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장대비, 길고 긴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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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장대비, 길고 긴 혼잣말.....

다마추쿠리 7 475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적다는 게 분명해진 날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은 가슴 한 구석에, 뇌리 한 편에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혈연이나 친분과 무관하지만 큰 충격을 받은 개인의 죽음도 몇 건 겪었다.
다시, 최근 일어난 어떤 이의 자살이 준, 작지않은 여진에 흔들리고 있다.

마음이 복잡한 하루이다.

역류성식도염이라고 기름진 것, 알콜, 커피, 토마토, 우유...등이 금지된 상태...

그래도 뭔가...특히 커피가...마시고 싶어...아주 연하게 한 잔 내렸다..

Lacy Dalton의 블랙커피 라는 노래 좋아해서 볼륨을 한껏 높였다.

태풍과 홍수로 피난민도 많이 생긴 상태에서

빗소리를 백뮤직으로 삼는 것, 좀 죄의식을 느낀다.

 

장수사회이자 고령사회에 살다보니
고독사 라든가 유품정리 사업등의 뉴스를 자주 접하는데,
원래 혼자거나, 너무 멀리 살거나 평소의 관계가 타인보다 멀어진 가족사정으로 
자식이라 해도 살던 집의 정리에도 참여를 원치않는 사례가 많다보니,
유품정리 사업은 예상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발전해

그 치밀하고 정확한 업무 매뉴얼을 보자면 
오히려 안심이 될 정도다.
그리고 의외로 50대, 60대부터 문의나 의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조금 전 읽은 뉴스가 평소의 의문이랄까 걱정을 조금 해결해 주었다.
사망자의 넷상의 흔적들을 지워주는 사이버 유품정리업체가 등장한 것이다.

(한국엔 벌써 생겼으려나..........)

혼자인 사람은 유언서 작성처럼 미리 예약해 놔야 하겠지...
물론 의뢰범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얼핏 스치는 화면의 표를 다 따라잡지 못했지만
ID(?)당 2만5천엔이라는 걸 본 듯하다.

최근 몇 년간 이게 관심사항이었다.

지금까지 돌연 사용이 불가능하게 된 이멜 ID가 핫멜 2개, 다음멜 1,

그 때 마다 당사자도 운영자도 어찌할 수 없이

모든 주소나 멜박스에 남겨둔 자료가 다 날아가버렸고

그로 인해 단절되어 버린 인간관계도 꽤 있다. 아니 거의 대부분...

너무 불합리한 조처에 운영자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지만.....

좌간 운영자조차도 열 수가 없다고 하니

버려진 사이버위성이 되어 초시간의 영역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삼 년전 우연히 한 여행블로그의 팔로우가 되었다.

태국의 장기체재 관련 정보를 검색하다가 들어가게 된 곳이었는데,

주인이 한 편당 평균 40매 이상의 사진이 들어간 글을 오랜시간 성실히 작성해 와서

총 700편을 넘어서는 대단한 양을 담고 있었다.

검색어로 들어간 장소가 그 중간쯤의 위치라

블로거에 대한 상세한 관심은 전혀 없이 그냥 읽기 시작했으나

그는 꽃 한 포기에도,  오고가다 만나는 누구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가진 진솔한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여행스타일이 나랑 맞았다.

읽을수록, 상당한 흥미를 느끼게 되어 팔로우 신청을 하고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

수 년간의 치앙마이 체재를 결정하게 되기 이전 부분부터

시간을 따라 하루 몇 편씩 읽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은밀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거의 한 달 반 이상의 열람으로 하반부가 얼마 남지 않은 남은 무렵,

그가 갑자기 일시 귀국을 정하고 항공티켓을 구입한 상태임을

댓글과의 대화에서 알 게 되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드디어 출발" 이라는 부분에서, 

이삼 일에 한 번은 갱신하던 블로그가 중지되고 갑자기 몇 달의 시간이 공백으로 건너뛰어...

다음 갱신은, 돌연 덴마크의 시가를 배경으로 한 사진과 글들로 이어졌다.

가족들도 보이고...

그 뒤 이삼 개월 못 미치는 기간에 십여 편의 갱신이 이어졌으나 자세한 정황설명은 없었다.

곧 다시 돌아올 거라고 치앙마이에 무거운 노트북을 두고가 영어가 아닌 알파벳으로 적고 있었다.

 

댓글들에서 그가 병이 났다는 걸 짐작했다. 그리고 그대로 끝이 나 버렸다.

그가 죽었다는 것도 추도 댓글로 알았다. 믿기지가 않았다. 멀쩡하던 사람이 반 년도 안 된 사이에...

댓글을 자주 달던 이의 블로그로, 이년 전의 글로 찾아 들어가,

"귀국 당일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심각한 몸의 이상을 느껴

공항이 아니라 치앙마이의 한 병원으로 직행한 그는,

급성백혈병의 진단을 받고 임시 조처후 덴마크로 돌아갔다"

라는 사실들을 알 게 되었다. 치료비 문제와 의료보험관계상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960년대 유럽여행으로 배낭여행을 시작한 그는 덴마크에 정착,

그 곳에서 가정을 꾸린 후에도 크고작은 여행을 계속하다가,

병이 나기 4년 전부터 동남아에 머물고 있었다.

여동생의 골수가 이식에 적정하다는 판단이 내려, 수술을 위해 8월 말 덴마크행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수술 열흘을 앞두고 59세의 그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그건 이미 내가 우연히 블로그를 읽기 시작하기 2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죽기 일주일 전 올린 마지막 글의 추도댓글을 읽는 그 순간,

이년 전의 죽음이,

"지금 이곳" 의 현실로 다가왔다.

내게는 그 순간 일어난 죽음이었고 충격을 받았고 슬펐다.

4트래블의 막강인기 블로거였다는 것도 그 후에 알았다.

깊은 골짝 출신인 그는 치앙마이 근교 시골들을 좋아했고,

현지인이 사진에 잡히면

일년이든 이년이든 지나 다시 갔을 때 인화한 사진을 전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글은 댓글이 달릴 일도 없이, 본인이 아니면 삭제될 수도 없이,

아버지의 모국어를 모르는 자식들은 그 존재도 모를 것이고,

이미 오래 전에 갱신이 끝난 낡은 글들이라 더 이상 읽어줄 사람도 없이,

4트래블이 존재하는 한 우주미아처럼 떠 돌게 될 것이다.

넷상의 죽음의 정리에 대해 항상 생각하게 되었다.

 

블로그에 유일하게 올랐던 사진 한 장의 기억과

창푸악 버스터미널 근처라는 것 만으로

올 1월 그가 살던 아파트를 찾아다녔고 반나절 걸려 찾아냈다.

위치도 임대료도 좋고

뭣보다 그가 사진을 찍은 위치에서 도이스텝도 보고싶었다.

그러나, 매일같이 새 콘도가 지어지는 치앙마이에서 이미 낡은 분위기 마저 도는 곳이지만

만실이어 내부도 볼 수 없었고

삼개월이상이 임대조건이어서 내게는 기회가 없었다.

 

올 12월 다시 가지만 그 곳은 홈피가 없고,

전화번호는 알지만, 직접 예약할 수 없는 먼 이곳에서 지금은 어찌할 수도...

내게 올 겨울을 그 아파트에서 날 수 있는 운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7 Comments
고구마 2014.08.10 12:30  
뭔가 마음이 저릿해지는 글이네요. 다마추쿠리님이 그분 블로그를 열심히 탐독할즈음은 그분이 돌아가신지 거의 2년이 지난후라는 이야기인데...열심히 읽던 글의 주인공이 이미 망자가 됐다는건 좀 충격일거 같아요.
이열리 2014.08.10 12:31  
왜그런지 글을 보는데 바나나가 떠오를까요
그러면서 한때 태사랑에 글 자주 게시하시던 치앙마이 지미님이 떠오르고 그러네요.
아프고..지금은 인간개조 과도기지만
못해도 이틀에 한번씩은 새로운걸 느끼는거 같아요
덕분에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앨리즈맘 2014.08.10 19:24  
제가 염려하는 부분들이 역시 현실이내요  제아이들도  한글을 모르니 

시간이 주어져  정리할수 있다면 다행이겠어요
참새하루 2014.08.11 04:43  
이미 고인이 된 분의 블로그를
모르고 2년간 읽어 내려가다
알게된 반전의 충격은
삶에 대해서 다시 반추해보는 계기가 되었군요

진솔한 다마추쿠리님의 글에서
저도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살날이 살아온날 보다 많지않다`` 라는 대목에서 특히
심각해지네요

저도 사후에
아무도 찾지않는 온라인의 흔적들을
돈을 지불하고 지워야하는 걸까요

많은 생각이 들게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K양 2014.08.11 11:15  
왠지 가슴을 저미게 하는 글입니다
그리고 영화 한편을 본듯한 느낌이랄까요
다마추쿠리님의 12월이 멋지고 행복하게 장식되길 바랄께요
고은솔 2014.08.11 14:02  
다마추쿠리님의 글을 읽다보니 마음이 찡해져 옵니다.
저도 살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나이다보니
가끔씩은  살림 정리를 하며 버리는 연습을 합니다. 

그러나 10년 넘게 써온 블로그의 여행사진들은 저도 영원히 남기고 싶네요
날자보더™ 2014.08.11 23:51  
좋은 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게으르지만 블로깅을 짬짬이 하는 저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네요.
제 사후에 저는 없이 떠돌 제 기록과 추억과 사유들이..벌써부터 안쓰럽네요.
말씀처럼 쓸모없이 지구 주위를 어쩔 수없이 빙빙도는 인공위성 파편같이..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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