았으면 내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이 친구가 나만 깜빡했는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일단 그 시간에도 여기저기를 돌면서 사람들을 태웠다. 내가 사람들에게 나 여기서 한시간 넘게 기다렸다고 했더니 자기들도 그렇대. 그래도 나만큼 화가 나 있지 않은 것을 보니 한국 사람들이 성질이 급하긴 한가 보다. 방비엥 터미널에 도착.
VIP버스가 이미 매진이라 이번에는 미니밴이다. 나는 밴과 봉고의 차이를 모르겠는데 내가 보기엔 봉고차였다. 이번에는 내 옆에 한국에서 온 여학생 두명이 앉았다. 엊그제 루앙프라방에서 여기 올 때는 옆에 서양 여자애가 앉았었는데 내가 이 지지배 때문에 정신적으로 얼마나 피곤했는지 모른다.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하던지... 그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다. 처음에 봉고차가 출발할 때는 대화도 나누고, 나중에는 좀 자기도 하고. 출발 2시간 후에 휴게소에 잠깐 들렀다.
휴게소에 들르는 가장 큰 이유는 화장실 때문. 밖에서는 고기도 구워 파는데 배가 고프다면 한번쯤 시도해 볼만 하다.
용변보고 간식을 먹었는데도 출발을 안 하니까 이렇게 앉아 경치를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좀 더 달려서 출발 4시간만인 저녁 6시가 좀 넘은 시각에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사족
1) 방비엥 씨싸왕 게스트하우스의 프론트에 가면 젊은 녀석이 앉아있는데, 나를 보더니 초면에 맛사지? 맛사지? 이러더니 나중에는 붐붐도 권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이러는 경우를 처음 본다. 하여간 라오스 사람들은 늙으나 젊으나 돈만 밝힌다.
2) 픽업차를 나와 함께 기다리던 대학생 커플과 이야기를 나눴다. 참 좋은 때다... 나는 딸만 둘을 두었는데, 나중에 애인이 생기면 꼭 둘이서 해외여행을 하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여학생 말이 자기 아빠가 알면 큰일난다고 했다. 나도 그 마음을 알지... 딸 자식을 뒀는데...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다른 것이 있어서 그렇다.
3)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이렇게 한 20년 가까이 살아보니 인생살이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위기대처능력]이다. 남들은 위기관리나 극복을 말하던데, 내가 볼 때는 대처만 제대로 해도 좋다. 근데 문제는 학교에서 이런 것을 가르쳐주진 않는다는 거다. 그리고 분명히 사람마다 차이가 확연한데도 평소 생활에서는 이게 나타나질 않는다는 거다.
4) 여행을 가보면 이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왜냐하면 아무리 여기서 준비를 잘 해가지고 간다고 해도 막상 현지에 가면 돌발상황이 일어나거든. 그럴 때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저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게 순결보다는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