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2 (카오산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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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2 (카오산로드)

아랑다리 27 5865
오늘은 개인적인 얘기가 많아서 올리기 좀 민망하네요. 여튼 두번째 날입니다. 잘 안보이시는 분들은 블로그 링크로 봐주세요.

그나저나 내일 빠이 갈까요, 치앙마이에 있을까요? 흠.

http://lkfar.tistory.co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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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잠을 좀 설쳤다. 몸이 바로 적응한 줄 알았더니 아닌가보다. 2시간이지만 시차의 차이를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방에 와이파이가 터진다는 것도 숙면에 절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7시쯤 일어나서 간단히 세수를 한다. 뭐 여행 와서 제대로 세수할거 있나. 그냥 물만 살짝 끼얹는다. 여자친구가 로션과 선크림 등등을 챙겨줬지만 이거 쓸일이 있을까. 넣을때는 나도 이번에는 제대로 바르고 다녀봐야지, 라는 다짐을 했었지만 역시 현장에 도착하니 그 생각은 마음 깊숙한 금고에 들어간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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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조식이 유명하다는 얘기를 들은듯 해서 주린 배를 움켜지고 1층으로 내려간다. 예전에 꼬창에서 머물렀던 리조트에 비하면 택도 없을 정도지만 이정도면 아주 훌륭해보인다. (꼬창은 비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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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인석으로 되어 있지 않은지라 자리가 없다. 모두 한명씩 앉아서 먹고 있다. 여행에서의 첫번째 합석이 필요한 순간. 스윽 스캔해보니 혼자 먹고 있는 서양형님 하나와 누님 하나가 눈에 띈다.

바람피지 말라는 여친의 고함이 귀에 맴돌며 형님 책상으로 간다. 보고 있나 노여사! 의리를 지키는 이 멋진 모습을!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니 앉으라고 한다. 사실 앉지 말라고 하면 이상한거긴 하다. 4명 자리에 혼자 앉아있는거니.

빵을 토스트기에 넣고, 계란, 밥, 닭스프, 야채 샐러드 그리고 커피를 그릇에 담고 자리에 앉는다. 뒤늦게 토스트가 생각나서 후다닥 튕겨나가서 자리로 가지고 온다. 왠지 남자 둘이 먹는데 인사라도 해야 할거 같아서 용기 내서 말을 걸어본다.

"Good morning."
"Good morning."
"..."

이 아저씨 나한테 관심 없구나. 한국의 여자 여행자들은 그리 인기가 많다는 데 역시 동양 남자는 어디 내놔도 아무도 안데려간다. 여친의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었던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내가 좋아하고 여친이 갖다버리라고 그리 닥달하던 옆구리 터진 후드티를 입어서 그런가? 에이 모르겠다. 나도 귀찮은데 잘됐다.

음식은 사실 엄청 맛있다고는 못하겠다. 개인적으로는 여행 다닐때는 그 나라의 향이 깊이 스며있는 음식을 선호한다. 인도에서는 소가 핥고 지나간 반죽으로 만든 짜빠티를 즐겼었고 베트남에서도 길거리에서 파는 고수 듬뿍 들어간 쌀국수가 가장 맛있었다. 여기는 서양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뭔가 아메리칸틱하다. 근데 사실 서양인 중에 미국인은 없어보이고 다 북유럽 느낌이 나는 훈남 훈녀들이다. 그러니 말 걸고 팽 당했지...

어제 굶은 것을 만회하듯 개걸스럽게 먹는데 옆에 형님이 일어나더니 시리얼을 타온다. 헐. 시리얼을 놓치다니. 후딱 가서 나도 한그릇 타서 가지고 온다. 근데 한 숫갈 떠서 입에 넣으니 이미 배가 불러온다. 그래도 다 먹을 수 있다. 공짜 밥은 언제나 기회가 있을때 최대한 쑤셔 넣어야 한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좀 즐기다가 오늘 밤 숙소 예약이 안되어 있다는 것을 급 깨닫는다. (이걸 급 깨닫다니...) 아고다에 들어가서 이 숙소를 찾아보니 450바트로 나온다. 어제는 350바트였던거 같은데. 잘못 본건지 오른건지 모르겠다. 이왕 줄거면 커미션 떼고 그러느니 그냥 현금으로 주면서 네고도 할겸 프론트에 한번 물어본다.

"550 바트, 죽어도 못 깍아요."

뭐지? 조금 미안하지만 아고다를 보여주며 그러면 난 여기로 예약할 수 밖에 없다고 호소해본다. 그랬더니 거기는 뭐 안들어간게 있다며 원하면 그러라고 한다. 이거 진상 고객 되긴 싫지만 사실 눈앞에 이리 차이나면 어쩔 수 없는거 아니겠나.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그쪽 결제로 들어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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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결제를 하러 들어가니 수수료, 세금이 붙어서 528바트가 된다. 에잇, 그러면 그렇지. 근데 이틀 예약으로 해보니 하루에 400바트다. 아 그냥 어제 이틀 예약을 했어야 했다. 뭐 여기서 돌아다니면서 숙소를 찾을거라고 욕심을 부렸는지, 다 부질없다. 사실 여기 가격이 도미토리에 비해서 비싸긴 하지만 꽤나 괜찮다.

일단 생각을 좀 해보기로 하고 방으로 올라간다. 아 5층... 뭐 금방이다. 사실 배에 신호도 살살 와서 처리를 해야 해서 자리를 떠야 하기도 했다. 여행 다닐때 오전에 해우소에서 근심을 털어버리고 하루를 시작하면 얼마나 상쾌한지 다녀본 사람들은 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 이 세가지만 잘되면 여행은 행복하다.

거울을 보니 수염이 좀 자랐다. 이번 여행에서의 숨은 미션은 수염 기르기이다. 깔끔함을 유지해야 하는 서울에서는 한번도 수염을 제대로 길러본적이 없다. 사실 그리고 기르면 뭔가 '내시 수염' 처럼 안 이쁘게 자라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지니 한달을 한번 내비둬볼려고 한다. 차이기는 싫으니까 상황 봐서 한국 가기 전에는 당연히 정리를 해야겠지만.

밥 먹고 올라와서 좀 쉬다가 고민을 해본다. 오늘 하루를 여기 더 있을까, 카오산으로 갈서 잘까, 아님 근처 숙소를 좀 돌아볼까. 한동안 누워서 밍그적 거리다가 일단 12시 체크아웃 전에 근처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어제 들어왔던 골목 부터 한번 스윽 다녀본다. 어제는 으슥해서 조금 무서웠던 골목이 사실 낮에 보니 그냥 사람 사는 곳이다. 생각해보면 서울에도 이 정도의 으슥하고 무서운 곳은 많다. 오죽하면 지하철에서 여지들을 집까지 안내하는 공무원도 있을까 싶다. 그늘은 그래도 조금 시원한데 벗어나면 참 덥다.

좀 다녀보니 지도가 이제 완전히 이해가 된다. 삼센 큰 도로가 있고 그 가지로 삼센소이라고 해서 여러 도로가 나와있다. 그 중에 난 6번 길에 있는 숙소를 찾아간거다. 그러고보면 지번주소보다 길을 기반으로 하는 주소가 직관적이긴 하다. 아파트 단위로 움직이는 한국에서는 정말 이해하기 쉽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두개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한다. 지금 있는 숙소와는 다르게 바깥에 히피스러운 사람들이 앉아서 낮잠도 자고 책도 보고 차도 마시고 있다. 사실 이런 느낌을 원했었다. 두개가 붙어있는거 보니 일종의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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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 있는 3HOWw 호스텔을 먼저 들어가본다. 근데 이름이 이게 뭐지. 발음은 어찌 하는겨. 혼성 도미토리 가격을 물어보니 350바트란다. 오, 지금 있는 숙소에서 200바트가 세이브된다. 방은 지금 청소중이라 못 보고 옆에 Bewel 호스텔을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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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370바트다. 근데 뭔가 시설이 조금 더 아늑하다. 2층에는 서양 언니들이 범벡(?)에 기대 잠들어 있다. 20바트가 비싼만큼 값어치가 있는듯 하기도 하다. 근데 사실 오늘 저녁만 자고 내일 오전에 공항으로 가서 치앙마이로 떠나야 하는 입장인지라 뭐가 중요하나 싶다. 저녁에 테라스에서 맥주 한잔 먹기에는 좋아보인다.

두 군데 다 아고다 검색을 해보니 현장 구매가 가격이 동일하거나 더 싸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위기가 지금 있는 곳과는 다르게 현저하게 여행자 느낌이 난다. 그래, 옮기자. 방에 그냥 있지 않고 나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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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길 한복판에 커다란 이구아나와 마주친다. 무슨 길고양이도 아니고 길이구아나인가? 얘네도 음식물 쓰레기 파해쳐서 먹나? 건너편에 서양아저씨랑 동시에 카메라를 꺼내다가 눈이 마주치며 서로 살짝 웃어준다. 물론 대화는 하지 않고 눈인사를 나누며 그대로 헤어진다. 이정도 인연이면 전생에 소개팅 정도 한 사이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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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니 방을 청소하고 있으시다. 이런, 바로 나갈건데. 왠지 미안해져서 신발도 벗고 들어오고 침대에도 눕지 않는다. 서비스업을 하면서 느낀거지만 사람들은 돈을 내면 서비스 하는 사람들을 자기들이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 가치관에서 어쩔 수 없겠지만, 손님이 온게 고마워서 서비스를 제공해준거고, 서비스를 받은게 고마워서 가치를 지불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좋을텐데 말이다.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서비스를 받는 것도 분명 교육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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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짐을 싼다. 뭐 짐 싼다고 해봤자 슬리퍼를 신고 운동화를 꺼내는거 말고는 없다. 아 그리고 여친님이 하사하신 뿌리는 선크림을 얼굴에 분사해준다. 로션도 안발랐지만 뭐 괜찮겠지. 저 운동화는 언제 다시 세상의 빛을 볼려나. 둘 중 한군대에 짐을 맡기고 카오산로드로 향할 예정이다. 근데 어느쪽으로 가지? Bewel은 뭔가 서양 히피들의 위화감이 느껴지는 대신에 그럴만한 자유로움이 있고, 3HOWw는 둘 중에서는 조금 더 안전한 선택으로 보인다. 게다가 미세하지만 20바트가 싸기도 하다. 일단 그 앞에까지 간 다음에 결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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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생각해보니 게하에서 멍 때릴 것도 아니고 그냥 싼데 하자 싶어서 3HOWw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여긴 디파짓이 있어서 350+300 바트를 주고 가방을 맡긴다. 근데 서양분 가방이랑 비교하니 애기 가방 같다. 저런거 들고 어떻게 다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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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은 2시부터 가능하고 이곳에서 볼일은 더이상 없기에 카오산으로 슬슬 걸어가본다. 삼센 거리도 은근히 카페와 식당들이 많고 그 안에서 멍 때리는 여행객도 몇명 보인다. 화창한 햇살에 머리에 느껴지는 열기와 함께 알려준 길로 한발한발 내딛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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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엄청 핫한 여성분이 지나간다. 서양분들은 확실히 몸매를 들어내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나보다. 순간 태국 현지 남자, 서양 아저씨, 그리고 나까지 3명의 눈이 돌아간다. 여자가 지나간 다음에는 서로를 조금 의식하고 계면적어하며 돌아선다. 역시 남자는 어디든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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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거리의 첫 인상은 역시 10년전 영등포 굴다리가 떠오른다.지금 더울 때라 그런가? 사람들 얼굴에서는 뭔가 활기가 느껴지지 않고, 여행자들은 피곤해보인다. 인도에서 기운찬 현지인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솔직히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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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로드는 은근 찾기 쉽다. 그냥 쭉 가다 보면 나온다. 한 15분 걸었나? 카오산길이라는 이정표가 나오며 외국인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 여자친구가 예전에 일주일 머물며 그리 좋았다는 카오산 로드. 배낭여행객의 성소라는 그곳. 기대를 품고 한번 들어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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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냥 길이군. 양 옆에 각종 노점상들이 즐비하고 외국인 상대로 하는 식당들이 즐비하긴 한데, 솔직히 이곳만의 매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낮 10시에 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홍대의 화려한 밤거리를 생각하고 낮에 일요일 낮에 방문해보면 젊은이들이 전날 거리에 열심히 부친 전들만 가득한 것을 보는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론리플래닛에서 '카오산은 더 이상 lonely하지 않다.' 라고 쓰고 거의 다루지 않은 이유도 왠지 알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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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난 미션이 있다. 현지인들은 '뭐지?' 싶지만 여행자들은 '아 여행자군!' 하는 복장으로 변신하기. 일단 시세를 알고 분위기를 몸에 체득하기 위하여 가격을 물으며 거리를 두어번 왕복한다. 

"하우 머치?"
"350. 디스카운트? 250. 파이널 220."

난 아무말도 안했는데 자기가 알아서 할인을 해준다. 당황스럽다. 그럼에도 높은 가격부터 부르는건 할인한 가격으로 맞추기 위한 마케팅 전략임이 뻔하지만 일단 대략 시세를 알아본다. 

결국 가방 하나, 바지 하나, 그리고 티셔츠를 산다. 잘 깍아서 샀다고 생각했는데 다 합해보니 800 바트다. 숙소가 350 바트인걸 생각해보면 과한 지출이다. 물론 한달 동안 입을 옷이긴 하지만 이거 잘한건가 싶다. 나름 흥정 잘했다고 웃으며 돌아섰지만 파는 사람들에게는 국제적 호구가 된 것은 아닐까? 국제 미아는 벗어났지만 국제 호구는 피하기가 쉽지 않다.

'여행옷 mk1'에서 '여행옷 mk2'로 변신하고 싶은데 난 아이언맨이 아니기 때문에 길 한복판에서는 할 수가 없다. 헌데 공중 화장실이 없다. 고민하다 또 거리를 한바퀴 돌고 슬슬 더위를 먹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이 곳에서 점심을 먹고 싶지는 않다. 예전에 카투사 시절 미군들이 서울 오면 맨날 이태원만 가는걸 보면서 "거긴 서울이 아니야. 너희는 서울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닌거야."라고 하던 그 말이 지금 나를 향한다고 해도 다를 바가 없다. 노여사... 내 스타일을 알면서 강추하다니. 넌 나에게 똥을 줬어! (물론 성향 맞는 사람은 분명히 있을거고 적적인 개인 의견이다. 요즘은 말 조심해야지...)

결국 타협하여 화장실 있는 곳에서 음료 한잔 먹고 변신을 꾀하기로 한다. 아늑해 보이는 곳 아무 곳이나 들어간다. 바로 화장실로 직행하여 변신! 아 이제 좀 뭔가 여행자스럽다. (혼자만의 생각일 확률 82.3%) 머리만 좀 어떻게 하고 싶은데, 모자를 쓰긴 싫고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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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로 와서 내 사랑 망고 쉐이크를 주문한다. 50바트... 역시 여기는 어서 벗어나야 하나보다. 옷도 괜히 이쪽에서 샀나 싶기도 하다. 일단 자리를 잡고 글을 좀 쓰고, 론리플래닛을 펼쳐서 낮을 어디서 보낼까 고민해본다. 그래도 이따 저녁에 한번 돌아와서 카오산의 저녁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긴 하다. 노여사님이 그리 강추 했던데는 이유가 있겠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면 노여사 구박하는 재미도 생길테고.

일단 팟쑤멘 요새 쪽으로 가기로 마음 먹는다. 뭐하는데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이 12시 반, 도저히 카오산의 비싼 밥을 먹지는 못하겠고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 있으면 그냥 들어가봐야겠다. 어차피 내 여행 스타일이 관광은 아니고 발 닿는데로 가는 것이니...

팟쑤멘으로 향하면서 여행사마다 들려서 내일 공항으로 가는 차편을 구해본다. 150바트 정가에 모두 데려가길래 괜찮은 딜이어서 타기로 마음 먹었는데 문제는 숙소가 좀 떨어져서 올려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한곳에서 버림받은 나를 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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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 여성분과 대화를 나누는데 나보고 어디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싸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나도 모르게 "닉쿤"이라고 첨언도 한다. 뭔가 한국에 굉장히 호의적인듯, 표정이 환해진다. 자기 보스도 한국 사람이라고 15분 있다가 온단다. 그래서 난 그전에 도망가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한다. 

"말레이시아나 싱가폴 사람인줄 알았어요!"

심증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 난 역시 동남아삘이었어. 어쩐지 지나다니는 한국 사람들도 날 전혀 신경 안쓰더라. 그렇다고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신경 써주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건가. 

그까이것. 아랑곳하지 않고 가는 길에 끼니를 해결한다. 먼저 달구지(?)를 몰고 다니는 할아버지에게 현지인들이 하드를 사길래 꼽사리 껴서 10바트를 주고 사서 먹으면서 걷는다. 좀 걷다 보니 닭볶음밥을 파는 곳이 있길래 35바트를 주고 사 먹는다. 이거 은근히 맛있었다. 약 1200원인데 은근히 양도 많고 매콤한 것이 입맛에 딱이다. 공원에 도착해서는 연유 커피를 20바트에 팔길래 역시 아이스로 한잔 뽑아서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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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마음에 든다. 조용하고, 새의 지저김도 들리고, 그늘은 앞에 강 때문인지 시원하다. 근데 그러고 보면 산정호수랑 다른건 무엇인가 싶기도 하다. 확실히 여행은 장소의 변화가 아닌 마음가짐의 변화를 뜻한다. 이곳에서 해 떨어질때까지 커피 마시면서 책이나 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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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어떤 남성분도 나와 같이 한동안 멍하니 있다 간다. 저분은 어떤 사연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있으며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또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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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것은 살면서 처음으로 나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 받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세상 일이 늘 그렇듯 열심히 했지만 결과가 안좋은 일은 생길 수 밖에 없다. 하지난 지금까지는 나름 완전무결하다 생각했기에 이 경험은 나에게 꽤나 큰 충격이었다. 

이것도 어찌 보면 욕심이다. '미움 받을 용기'라는 말이 떠오른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겠다는 것은 진정한 과욕이다. 내 양심이 떳떳하다면 좀 더 당당해져도 되는 것 아닐까. 

조금 다르지만 최근에 실패를 경험한 친한 친구 하나가 나에게 해준 얘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두가지 선택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아왔던 길의 방향을 돌리거나, 오히려 그 벽을 깨고 한번 더 앞을 향해 가거나. 나는 어느 쪽일까?

친한 친구 중에 20대에 결혼하여 지금 애를 셋 키우고 있는 놈이 있다. 어릴때는 그런 평범한 모습보다는 뭔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내가 더 멋있다고 생각하였고 주변에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 자가 있다면 심지어 꿈을 가지라는 연설을 하며 감화시키려고 했다. 철 없는 짓이다. 어떤 길을 가냐가 중요하다기 보다 어떻게 가냐가 중요한데 말이다. 세상에 '평범'하게 사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뭔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내 자신에 대해 최대한 솔직해질 필요성을 느낀다. 먼저 나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나는 엘리트임을 자부하다가 사업에 실패한 30데 후반의 젊은이'이다. 
앞으로의 한달은 최대한 가감없이 솔직하게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행이고 싶다. 여기서부터 다시 한번 내 자신을 만들어나가보자.

앉아있는데 뭔가 눈물이 난다. 추하게시리. 에잇 너무 과하게 감상적이 된거 같다. 이정도는 아닌데. 뭐 여행을 눈물로 시작해서 웃음으로 끝낸다면 내가 원하던 여행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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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다시 책이나 볼까 했더니 코보가 먹통이다. 갑자기 쌩뚱맞게 얘는 왜 이러지. 여기서는 똥꼬를 찌를 바늘도 없단 말이다. 일단 발 닿는데로 한번 걸어가봐야겠다. 아직 2시반밖에 안되서 카오산의 밤을 겪어볼려면 4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그래도 이 공원, 뭔가 작은 깨달음을 나에게 선물해줬다는 느낌이다. 깝쿤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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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이 닿는데로 다녀본다. 강을 따라 간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다 보니 공장도 나오고 막다른 길도 나와서 뒤돌아도 나온다. 여긴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길을 잃을것 같진 않다.

가다가 여행사 창에 붙어 있는 문구 하나에 발이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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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모든건 마음 먹기 나름. 인생은 어차피 내가 만들어 가는것. 좋은 일이 있으면 즐거워하고 나쁜 일이 있으면 경험으로 삼고 더 앞으로 나가면 되겠지.

무작정 걷다 보니 익숙한 광경이 나온다. 흠... 아까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이군. 제주도에서도 한번 이런적 있는데 뭔가 내 안에 회귀본능이 있는걸까?

날씨도 장난 아니게 더운데 잘됐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침대 자리도 잡고 잠시 쉬다가 다시 나가는 것도 괜찮을거 같다. 이런 날씨에 낮에 돌아다니는거는 자살행위다. 이제 한달 여행에서 하루가 지난 것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숙소로 돌아와서 침대를 잡고 (2층이다. 2층 싫은데...) 가방에서 바늘을 꺼내 코보를 리셋시킨다. (당연히) 혼숙 도미토리라 이런저런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만 한국사람은 안보인다. 만나도 한국 사람 아닌척 해볼까나. 굳이 내가 먼저 얘기 안하면 날 한국 사람으로 알지도 않을듯 하다.

로비로 나와서 앉는다. 에어컨이 나와서 좀 살거 같다. 여기서 땀 좀 말리고(?) 낮잠을 좀 잘까 싶기도 하다. 지금 그냥 자기에는 너무 찝찝하고, 샤워는 자고로 저녁에만 하는거라 지금 할 수는 없다.

앉아서 내일 갈 치앙마이를 좀 찾아보는데 스탭들이 옆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나보고 좀 권하길래 괜찮다고 대답하고, 바로 후회했다. 생각해보니 오늘 점심을 닭볶음밥 하나만 먹었다. 어쩐지 배가 고프더라. 테이블에 초록색 과일이 있길래 뭐냐고 물어보니 망고란다. 먹어보니 좀 시큼하다. 이런 망고도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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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량해 보였나? 옆에 쿠키도 있다고 먹으라고 권하신다. 여기 매니저분 (혹은 사장님) 처음에는 좀 무뚝뚝해보였는데 굉장히 친절하시다. 권하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쿠키도 먹고 망고도 먹고 오렌지 주스도 먹으면서 배를 조금 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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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초반인데 몸이 좋지 않다. 커피도 너무 마신듯 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은거 같다. 일단 방에 들어가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들어가서 내 침대 자리로 올라간다. 잠은 오지 않고 누워서 인터넷도 하고 앞으로 일정을 어찌할까 고민해본다.

누가 댓글로 '방콕은 쏨땀이지' 라고 써놨다. 쏨땀이 뭐지? 그러고 보면 난 참 조사도 안하고 다닌다. 건강의 회복을 위해서 저녁은 좀 제대로 먹고 싶다. 카오산에 쏨땀 맛집을 검색하니 '쏨땀 욕크록'이라고 하나 나온다. 맛집 찾아가는건 내 스타일이 아니긴 한데 한번 저녁에 가봐야겠다. 그리고 카오산으로 가서 첫 맥주를 한잔 해볼까 한다.

발바닥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6년전에 인도에서 산 슬리퍼는 여행때마다 나와 함께 했는데 항상 내 발바닥에 상처를 가져왔다. 이제 바꿀때가 된건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만큼 뭔가 애정이 많이 가지만 이따 카오산에서 한번 봐야겠다. 머리도 걸리적 거리는데 이 기회에 평생 못해본 반삭도 해볼까 싶다. 어차피 잘 보일 사람도 없고!

나가기 전에 로비에서 노여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이 사람도 이번주에 경주로 혼자 여행을 간단다. 경주도 좋을거 같다. 이번 여행 끝나면 나도 경주나 한번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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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있는데 현지 여인분 하나가 옆에서 컴퓨터 하시는 서양오라버니에게 꾳을 전달해준다. 뭐지? 나는 순식간에 투명인간 처리되어 버렸다. 아 이 외모지상주의. 나도 10년 전에는 좀 날렸...었던 것 같은데. 여완얼인가보다.

그래 머리를 잘라야겠다. 갑자기 삘이 왔다. 스탭한테 물어보니 큰길 왼쪽에 100바트에 잘라주고 깔끔하다고 추천해준다. 마음 생겼을때 바로 가야 하는 법. 짐을 싸가지고 나간다.
27 Comments
니가먼데 2015.04.23 12:33  
먼저 정성에 박수를 보냅니다.
여행하며서 이렇게 정리해서 올리기도 쉽지 않을텐데... 부지런 하시네요.
31일 간의 여행이라 그런지 남기고 싶은 것들이 많음이 보입니다.
좋은 여행하세요...
아랑다리 2015.04.23 19:50  
혼자 다니니 누군가와 얘기하듯이 계속 쓰게 되네요. 지난번에 이렇게 여행한적 있어서 습관도 된거 같구요. 근데 늙었는지 갈수록 글이 많아져서 좀 걱정이긴 합니다.
꾸용 2015.04.23 14:42  
좋은 여행이고 부러운 여행입니다.... ㅋㅋ
너무 부러워서 ㅠㅠ 일단 초를 치자면...

국수드신 그 식당은 유명한 식당 맞습니다 한국인 많을때는 한국인들 바글바글하죠...ㅎ
뭐 그만큼 먹을만해서 그런듯하고 저도 자주 애용하는곳입니다....ㅎ


이래도 부러움이 사라지지 않는군요.....ㅋ


혼자만의 여행 충분히 잘 즐기시고 여행을 즐기다 즐기다 혼자 떠글고 다니시는 자신을 발견할때즈음이면 한시적 여행동행을 구해 다니는것도 추천 드립니다. 혹은 하루 정도 같이 놀 여행 동무라도.


마무리 잘하시고 매일 매일 후기를 기다리겠습니다 +_+
아랑다리 2015.04.23 19:51  
안그래도 그렇다고 하더군요. 어쩐지 예사 식당의 포스가 아니었습니다. 맛있었습니다. 동행은... 지금 제 포스다 현지인스러워서 아무도 같이 안다녀줄듯한... ㅜㅜ
꾸용 2015.04.24 01:23  
필요할때 찾으시면 생길겁니다 ㅎㅎㅎㅎㅎ
레몬커피 2015.04.23 15:04  
여행기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매일 읽어야겠어요~
아랑다리 2015.04.23 19:52  
와이파이 되는 곳에서는 매일 올리겠습니다. ^^
앙큼오시 2015.04.23 15:49  
한국인들 없을 시기긴하죠...ㅎㅎ
그나저나 중국인들은 거의 패키지로 오기에 왕궁이나 두싯지역등으로가면
보기싫어도 보게됩니다....ㅈㅈ
아랑다리 2015.04.23 19:52  
아 제가 그쪽을 안가서 못 보는건가요. 지금 빠이인데 여기서도 잘 안보이네요.
앙큼오시 2015.04.23 20:32  
중국무슨 명절과 송크란까지해서 성수기엿나보네요.
제가 오기전인 저번주정도까진 많았거든요
전남찐빵이 2015.04.23 17:04  
6월 1일날 세미나 땜시 방콕과 파타야 가는데

자유여행이 아니라 카오산 거리를 갈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한번 꼭 가서 밤문화를 경험해 보고 싶은데~~~~~
아랑다리 2015.04.23 19:53  
뭐 한번 이탈하셔서 한번 가보세요. 한번 가기에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필리핀 2015.04.23 18:02  
오호~ ㄴ자 헤어스탈...

무척 궁금하네요... ^^
아랑다리 2015.04.23 19:53  
아 이 머리... 괜히 잘랐나 싶기도 하고... 현지인들 승려 머리랑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ㅜㅜ
문댕댕댕 2015.04.24 00:40  
잘 읽었습니다
다음 여행기도 기대하겠습니다!
디아맨 2015.04.24 10:24  
핫한 서양여성분 사진이.. 보고싶은대.. 안되갯죠?^^;;
글을 잘 쓰시네요.ㅎ
방코크 2015.05.12 21:05  
재밌게 잘 읽었어요. 다다음주에 떠나는데 벌써 방콕에 와있는 기분이에요 ㅎㅎ
행복리더맘 2015.05.21 17:11  
정말 자세한 후기라서 많이 도움이 됩니다. 카오산로드도 꼭 가보고 싶습니다. 많이 도움이 되네요.
하루방방 2015.05.22 14:04  
재밌게 잘있었습니다 ~! 곧 가는 방콕에서 자세히 잘써줘서 많이 도움될거 같아요 !! 벌써부터 가고 싶은 마음에 마음이 선덕선덕
싸이다2 2015.07.06 23:36  
글잘 읽었어요~ 카오산 간 기분이 들어요~ 저도 빨리 가고싶네요!!
배낭여행공부하기 2015.08.08 12:10  
혼자다니는 여행만이 줄 수 있는 나 자신과의 대화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부럽고 멋지네요. 일정에 연연하지 말고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이동하는 여행이 진정한 배낭여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지금 여행일정 짠다고 여러가지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랑다리님 글을 읽으니 괜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
어판지 2015.08.12 00:19  
재밋게 잘봤어요..
김태리 2015.08.12 17:01  
재밌게 잘 봤습니다 :)
너만좋아해 2015.08.28 14:28  
읽으면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좋네요~^^
배크니 2016.03.07 15:32  
아재밌다....정말 리얼리티하네요ㅎㅎ
말숭이 2016.05.07 14:55  
여행기 진짜 너무 재밋네요 저도 한번 가면서 작성해봐야겠다는 욕구가 아주 그냥 넘치네요. !
서한량 2016.10.12 06:32  
여행하면서 이렇게 포스팅하기 쉽지 않으셨을텐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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