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진도 7.0의 지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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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진도 7.0의 지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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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정말로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이라고 온 몸으로 느낀 적이 몇 번이 있었는데 이 지진도 그 중에 하나였습니다. 한밤중에 발생한 이 지진을 겪을 당시에 14층에 살고 있었는데 잠결에 방이 움직인다는 느낌에 깼을 때만 해도 잘 모르고 있었지만 잠시 후에 여진만으로도 건물 전체가 휘청거리는 아찔한 경험을 했었습니다. 무섭더군요. 급하게 뛰어내려와 그 다음날 저녁까지도 집에 못들어갈 정도로 많이 놀랐었습니다. 단층건물이였다면 그렇게까지 무섭진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에 고층 아파트를 선택했던 걸 후회했었지요. 


진도 7.0이면 매우 강력한 지진이지만 진앙지에서 거리가 있어 제가 입은 물질적인 피해는 없었습니다만 심리적으로는 몇 년 동안은 가벼운 트라우마 증상을 겪었습니다. 예를 들어 도로에서 대형트럭이 지나가며 미세하게 흔들림이 느껴질 때마다 심장이 굳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었지요. 그리고 지금도 높은 곳은 피합니다. 호텔에 숙박할 때는 저층에 머물고 전망대나 루프탑같이 높은 곳은 아예 올라가 볼 생각 자체를 안합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진땀이 나거든요. 


근래에 일본의 수도권 지역에서는 연속적으로 지진이 발생한다더군요. 일본은 워낙 지진이 잦다보니 전국적으로 보면 약한 지진이라도 매일 한두 건씩은 발생하지만 근래의 추이를 보면 정말 땅 밑이 꿈틀거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일본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대개 단층충돌이 원인으로 말해져왔는데 이번 지진들은 화산활동으로 인한 가능성이 크다는 지질학자들의 의견이 많더군요. 하지만 아무리 원인 분석과 경고를 해보더라도 지진이나 화산은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지요.) 


일본인들이 두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지진이라고 하던데 지진을 경험해 본 저는 그 두려움이 이해되고 근래의 잦은 지진으로 인해 공포감을 느끼고 있을 일본인들에게 동정심마저 느낍니다. 다만 이들의 공포심이 과거 관동대지진 때처럼 한국인들을 모함하고 학살하는 형태로 번져나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후지산 분화를 포함하여 소위 '빅원(big one)'에 대한 경고가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 이런 자연재해가 발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기원하지만 만일 발생한다면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처럼 한국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 보내주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모금활동은 이뤄지겠지만 과거처럼 많은 금액이 모일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때보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더 커졌으니까 더 많이 모금되어야 정상일테지만 그 사이에 수출규제나 혐한세력의 확대 등으로 국민감정이 상당히 나빠졌고 특히 당시에 일본언론이 한 짓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당시에 일본의 언론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보낸 성금 규모에 순위를 매겨 발표했는데 한국에서 보낸 성금을 쪼개서 발표하여 세계 5위 규모의 지원이 24위인 것처럼 보여지게 했고 그마저도 20위까지만 발표하며 한국은 아예 표시조차 되지 않았었지요. 그로 인해 아직도 많은 일본인들은 한국은 전혀 도와주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으며 지금도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그 기사가 한국을 비난하는 근거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도와 준 걸 알아달라고 공치사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일본은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선동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예쁘고 밉고를 떠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못 본 척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지만 도움을 준 게 조작(?)되어 도리어 비난을 받게 되는 황당한 꼴은 당하고 싶지 않은 것도 솔직한 마음입니다. 


요즘은 많이 바빠져서 남의 나라 화산이나 지진을 걱정할 정도로 한가한 것도 아닌데 일본 기상청에서 발표한 지난 한달간의 지진횟수를 보다보니 문득 옛날 일이 생각나서 써봤습니다.


(지진을 경험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사실 저희 집에서 산 아래까지 차로 2시간 남짓한 거리에 화산이 하나 있습니다. 1980년에는 산 정상의 1/3이 날아가고 해발고도가 400m나 낮아지는 큰 폭발이 있었던 산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몇 차례 화산활동이 더 있었지만 다시 분화한다고 하더라도 제가 받을 피해는 화산재와 냄새 때문에 한동안 창문을 못 열고 야외활동을 못하는 정도일 거라고 생각되어 이 화산에 대한 불안감은 전혀 없습니다. 음... 써놓고 보니 좀 이상한 동네에 사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5 Comments
Satprem 2022.03.01 12:49  
1980년 큰 폭발이라면, 세인트 헬렌스인 것 같군요.
이런이름 2022.03.02 03:29  
[@Satprem] 네, 세인트 헬렌스(Mount St. Helens)가 맞아요.
찾아보니 지진은 1999년에 발생했었네요.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9/10/17/1999101770025.html?outputType=amp
국보사랑 2022.03.03 18:12  
저도 일본에서 지진경험이 있는데 무섭고 두렵죠
이런이름 2022.03.04 12:24  
[@국보사랑] 네. 지진, 무서워요. 배를 타보면 땅에 발을 딛고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지 느끼게 되고 지진을 겪어 보면 움직임없는 지반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죠.
이런이름 2022.03.06 04:29  
군함, 원양어선, 화물선 등을 타고 장기간 바다에서 생활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오랫만에 배에서 내리면 땅이 출렁거리는 듯한 멀미 증상이 나타납니다. 땅멀미라고 부르더군요.
평형감각과 시각의 부조화가 이유라는데 저는 몇 걸음 걷는 동안 잠시 어지럽다가 말았는데 땅이 출렁이는 느낌이 지진과 약간 비슷했던 거 같습니다. 지진은 어지러움이 동반되지 않고 좌우로 흔들렸고 땅멀미는 상하로 움직인다고 느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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