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고급 음식점에 가서 개쪽당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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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고급 음식점에 가서 개쪽당한 사연...

마마이루 72 7579
저번주에 태국에 누나,엄마와 여행을 갔고, 한번 정도는 태국의 고급레스토랑에서 잘갖춰진 태국음식을 
먹어야지.하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블루 엘리펀트>에 갔습니다. 추천이 많은 음식점이었죠.


무슨 호텔 바로 옆에 있던데 스파에서 이동하던 택시기사가 지리를 전혀 몰라서 굉장히 헤맸고, 그것 때문에 
저희 어머니는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워지셨어요.
택시에서 내리고 어머니 왈, "재 약한것 같애.주머니에서 칼 빼는줄 알고 조마조마했어." 눈빛이 이상하다며..
얘가 좀 정신이 없었고, 실없고, 길을 못찾으니 막판에는 짜증을 부린건 맞는데 그정도까지 위악적으로 보진 
않았던 전 어머니의 심통에 깜짝 놀랬죠.


음식점 건물은 참 예쁘더라고요. 정말 예쁜 블루색 조명으로 흰색건물이 비춰지고 있었어요.
원래 저녁쯤 먹고 싶었는데 늦지막하니 전화를 해보니 이미 예약이 다 차서 밤 9시 30분 이후에나 가능하다지 
않겠어요? 그래서 갔던 시간이 그 늦은 시간이었죠.
저녁으로 기다리기엔 너무나 애매한 시간.
그러니까 우리 가족은 음식점을 방문하는 그 시작부터 서로 뭔가 껄쩍지근한 상태였지요.

대기의자에서 좀 기다리다 서빙의 안내를 받고 이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무로 짜여진 벽과 바닥..전체적으로 조명이 어두웠는데 분위기는 아늑하고 괜찮더라고요.
메뉴판이 나왔습니다. 단일 음식을 시킬수도 있고 코스요리도 있었어요.
코스요리를 먹고자 왔으니 코스요리를..하고 가격을 보니..한사람당 1800~2200밧... 
'음..이게 얼마지?;;'
분명 제가 본 정보에는 1200밧이라고 했는데..여행일정의 예산을 책임지기로 했던 전 순간적으로 당황하기 
시작했어요. 
' 내 지갑에 이정도 돈을 내가 챙겨왔었나. 내일 놀 돈은 있나? 이거 먹어도 되나?'
그때 여권주머니에 돈을 넣고 다녔는데..이곳저곳 다니면서 지페들을 쑤셔넣는 바람에 주머니 밑바닥에 돈이 
걸레짝처럼 찌그러져 있던 상태였죠.
그 쓰레기들을 꺼내서 하나하나 손으로 펴가며 세워보고 결정하기도 뭐하더라고요.


전 한번 뭐에 꽃혀서 정신이 나가면 돌아오지 않아요. 이거 생각보다 너무 비싸. 이거 먹으면 예산계획이 
망가질지 몰라.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저는
그 뒤 제 정신을 지배하는 가난의 망령에 짖눌려 이상한 행동들을 시작했어요.
세명이서 갔는데 일단, 어차피 코스요리를 한명당 모두 시키면 다 먹지 못할것이다.하고 두사람 분을 시킬 수 
있는지 물었죠. 서빙이 제 얘기를 듣고 좀 더 영어를 잘하는 매니저를 불러 왔어요. 매우 잘 차려 입은 잘생긴 
남자였어요. 어쩌면 저와 연령대가 비슷했을지도..
저는 뭔가 그 잘차려입은 내 또래 남자에게 그런걸 묻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물었죠. 
 '저희 세명왔는데 두명분만 코스요리 시켜도 되요?'
그는 쿨하게 아무 문제없다는 듯 괜찮다고 했어요.
두명분만 시키면서도 제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라고요. 서비스비용까지 합하니 그것도 15만원가량 나오는것 
같아서.


그런데 순간 제가 시킨 방식이 맞는건지, 제가 메뉴판을 제대로 본건지 확신할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제가 실수를 하고 잘못 시켜서 덤탱이를 쓰고 수십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 오는게 아닌가, 
우리 가족은 내일 한국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여기서 접시닦고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이상한 생각들이
저를 강박적으로 만들었죠.
원래 코스요리는 하나당 4인분인데 내가 결국 8인분을 시키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이상한 생각까지 하면서 
저는 다시 매니져를 불러서 영수증을 미리 달라고 얘기했어요.
그런데..못알아 듣더라고요.
그래요. 제 발음이 후지긴 하죠. 다시 부탁했어요. 
 '플리이즈 기브 미 리시트 비포 밀?'
못알아 들어요. 그래요. 내 후진 영어도 문제지만, 영수증을 미리 달라는 손님도 없었을테죠. 
저는 비참하게 리시트.리시트! 페어 페이퍼! 막 되는대로 외쳤어요. 조용히 매니져와 저와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는데 그 매니져가 하도 못알아 들어서 그 층에 있던 다른 손님들이 모두 제가 영수증을 미리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불굴의 의지로 결국 영수증을 미리 받았습니다. 영수증에 적힌 제가 예상한 가격과 같은 금액을 보고..
저는 정신질환에서 벗어나서 어느정도 안정을 찾았어요.


그리고 코스 요리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우선 에피타이저로 나온 샐러드와 바삭한 유부같은 튀김에 둘러쌓여있던 만두가 참 맛있었어요. 아직 저는 
망령에서 완전히 벗어난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정신이 없다는 생각은 들었죠.
여긴 물값도 따로 받더라고요. 커피와 물도 따로 주문했어요. 태국에 있으면서 느낀게 태국물은 참 맛이없다..
그 맛을 뭐라 해야할까..아무튼 텁텁하고 물을 상쾌하게 만드는 어떤
요소도 없는 죽은물같다는 생각을 했어요.그런데 따로 내온 그 물은 참 맛있더라고요. 점점 기분이 풀리기 시작했죠.
요리들이 순차적으로 나왔는데, 생선요리도 있고, 돼지고기도 있고, 해산물도 있었어요. 양이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저희 3가족에게는 딱 알맞는 양이었습니다.
맛은..사실 깔끔하고 괜찮았지만 대단해! 가격이 아깝지 않아! 이게 태국요리의 정수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요.
그런데 불운하게도 요리들에 고수가 들어 있는게 많아 가족들이 잘 먹질 못했어요.
어머니는 뜬금없이 돼지고기 요리하나를 집고 '이건 내꺼야! 난 이것만 먹을꺼야! 내꺼니까 아무도 먹지마!'라고 
촌스러운 선언을 하셨어요.
그 요리는..콩자반 맛이 나는 간장에 조려진 수육같은거였죠. 향들이 강해서 그 요리가 그나마 드실만 하셨나봐요.


한참 요리를 드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보도못한 이상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셨어요.
그 표정은..정말 뭐랄까..얼굴의 온 근육들을 한 점에 집중해서 빨려들어갈것처럼 오므리면 나올 수 있는 표정
일까요?
한번도 본적 없는 그런 표정을 보며..뭔가 잘못된것 같았지만 식탁의 요리들에는 그런 표정을 유발할 어떤 
위험물질도 없었기 때문에 전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어요.
어머니는 그런 표정을 지으시고 성난 수탉처럼 팔을 팔닥팔닥 휘젓기 시작했어요. 놀라기도 했지만 내심 
'엄마 왜저래.ㅜ.ㅜ 그러지마.ㅜ.ㅜ '라는 생각이 쓱 스쳤다는 것도 고백합니다.
어머니는 도저히 자신의 의지로는 이 고통을 자제할 수 없다는 듯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온몸을 비틀고 마치
각기춤을 추는 공옥진 여사처럼 부들부들 떨며 고통에 몸부림치셨죠.
결국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아아!!!!
"엄마, 왜그래요? 응?"
어머니 입에서 씹다만 검은 물질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건 쥐똥고추였어요...콩자반맛 나는 그 음식을 먹으며 
어머니는 그게 당연히 멸치인줄 알고 씹으셨다는거에요...
고추를 뱉어내고서도 어머니는 혀를 춤추게하는 그 통각이 가시지 않는지 자신의 몸을 어쩌지 못하고 계속 
온몸으로 '나 너무 매워서 죽을 것 같아'를 신체언어로 표현하셨죠.
물을 벌컥벌컥 마셔도 가시지 않는 그 통각...누나는 오열하는 듯 바닥으로 무너지는 어머니를 붙잡고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원래 어머니가..뭐랄까..좀 배우기질이 있으세요. 표현이 굉장히 직접적이고,크고...적극적으로 표출해내시는데
능하세요.절제를 모르는 어머니의 표현력에 매번 저는 '엄마 그러지마' 를 되내죠.


누나와 어머니가 떠나고 부끄러움은 남은 저의 몫이었죠.
주변으로 사람들이 저보다 더 놀래서 웅성대고 있었어요. 
저희 앞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중년의 중국 남성은 도대체 저 광경이 뭐지? 라는 표정으로 똥그란 눈을
뜨고 저를 쳐다봤어요. 소란스러움 때문에 웨이터가 달려왔고 뒤에 앉은 서양 커플이 상황설명을 대신 
해주더라고요. 여성이 매운 음식을 먹은 것 같다...그리고 키득.
웨이터가 제게 사과를 하고 우유한잔을 가져왔어요. 고맙더라고요. 물론 그 순간에도 저 우유값이 영수증에 
찍힐까가 궁금했음을 고백합니다.


누나와 어머니가 돌아왔어요.
누나는 약간 피곤한 표정이었는데, 화장실에서 어머니가 매운기운을 쫒기 위해 했던 절박한 행위들. 물묻힌 
손가락을 위아래로 흔들며 혀를 마하의 속력으로 정신없이 씻어대던 모습들, 
헛구역질 같은 것에 조금 지쳐있었던 것 같아요.  
그 뒤..어머니는 평정심을 다시 찾으셨고...다시 우아해지셨어요.한여름밤의 꿈같은 해프닝이었다는 듯.
그러나 그 뒤 나온 음식들을 즐기기엔 저희 가족은 너무 지쳐있었죠.
뒤에 있던 서양 커플이 나가는데 매니져가 와서 이것저것 안부를 묻더군요.그들은 우리가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한건지, 그 휩쓸고 지나간 해프닝이 이제 즐길만한 것이라고 느꼈던건지 매운 음식에 대한 가벼운 
농담거리들을 늘어놨어요.

이런저런 사건들 때문에 우리의 식사는 매우 늦어졌고..디저트가 나오기 전에 이미 클로징타임을 지나 저희 
테이블 주변으로 몇몇 웨이터들이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죠.
아니 그래도 손님이 안갔는데 정리를 시작하다니...피로감이 극에 달한 저희가족도 디저트를 먹는둥 마는둥 
하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우유값정도라도 테이블에 남겼어야 했는데...정신없어서 음식값만 계산하고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제게 엄청
쌀쌀맞던 표정을 짓던 서빙직원.. 
그래..내가 팁을 남겼어야해..그 하찮은 자책감이 이상하게 여행내내 맴돌더라고요.

72 Comments
페르조나 2015.06.25 20:37  
아주 옛날에 90년도인가 패캐지로 태국 갔었는데
대형 부페 식당 가서 식사하다가
쥐똥고추의 맛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슨 채소잎에 한 10개 가량 싸서
먹었다가 죽을 뻔 한적 있어요.
님의 글을 보니 옛 생각이 나네요.
달님마미 2015.06.27 14:22  
고생하셨습니다.
다읽고 스치는  생각
작가로  나서보심이 어떨런지...
마음은파타야 2015.07.13 16:52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우습게 생각하고 먹었다가 입이 돌아간줄 알았어요
마비가 된듯해서 한동안 말도 못했던 기억이..
알바낙타 2015.07.20 14:26  
베트남 무이네 여행할 때 유명한 해산물 식당을 갔어요. 전 가계부 작성과 나중에 후기에 올리려고 메뉴판의 가격들을 계산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가격을 따지는 걸로 보였나 봐요. 오해한  친구가 제 눈치 보여서 마음대로 뭘 못 먹겠다고 화를 냈죠. 둘이 식당에서 싸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결국 가라비 구이로  저 혼자 분노의 먹방을 찍고,  서로 툴툴거리며 숙소까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따로 걸어갔죠.
 숙소 돌아가서 친구는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며 짐을 싸기 시작했고, 전 끝까지 남아 베트남 일정을 다 즐기고 갈거다, 빠이~ 하며 서로 신경전 벌이다 나중엔 화해하고 다시 보케거리로 나가 해산물들을 사 먹었다는 -_-;;;;

 우선 어머니에게 신체적으로 큰 문제가 없으셨다니 다행이구요.
 님이 글을 정말 맛깔나게 잘 쓰셔서 읽는 내내 웃었네요.
 그 이후론 즐겁게 여행 마무리하고 돌아가셨길 바랍니다.
세상만사 2016.09.17 19:28  
그럴 때는 회계담당자를 바꾸시면 됩니다.
사용하셔도좋은별명 2015.07.29 16:04  
글을 재밌게 잘 쓰셔서 상황이 그려지네요 ㅎㅎ
너만좋아해 2015.08.28 16:58  
정말 무슨 뮤지컬 보는듯하게 글 읽었어요 ㅎㅎ
호호다 2015.09.06 15:54  
님... 쓰신지 좀 되신 글이긴 한데 넘 웃겨 댓글 남겨요 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님... 뭐 하시는 분이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다가 식은땀 낫어요 ㅠ ㅠ
기원전 2015.09.07 05:44  
빙그레 싱긋
보라돌이3 2015.09.18 02:53  
필력도 좋으시고 생각보다 충격적으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어서 흐뭇하게 읽을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글 참 재미있게 쓰세요 ^^
jhsm0802 2015.10.16 01:57  
요즘 뜨는글이라해서 우연히 읽었는데 완전 웃으면서 봤어요!!
당시 상황이 모두 그려지네요 ㅋㅋㅋ
임금님77 2015.12.19 00:49  
ㅋㅋ 상상되네요 어머니가 귀여우세요
우째 2016.01.04 23:56  
어머니를 닮으셨는지 표현이 장난아니신데요 ㅋㅋㅋㅋㅋ
kimham33 2016.01.23 15:09  
하하 글 정말 맛깔나게 쓰시네요^^ 재미있는 헤프닝이었습니다
수쿰빗로드 2016.02.22 11:22  
ㅎㅎㅎ

저도 매운거  많이먹고  배탈나서 며칠 고생했어요
sally솔비 2016.03.30 13:22  
ㅋㅋㅋㅋㅋㅋㅋ회사에서 큭큭대며 웃느라 정신없었네욬ㅋㅋㅋㅋ
곤란한 상황이였지만..지금은 좋은 추억이...되셨겠죠?ㅋㅋㅋㅋㅋㅋ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orbitz 2016.04.14 00:29  
어머 오뜩하나요 ㅋㅋㅋ
아드님이 너무 재밌고 착하네요
어머님이 로또 맞으셨어요
미국식당에서 본 비슷한 상황에서 교포아드님은
Mom stop it!
You are doing it again!
식당 전체가 수저질을 멈추고 그 어머님이 민망해서 배우기질 그만 하시더라고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what did she do 이러구 ㅋㅋ 그와중에 내머릿속에선 아이들은 한국에서 키워야 하나 생각이 ㅋㅋ
세상만사 2016.09.17 19:27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거늘, 맨날 집구석에서 하던 대로 하니.....
백야도 2016.07.03 14:04  
재미있게읽었는데
슬프기도하네도ㅋㅋㅋ
좋은경험하셨네요
SSA0927 2016.08.12 17:12  
ㅋㅋㅋ 글잘쓰시네요 마치 제가 옆테이블에서 보고 있는거 같습니다
june22 2016.09.08 10:43  
ㅋㅋ정말 시트콤같은 웃픈얘기네요 ! 조금 지난 사연이지만 댓글남기구갑니다 ~ ㅎㅎ
사와디갑 2017.04.14 17:51  
ㅋㅋㅋ 저희어머니와 비슷하셔서 공감되었네요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