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서 만난 미소천사
얼마전 오롯이 여행만을 목적으로는 십몇년만에 대만을 가게 됩니다
여행자의 의무감과 처음 가보는 대만의 낯설음이 짬뽕되면서 정말 열심히 돌아다니지만 역시 저질 체력인지라 완전히 방전... 첫날의 마지막 코스이던 야시장을 가기위해서는 쉬었다 가야겠다 싶어 타이페이의 MRT 스린역 근처의 스타벅스에 들어갑니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다 슬쩍보니 커피 만드는 여자 직원분이 웃으면서 컵에다 네임팬으로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습니다
그냥 주문 받은 내용 컵에다 표시하는겠거니 싶어 일단은 여자분이 미소로 건네주는 커피를 받아들고 2층으로 올라갑니다
한시간 정도 쉬었지 싶습니다
마지막 목적지인 야시장으로 가기위해 짐을 챙기다가 문득 아까 여자분이 컵에다 뭘 썼을까 궁금해집니다
뭘 썼길래 그렇게 즐겁게 웃었을까?
문득 예전에 미국의 커피숍의 직원이 동양인이 주문한 컵에다 '눈이 째진' 뭐 이런식의 글을 적어놨다는 기사를 본것이 기억이 납니다
혹시 '눈 째진 뚱땡이' 뭐 이렇게 적어놓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까 웃던 것이 괜히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확인을 위해 컵 잡을 때 뜨겁지 말라고 씌워주는 종이를 내려보니 영어로 쓴 문장이 하나 바로 보입니다.
'Welcome to Taiwan Have a nice trip ♡'
처음에는 아하 대만에 있는 스타벅스는 여행객들한테는 이런 글이 프린트되어 있는 컵에다 주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거말고는 아무리 둘러봐도 더 이상 적혀있는 게 없습니다
그러고는 곧 깨닫습니다
아까 그 여자분이 적은 게 이거였구나...
순간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집니다
정말로 진지하게 나를 욕하거나 비하하는 말을 적어놓은 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었는데...
이런 빌어먹을 비루한 꼰대 뚱땡이 같으니...
짧은 반성의 시간이 지난 후 한 10분정도는 계속 컵에 적힌 글을 쳐다본 것 같습니다
너무 행복한 기분이 듭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행복입니다
살면서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렇게 짧은 만남에 강렬한 인상으로 행복을 주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착한 마음을 가졌다는 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가게에 찾아온 손님이 힘들고 피곤하게 보였다 하더라도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 수 있을까...
그 여자분이 글을 적으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던 것이 다시 떠오르고... 그 분은 정말 천사인 것 같습니다
한 10분정도 컵을 쳐다보고 있으니 다리 아프고 힘들던 게 다 사라집니다
마지막 목적지 야시장을 가기 위해 컵을 챙겨서 1층으로 내려갑니다
그 여자분이 1층으로 내려온 절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면서 다시 인사해 줍니다
아.. 정말 천사의 미소입니다
들고 내려온 컵을 보여주며 계속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당신 때문에 이번 내 여행이 너무 행복해 졌다고...
고맙단 인사를 한 10번 정도하고 문을 나서 10미터쯤 걸어가다 너무 아쉬운 맘이 들어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야 겠단 생각에 다시 돌아갑니다
그러고는 이번 4박5일 동안에 대만 여행에서 찍은 단 한장의 사진을 그분과 같이 찍었습니다 저는 뻘줌한 미소를 그분은 천사의 미소를 지으면서..
가이드와 차량만 없다 뿐이지 인터넷에서 남들이 가라고하는 곳만 찾아 다니는 패키지같은 여행을 하면서 언뜻언뜻 '왜 여기에 왔지' '이번 여행의 의미가 뭐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인터넷 검색없이 구글맵도 안보고 찾아 들어간 심지어 로컬의 어느 가게도 아닌 글로벌 슈퍼 프랜차이즈인 스타벅스에서 이번 대만 여행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역시 여행에서 행복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좋은 사람을 만날 때 오는 것 같습니다.. 이번 대만 여행은 성공적입니다
혹시 대만에 갔다가 MRT 스린역 근처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커피가 한잔 마시고 싶어지면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를 무심하게 한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천사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게 될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